신약 개발 '눈'의 진화… AI 현미경, 구글 지도 보듯 세포 들여다본다 [창간기획 : 초인류테크, 삶을 바꾼다]

입력
2024.06.06 14:00
수정
2024.06.12 17:5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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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안 아프고 100살까지
첨단 현미경과 인공지능 융합에
실험 않고도 약물효과 확인 가능
초미세 세계 열어준 새로운 '눈'
초저온·액상 다음은 양자현미경

편집자주

AI와 첨단 바이오 같은 신기술이 인류를 기존 한계를 넘어서는 초인류로 진화시키고 있습니다. 올해로 일흔 살이 된 한국일보는 '초인류테크'가 바꿔놓을 미래 모습을 한발 앞서 내다보는 기획시리즈를 총 6회에 걸쳐 보도합니다.

미국 기업 리버스 바이오시스템스의 인공지능 광학현미경 '리버스 에스퍼'로 관찰한 두피 조직. 두피 세포들 내부에서 활동 중인 RNA와 단백질 등이 색깔로 구별돼 보인다. 리버스 바이오시스템스 제공

미국 기업 리버스 바이오시스템스의 인공지능 광학현미경 '리버스 에스퍼'로 관찰한 두피 조직. 두피 세포들 내부에서 활동 중인 RNA와 단백질 등이 색깔로 구별돼 보인다. 리버스 바이오시스템스 제공

최근 미국 신약개발 업계에선 인공지능(AI)을 응용한 차세대 광학현미경이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간단한 조작만으로 수많은 세포의 미세한 움직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서다. 과거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데이터 확보가 가능해진 만큼 신약개발의 속도와 범위가 빠르게 확대될 거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바이오기업 리버스 바이오시스템스의 광학현미경 '리버스 에스퍼'는 2021년 시제품 때부터 가로·세로 1cm 안에 있는 약 15만 개의 세포를 한 번에 정교하게 스캐닝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이 회사는 빛의 양을 조절하는 조리개에 AI 기술을 적용해 현미경을 계속 고도화했다. 그 결과 지금은 조직 내부 움직임을 마치 구글 지도를 보듯 관찰할 수 있고, 약물이 어떤 세포와 어느 위치에서 반응하는지까지 확인이 가능하다. 여태까진 약물 반응 실험의 결괏값만 놓고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추정했지만, 이젠 약물의 작용 과정을 일일이 들여다보는 것이다. 신약개발 기업과 이들을 도와 임상시험을 하는 수탁기관(CRO)이 날개를 단 셈이다.

현미경의 딜레마 해결한 AI

코로나19 백신을 투여한 뒤 이 백신의 주성분인 mRNA(빨간색, 초록색 점들)가 세포 안팎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습을 현미경으로 찍은 사진. 리버스 바이오시스템스 제공

코로나19 백신을 투여한 뒤 이 백신의 주성분인 mRNA(빨간색, 초록색 점들)가 세포 안팎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습을 현미경으로 찍은 사진. 리버스 바이오시스템스 제공

첨단 현미경과 AI의 융합 덕에 RNA(리보핵산)나 엑소좀 같은 나노미터(nm, 10억 분의 1m) 크기의 생체물질이 작용하는 초미세 세계에 인류의 '눈'이 열리기 시작했다. 보통 광학현미경은 보려는 물질이 작을수록 배율을 높여야 한다. 그런데 배율이 높으면 관찰 영역이 줄어드는 한계가 있다. 이 딜레마를 해결할 열쇠로 떠오른 기술이 바로 AI다. 가령 치료용 RNA에 형광물질을 붙인 다음 조직에 투여하고 AI 현미경으로 보면 RNA가 얼마나 많은 세포로 들어가는지, 드나드는 통로는 어디인지, 들어간 뒤 무슨 반응이 일어나는지 등을 알 수 있다. 조직 내 넓은 범위에서 치료용 RNA의 효과가 잘 나타나는지 파악이 가능하단 얘기다. 조시 류 리버스 바이오시스템스 대표는 "마치 대형 현황판을 보듯 AI가 세포 활동을 상세히 분석한 데이터를 내놓는다"고 설명했다.

최근엔 형광물질이 필요 없는 현미경도 등장했다. 빛이 굴절하는 성질과 홀로그램 기술을 응용한 이른바 홀로그래픽 현미경을 제품화한 바이오기업 토모큐브의 창업자인 박용근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물리학과 석좌교수는 "세포를 자르거나 염색할 필요 없이 그 자체로 정확히 관찰할 수 있어 신약개발 과정을 대폭 단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3차원 홀로그래픽 현미경으로 세포 내부를 관찰한 모습. 토모큐브 제공

3차원 홀로그래픽 현미경으로 세포 내부를 관찰한 모습. 토모큐브 제공


코로나 극복 단초 제공한 첨단 현미경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포를 관찰하는 도구는 전자현미경이 주를 이뤘다. 가시광선이 아니라 레이저를 쏘기 때문에 시료가 파괴되는 단점을 개선하기 위해 시료를 급속 냉각시키는 초저온 전자현미경이 등장했고, 이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구조를 알아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 대유행 극복의 단초를 제공했다. 그런데 시료를 얼리면 움직임을 볼 수 없다. 육종민 카이스트 신소재공학과 교수 연구진이 개발한 액상 전자현미경은 시료를 액체 상태의 특수 소재에 넣어 관찰하는 방식이다. 이 현미경으로 치매의 원인 단백질이 생성되는 과정을 관찰하는 데 성공한 육 교수는 "액상 전자현미경을 활용하면 약물과 단백질의 반응을 확인하는 속도를 10배는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카이스트 신소재공학과 연구진이 개발한 액상 전자현미경의 개념도. 카이스트 제공

카이스트 신소재공학과 연구진이 개발한 액상 전자현미경의 개념도. 카이스트 제공

신약개발의 '눈'은 AI를 넘어 양자 기술과의 융합을 넘보고 있다. 가시광선이든 레이저든 시료를 작게라도 손상시킬 수 있고, 관찰 속도와 범위가 확대될수록 이미징 데이터도 비대해진다. 양자현미경은 이런 문제를 극복할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2021년 양자현미경 실현 가능성을 실험으로 확인한 워릭 보웬 호주 퀸즐랜드대 교수는 "이미지 데이터 생성 속도가 (기존 현미경보다) 10배 이상 빨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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