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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돌려받고 환경도 지키는데… 사라진 '유리병 콜라'의 속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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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가 심각한 건 알겠는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일상 속 친환경 행동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고요? 열받은 지구를 식힐 효과적인 솔루션을 찾는 당신을 위해 바로 실천 가능한 기후행동을 엄선해 소개합니다.
아내와 ‘홈술’을 즐기는 직장인 권주원(가명·41)씨는 다 마신 소주병을 바로 버리지 않고 박스에 잘 모아둡니다. 빈 병 박스가 꽉 차면, 집 근처 마트에 있는 빈 용기 무인 회수기를 찾아가 하나씩 집어넣죠. 소주병 하나를 넣으면 100원, 맥주병 하나에는 130원이 ‘짤랑짤랑’ 소리를 내며 나옵니다. 권씨는 “빈 병을 모아 반환하는 게 조금 귀찮긴 해도 꽤 쏠쏠하다”며 “작게나마 환경을 위해 실천한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소주병이나 맥주병, 청량음료병 등을 구매처에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주는 ‘빈용기 보증금제도’가 있습니다. 공병을 모아 세척한 뒤 다시 쓰기 위한 제도인데요. 1985년에 시작돼 4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유서 깊은 환경정책입니다. 이 제도를 위해 우리나라의 소주병은 오래전부터 모두 초록색으로 통일이 돼 있습니다. 누군가가 버린 ‘참이슬’이 ‘처음처럼’으로 환생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죠.
유리병 재사용의 기후위기 대응 효과는 최근 들어 다시금 주목받고 있습니다. 넘쳐나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린피스의 ‘2023 플라스틱 배출기업 조사보고서: 우리는 일회용을 마신다’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배출된 일회용 플라스틱 폐기물 중 37.6%가 생수나 음료를 담은 페트병이었습니다. 다른 나라도 사정이 비슷한데요. 지난달 미국과 영국 등 다국적 연구진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실은 논문에 따르면, 전 세계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량의 11%가 코카콜라사에서 제조한 음료 페트병 등이었다는 조사가 나왔죠.
이 쓰레기들은 바다로 흘러가 미세플라스틱이 되기도 하는데요. 미국에 본부를 둔 글로벌 해양환경단체 오세아나(Oceana)의 2020년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해안 인접 76개국이 재사용병 사용을 10%만 늘려도 바다로 유입되는 플라스틱 조각을 21.5%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50%로 늘리면 무려 83.1%가 줄어들고요.
더욱이 유리병을 재사용하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효과도 있습니다. 글로벌 환경단체 제로웨이스트유럽이 2020년 식품용기의 재질과 사용 방법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에 대한 연구들을 종합해 분석했는데요. 유리병을 3번만 재사용해도 일회용 페트병보다 탄소배출량이 적어지고, 재사용을 반복하면 최대 70%까지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일회용 페트병을 쓰면 이를 폐기하고 다시 새 페트병을 만드는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이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효과가 좋다면, 더 많은 종류의 플라스틱 용기를 유리병으로 대체하는 건 어떨까요? 이 같은 생각으로 이미 다양한 실험과 실천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생활협동조합 ‘한살림’은 2014년부터 자체 생산 제품의 유리병 재사용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첫 시도는 2002년인데요, 물류센터에 병 세척시설을 도입하고 본격적으로 재사용 시스템을 갖춘 건 10년 전이라고 하네요. 요즘엔 된장이나 젓갈도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파는 경우가 많지만, 한살림에서는 장류, 잼류는 물론 양념·젓갈 등 약 70개 품목을 유리병에 담아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6가지 규격의 재사용병을 지정했고요. 소비자(조합원)가 다 쓴 제품을 씻어서 매장에 반납하면 포인트 50원을 적립해 반환을 유도합니다. 매년 약 120만 개의 재사용병 제품이 판매되고, 이 중 3분의 1 정도인 40만 개가 반환돼 다른 제품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하네요.
‘생수=페트병’이라는 공식을 깨뜨리려는 시도도 있습니다. 순환경제 스타트업 ‘소우주’는 지난해부터 소주병과 같은 초록 유리병에 생수를 담아 생산하고 있습니다. 최수환 소우주 대표는 “초록병은 우리나라에서 재사용이 가장 잘 되고 있는 순환경제의 아이콘”이라며 “생수 페트병에서 발생하는 미세플라스틱 오염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보니 유리병을 선택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소우주는 아직 빈용기 보증금제 대상 기업은 아니에요. 그래서 소주 회사의 병을 재사용하진 않고, 같은 모양의 새 병을 따로 제작했다고 해요. 하지만 자체 수거와 보증금 지급 등을 통해 물병을 여러 번 다시 쓰고 있습니다. 주로 대규모 행사나 전시회에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을 위해 페트병 대신 소우주의 물을 쓴다고 하네요. 이 경우 행사장에서 바로 공병을 수거할 수 있어 대규모 재사용이 가능한 게 장점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방식의 재사용이 확대되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유리병 재사용 규모는 축소되는 추세입니다. 한때 재사용의 중심이 됐던 유리병 탄산음료가 페트병으로 대체되고 있기 때문이죠.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식당에서 제공되던 병 콜라와 사이다는 요즘 희귀종이 됐습니다. 콜라·사이다가 빈용기 보증금제가 적용되는 병제품으로 출고된 양은 2016년 52억2,600만 병에서 지난해 41억6,100만 병으로 크게 줄었습니다. 일부 탄산음료 마니아들은 탄산 보존이 잘 되는 병 콜라의 매력 때문에 인터넷에서 수소문해 사 먹기도 한다죠. 음료 기업들은 “페트병이 가볍다 보니 유통이 더 편리하고, 소비자에게 개별 판매한 병의 회수가 쉽지 않다”고 설명합니다. 즉, 병을 되찾지 못해 손해를 본다는 거죠.
지구가 일회용이 아니기 때문에, 장기적으론 다회용기가 편리하게 유통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겁니다. 이세준 한살림 기후위기대응팀 자원순환 담당은 “한살림의 유리병 재사용은 소비자의 반납에 의존하는 소규모 시스템이라 매년 적자가 나고 있지만 기후대응 효과를 기대하며 계속하고 있다”며 “재사용 횟수를 높이면서 경제적으로도 지속가능하려면 더 많은 업체들이 함께 회수하는 규모의 경제가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대기업 역시 의지는 있지만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CJ제일제당과 샘표는 지난해 ‘유리병재사용연대’의 질의에 ‘기존 유리병 재사용을 적극 검토해보겠다’고 응답했는데요. 다만 “표준규격병 생산과 유리병 수거 및 선별 체계 마련을 위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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