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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대 법률가,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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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전공의 도대체 너희들은 뭐냐, 유령이냐.” 파업 중인 전공의를 직격한 이 분노가 주목받은 것은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 사건의 의사 측 변호사 입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변호사는 “싸우지 않고 입만 살아서” 등의 원색적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전공의들이 고법에서 집행정지 신청을 각하·기각하자 “대한민국 법리가 무너진 것”이라고 반발한 것이 발단이다. 대법원 판단이 남았는데, 상황판단도 못 하고 사법부 불신 발언으로 제 발등을 찍는 모습에 변호사로서 화를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눈치 없기로는 대한의사협회가 한 수 위다. 판결 직후 담당 판사를 향해 “대법관 승진 회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조롱했다. 지난 3월 의사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의사 밑이 판·검사지...수학을 포기한 바보들인데”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조롱보다 판·검사, 변호사를 더 분노케 한 것은 아마 ‘법리’라는 전문 용어를 동원하며 판사보다 법을 더 잘 안다는 듯한 태도가 아닐까. 엄청난 경쟁을 뚫고 쟁취한 법률가의 전문성과 권위가 무시당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의사가 이번 의대 증원 과정에서 가장 화난 부분도 바로 전문성과 권위가 손상됐다는 느낌일지 모른다. 한 수 아래로 본 검사 출신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의대 정원을 늘리고, 판사가 이를 정당하다고 판결하는 이 나라 법률 체계가 자신들의 권위를 무시한 것으로 판단했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상대방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양대 전문가 집단인 의사와 법률가의 정면 대결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전문가 바보(Fachidiot)’는 전문가와 바보를 합성한 독일어로, 좁은 전문 분야밖에 모르면서 자기가 똑똑한 줄 아는 사람을 지칭한다. 우리나라 의사와 법률가 중 상당수가 전문가 바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다수 보통 사람은 그들이 바보인 줄 알면서도 불이익을 덜 당하기 위해 내색하지 못한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더 빨리 병을 진단하고, 법률해석을 내놓는 세상이 되면, 전문가 바보야말로 가장 먼저 일자리를 잃게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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