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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때 돌사진 한장 남기고 사라진 아이... 44년 만에 초등학교 졸업장 받았다

입력
2024.05.17 15:48
수정
2024.05.17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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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교육청, 실종 44년 만에 졸업장 수여
"희생된 학생들 명예회복 위해 노력할 것"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행방불명자 이창현군의 광주양동초등학교 명예졸업장. 연합뉴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행방불명자 이창현군의 광주양동초등학교 명예졸업장. 연합뉴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초등학교 1학년생으로 행방불명됐던 이창현군에게 명예졸업장이 수여됐다.

5·18민주화운동 44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오전 광주 서구 양동초등학교에선 5·18 행방불명자 이군의 명예졸업식이 열렸다. 졸업식에는 이군의 어머니 김말임(78)씨와 그의 누나 이선영(55)씨가 참석했다. 이군의 모교 후배인 양동초 5, 6학년생 30여 명도 함께했다.

모녀는 이군을 찾아 헤매던 시절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군의 누나 선영씨는 "같이 학교를 다니며 (이군이) 운동장에서 뛰어 놀거나 학교 앞 문방구에 쭈그려 앉은 모습을 잊지 못한다"며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해 가슴이 아프지만 이팝나무의 꽃처럼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오늘은 누나와 엄마의 꿈에 한 번 와주라"고 말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행방불명된 여덟 살 이창현군의 명예졸업식이 열린 17일 오전 광주 서구 양동초등학교에서 이군의 어머니가 눈물을 닦고 있다. 광주=뉴시스

5·18 민주화운동 당시 행방불명된 여덟 살 이창현군의 명예졸업식이 열린 17일 오전 광주 서구 양동초등학교에서 이군의 어머니가 눈물을 닦고 있다. 광주=뉴시스

어머니 김씨는 "광주를 찾기 전 창현이의 사진을 보고 '너한테 간다'고 말하고 왔다"며 "아들은 비록 못 찾았지만, 긴 세월의 한을 졸업장을 통해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라고 전했다. 양동초 동문인 박준수 시인은 추모시 '따뜻한 교정의 품에 안기렴'을 낭송했다.

1980년 양동국민학교에 입학한 이군은 같은 해 5월 휴교령이 내려지기 전까지 재학 중이었다. 그는 5월 19일 어머니가 외출한 사이 혼자 집을 나섰다가 행방불명됐다.

이군의 아버지 고(故) 이귀복씨와 가족들은 이후 10여 년간 계엄군이 오간 금남로와 지역 병원은 물론 경기 파주, 전남 영광 등 전국을 다니며 아들의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실패했다.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1980년 5월 27일 연행자들이 실려가는 버스에 이군으로 추정되는 아동이 탄 사진을 확보했지만 행적은 거기까지였다.

이후 이군은 1994년 행방불명자로 등록됐다. 행방불명 신고에 남은 이군의 사진은 한복과 도령모를 착용한 돌 무렵의 앳된 모습이다.

2020년 광주시교육청이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해 희생 학생 중 학업 중단자를 대상으로 명예졸업장을 수여하는 사업을 추진했지만, 이군은 제적증명서를 찾을 수 없어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5·18 민주화운동 보상 신청 당시 가족이 제출한 서류에서 이군의 제적 기록이 확인됐다.

박철신 시교육청 정책국장은 "그동안 제적 여부를 두고 많은 시련이 있었지만 이번 명예졸업장 수여식을 통해 이창현군과 유족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게 됐다"며 "희생된 학생들의 명예가 회복될 수 있도록 광주시교육청도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장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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