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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주기 5·18과 남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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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개혁신당 이준석 천하람 이주영 세 사람이 지난 15일 광주를 찾은 잔상이 가시지 않는다. 경남 김해에서 국화 1,000송이를 직접 공수해 5·18민주묘지 비석 995기에 헌화하고, 일일이 비석을 닦으며 7시간 30분간 절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모든 비석에 두 번씩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었으니 현기증에 다리가 휘청거린 게 당연하다. 정치인의 ‘이벤트’라 쳐도 진심이 느껴진 건 대구에 코로나19가 닥친 2020년 3월 계명대병원에서 봉사로 땀에 흠뻑 젖은 '의료인 안철수' 모습 이후 처음 아닌가 싶다.
□ 5·18민주화운동 44주년이다. 사실 장년층은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붙인 ‘광주사태’란 명칭과 함께 살벌하고 엄혹했던 시대 분위기를 기억한다. 인간은 대개 세상을 떠나기 전 자신의 허물에 용서를 구하지만 전씨는 마지막 순간까지 국민을 우롱했다. 부인 이순자씨는 남편을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칭송했다. 지난해 돌연 전씨의 손자가 “할아버지는 학살자”라며 광주로 향하자 피해 유족들은 손자의 용기를 품어줬다.
□ 5년 전 5·18은 모욕을 당하기도 했다. 자유한국당 김진태·이종명 의원이 공동주최한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에서 이 의원은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들에 의해 폭동이 민주화운동으로 변질됐다”고 했다. 김순례 의원은 “북한군 개입의 역사적 진실” 운운했고, 김진태 의원은 “5·18 문제만큼은 우파가 결코 물러서선 안 된다”고 했다.
□ 그랬던 당이 2020년 총선 참패 뒤 김종인 비대위 때 바뀌기 시작했다. 5·18 묘역에 가서 ‘무릎사과’를 했고 쇄신의 신호탄이 됐다. 김 위원장은 서강대 교수로 재직하던 1980년 6월 전두환 신군부가 광주를 무력으로 진압한 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만든 국보위에 재무분과 위원으로 참여한 행적을 사죄했다. 이듬해 탄생한 이준석 ‘30대 당대표’는 태극기부대를 멀리했다. 보수정당의 이런 노력 끝에 탄생한 게 지금의 윤석열 정부다. 우리 국민은 광주시민에게 큰 빚을 졌다. 10·26사태 후 권력공백이 생긴 와중에 내란집단의 계엄확대를 광주는 저항했다. 5·18 가치를 인정하고 헌법 전문에 담는 것은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실천하면 국민통합의 주춧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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