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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상처’ 방패 삼는 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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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해병대 전우회는 대한민국에서 결집력이 강하기로 첫손에 꼽히는 친목단체다. 사회에 나와서도 공고한 기수문화는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미제 철조망은 녹슬어도 기수는 녹슬지 않는다’ 등의 슬로건이 말해준다. 치열한 경쟁을 거친 소수정예로 발군의 전투력을 과시해왔다는 자긍심이 그 근간이다.
□ 해병대는 1949년 4월 380명의 소규모 병력으로 창설됐다. 바로 이듬해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장항∙군산∙이리지구 전투를 시작으로 도솔산 전투, 서울수복작전 등 수많은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뉴욕헤럴드트리뷴의 여성 종군기자 마거릿 히긴스 극동지국장은 해병대 1개 중대가 북한군 대대 병력을 섬멸하고 경남 통영 탈환에 성공한 통영 상륙작전 직후 기사에 “그들은 귀신마저 잡을 것(They might capture even the devil)”이라고 썼다고 한다. 원문은 남아있지 않지만, ‘귀신 잡는 해병’이 해병대의 상징적 표어가 된 배경으로 알려진다.
□ 젊은 해병대원이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채 폭우 실종자 수색작전에 투입됐다가 급류에 휩쓸려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지 10개월이 됐다. 죽음의 진상도, 수사 외압 의혹도 지금껏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다. 그런데 해병대 지휘권자인 김계환 사령관은 21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출석해 수사 외압을 주장해온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과의 대질 조사를 거부했다. “해병대를 책임지고 있는 최고 지휘관과 부하가 대면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해병대에 더 큰 상처를 줘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는 데 지장을 초래할 이유가 있다”는 게 그의 변이다.
□ 외압 의혹의 핵심인 ‘VIP 격노설’을 두고 박 대령은 김 사령관에게 들었다고 일관되게 주장하는 반면, 김 사령관은 VIP 자체를 언급한 적이 없다고 엇갈린 주장을 편다. 그런데도 김 사령관은 부하와 동등한 자격으로 대질신문을 하면 ‘해병대 정신’을 해친다고 말하고 싶은 듯하다. 해병대 위계가 진실 규명보다 중요하다는 말인가. 그에게서 ‘VIP 격노’를 들었다는 간부가 박 대령 외에 또 있다는 진술까지 나온 마당이다. 동료의 억울한 죽음으로 자긍심에 큰 상처를 입은 해병대원을 치유해주는 올곧은 방법이 뭔지 되돌아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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