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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 없었으면 못 잡았을 수도... '언더커버' 성범죄 수사도 한계투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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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N번방 건은 운이 좋았어요. 민간인 신분으로 위장해 범인을 잡는 건 지속 가능하지 않아요. 경찰이 해야 합니다."
2019년 N번방 사건을 알린 추적단 불꽃의 활동가 원은지씨는 지난해 2월 피해자로부터 '도와달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텔레그램에 가입하자마자 누군가 자신의 얼굴과 나체사진을 합성한 사진과 이를 단체방에 유포한 내역을 보내온다는 것이었다. 경찰은 '피의자를 특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미 네 차례나 수사중지나 불송치 결정을 한 상황. 범인을 꼭 찾고 싶었던 피해자는 결국 'N번방 사건' 주범을 찾는 데 공을 세웠던 은지씨를 찾았다.
사건 초반 가해자를 추적한 건 경찰이 아닌 은지씨였다. 2022년 7월부터 같은 사건을 제보받았던 은지씨는 올 4월까지 2년간 텔레그램에서 가해자와 접촉했다. 그는 퇴근 후에도 유부남 행세를 하며 매일 밤 대화를 이어나갔다. 은지씨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일선 경찰서에서 중단된 사건을 서울경찰청에서 재수사를 시작하고 나서야 경찰이 텔레그램 방에 숨어 들어와 그를 유인했고, 결국 검거에 성공했다. 은지씨는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며 "보복도 걱정되지만, 범인을 잡기 위해선 방법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디지털 성범죄에서 '위장·비공개 수사'가 시작됐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현장의 불만이 많다. 현행법상 아동·청소년 대상 범죄만 위장수사가 가능하고, 사전 승인이 필요해 불시에 툭툭 튀어나오는 범인을 적시에 잡을 수 없는 탓이다. 현장에서는 경찰의 위장수사 가능 범위를 늘리고 전문팀을 꾸려 대응력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3일 경찰 등에 따르면, 경찰의 위장수사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청소년성보호법)'에 근거한다. 경찰은 디지털 성범죄 사건에서는 신분을 비공개하고 온라인을 포함한 범죄현장 또는 범인으로 추정되는 자에게 접근해 증거 자료를 수집할 수 있다.
문제는 피해 대상이 아동·청소년으로 한정돼있다는 점이다. 이번 '서울대판 N번방' 사건과 같이 성인 피해자라면 위장이나 비공개 수사가 불가하다. 은지씨는 "이번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성인이 대상인 터라 공무원인 경찰보다 민간인인 내가 자유롭게 접촉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수사가 이뤄진다 해도 경찰 신분을 밝히지 않는 비공개 수사는 사후승인 제도가 없어 증거 확보에 난항을 겪는다. 증거 수집을 위해서는 반드시 서면 승인신청을 하고 부서장 승인을 받은 다음에 다시 텔레그램 등 방에 접속해 증거수집을 해야 한다. 그사이 가해자가 잠적하거나 대화방이 사라져 증거가 없어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게다가 비공개수사는 수사 기간도 3개월로 정해져 있어 기간이 끝나면 처음부터 수사 신청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인력적 한계도 분명하다. 은지씨는 "일선서 경찰 한 명이 한 해 120건 넘는 사건을 맡고 있는데 약 2년간 사건을 추적한 나처럼 대응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사이버수사를 10년 이상 맡은 한 경찰 간부는 "일선에서는 텔레그램, 다크웹 등에서 일어나는 범죄 등 노하우가 부족하고 처리할 사건이 많다 보니 시간을 들일 여유도 없다"며 "본청이나 시도청 사이버수사대의 수사 능력은 크게 발전했으나 수사관을 모든 일선서에 투입할 수 없어 수사능력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디지털성범죄 대응에 집중할 전문 인력 확대는 전문가들이 입모아 내놓는 대책이다. 은지씨는 "텔레그램 내 범인들과 얘기하다 보면 특성이 파악되고, 추가적 범죄를 하는 정황이 나오기도 한다"며 "경찰이 주범과 처음부터 대화해 기록을 남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인력이나 예산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찰은 위장수사를 성인 대상 범죄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확대할 방침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위장수사와 관련한 추가 입법이나 법 개정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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