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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점심도 공짜 책도 없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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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선동에 있는 커피숍 '킵업 커피'에 자주 간다. 생두를 직접 볶아 판매하는 작은 로스터리 카페인데, 스페셜티를 비롯한 커피 맛이 좋아서 자주 들렀고 주인 부부의 인상이 좋아서 단박에 단골이 됐다. 시장통 파스타집 '아삐에디'의 계세언 셰프도 출근 전 항상 들러 커피를 한잔 한다. 며칠 전엔 아내와 함께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남자 사장님이 판매용으로 포장하던 드립백 중에 두 봉을 꺼내 선뜻 내주시는 게 아닌가. ‘아니, 판매용을 주시면 어떡해요’라며 사양했지만 계속 권하는 바람에 그냥 받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아내는 식탁 위에 놓인 드립백을 바라보며 '자신이 만드는 물건을 그냥 주는 건 정말 힘든 일'이라고 했고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광고회사에 다닐 때 카피라이터인 내게 전화해서 "급해서 그러는데 죽이는 헤드라인 몇 개만 써서 전화로 불러주면 안 될까?"라고 묻는 선배나 광고주의 무신경을 나는 얼마나 미워했던가. 그런데 커피숍에서는 '이렇게 커피가 많은데 두 봉쯤이야' 하고는 날름 받아 온 것이다.
작가가 되고 나서 달라진 점 중 하나는 가끔 모르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보내주고 싶으니 주소를 알려 달라’는 연락이 온다는 것이다. “작가님, 이번에 저희 출판사에서 이러이러한 양서를 출판하게 되었으니 부디 부담 갖지 마시고 그냥 한번 읽어나 보십시오”라는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나는 이런 이메일을 받으면 100 중 99는 다 사양하는 편이다. 그리고 답장을 보내며 끝부분에 이렇게 쓴다. "고맙지만 사양하겠습니다. 혹시라도 읽고 싶어지면 제가 개인적으로 사서 읽고 리뷰도 쓸게요." 연극이나 영화도 마찬가지다. 배우나 스태프들이 보내주는 초대권보다 '내돈내산(내 돈으로 내가 직접 산)' 공연이 훨씬 더 떳떳하고 속 편하다.
경제학자들 사이에 '공짜 점심은 없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듯 공짜 책도 사실은 공짜가 아니라 부채다. 책을 받는 순간 나는 그 책을 타인에게 권하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리뷰를 남겨야 한다. 그러지 않고 지나가면 오랫동안 '마음의 빚'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 내가 이번에 새 책을 내면서 지인들에게 책을 보내게 됐다. 출판사에서는 꼭 보내드리고 싶은 분이나 판매에 도움이 될 인사들의 명단을 작성해 보내달라 했다. 가까운 문화계 지인이나 이전 책의 추천사를 써 준 선생님들에게 한 권씩 보내드리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지인들에게 인사치레로 보내는 건 솔직히 책값이 아까웠다. ‘2만 원도 안 되는 돈이고 책상 위에 쌓인 새 책이 이렇게 많은데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물론이지!"라고 대답하겠다.
드립백 한 봉지에도 만드는 이의 땀과 노력이 가득 들어 있는 것처럼 책은 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의 총합이다. 작가와 기획자, 편집자들이 적어도 100번 넘게 그 프로젝트에 대해 생각하고 아이디어를 낸 후에야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책에 대해서만은 까탈스럽게 굴어도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 보내줘 봤자 읽지도 않고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책에 대한 포스팅을 하지도 않을 사람에겐 보내지 말자.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아주 깔끔해졌다. 옹졸하다 욕해도 할 수 없다. 공짜 점심도 공짜 책도 없다는 것만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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