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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엔 '자유주의'·한국에는 무례한 국가주의, 일본 정부의 이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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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 인터넷 플랫폼은 공통이어도, 인터넷 문화는 다양하다
인터넷은 세계 공통이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구글로 정보를 찾고, 유튜브로 동영상을 즐기고,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으로 친구를 만난다. 미디어 사상가인 마셜 매클루언은 미디어 기술의 발달이 전 세계 사람들이 마치 한 동네 사람들처럼 서로 연결되어 생활하는, ‘지구촌(global village)’이라는 이상향을 말한 적이 있다. 특정 동영상이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어느 나라나 비슷비슷한 가짜뉴스에 시달리고, 글로벌 플랫폼의 광고나 과금 방침에 따라 전 세계 사람들이 짜증을 내거나 기뻐한다. 이런 상황을 보면 인터넷 덕분에 정말로 지구촌 시대가 열렸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인터넷이 세계 공통 인프라로 자리 잡은 만큼, 오히려 차이점이 부각되기도 한다. 나라에 따라, 지역에 따라, 혹은 문화에 따라 플랫폼 이용 행태가 달리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인공지능(AI) 도움이 있어도, 언어의 장벽은 엄연히 존재한다. 타인과 소통하는 방식, 인간관계의 의미, 문화적인 습관 등이 다른 만큼 이런 차이는 필연적인 측면이 있다. 한편 인터넷 플랫폼을 기획, 운영하는 비즈니스 주체의 사정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기도 한다. 인터넷 생태계에는 거대한 글로벌 플랫폼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점에서 ‘보편적’ 문화가 존재하지만, 개별 지역의 사회적, 문화적, 혹은 IT 비즈니스 사정과 복잡하게 얽히면서 ‘개별적’인 특성을 강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미디어 인류학자로서 보편적인 ‘인터넷 문화’를 탐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일 간을 오가는 연구자로서 디지털 생태계의 차이와 다양성에 주목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고 인식하고 있다.
◇일본의 디지털 생태계
일본의 인터넷에는 고유한 역사적 맥락과 사회적 상황이 존재한다. 그 속에서 일본 사회 특유의 디지털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인터넷은 PC에서의 접속을 거쳐 스마트폰을 이용한 무선 인터넷 순서로 진화했다는 것은 상식이다. 일본에서는 그 순서가 반대였다. 스마트폰이 없었던 2000년대 초반부터 휴대폰을 이용한 무선 인터넷 접속이 활발했고, 그 뒤를 이어 PC에서의 인터넷 이용이 증가했다. 이런 양상은 다른 나라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정보통신 기술 선진국이었던 만큼, 1980년 후반부터 ‘PC통신’ 등 컴퓨터 네트워크가 꽤 보급되어 있었다. 다만 오랫동안 PC 이용자의 대다수가 컴퓨터 전공자나 관련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실력자’들이었고, 일반 이용자들은 네트워크 기술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특히 당시 일본에는 무선 인터넷 기능이 탑재된 다양한 휴대폰 기종이 잘 보급되어 있었다. 스마트폰 이전에 무선 인터넷 기능을 갖춘 휴대폰 기종들을 통틀어 ‘가라케(ガラケー)’라고 부른다. ‘갈라파고스(일본식으로 ‘가라파고스’) 휴대폰(일본어 ‘게이타이’)’이라는 뜻이다. 동태평양에 존재하는 갈라파고스 제도는 독자적으로 진화한 기이한 생물이 많이 발견되는 곳인데, 마치 갈라파고스 제도처럼 다른 나라와는 전혀 다른 휴대폰이 사랑받는다는 뜻에서 붙은 호칭이었다.
일본 독자적인 인터넷 문화가 이 가라케 시절에 많이 싹텄다. 예를 들어, 휴대폰 문자 메시지나 채팅앱에서 이미지를 문자처럼 사용하는 것을 ‘이모지(emoji)’라고 한다. 지금은 전 세계로 퍼진 아기자기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인데, 가라케로 이메일을 주고받던 문화에서 시작되었다. 참고로 일본식 한자로는 ‘絵文字‘라고 쓰고 일본 말로는 ‘에모지(えもじ)’라고 읽는다. 이 단어가 영어로는 ‘emoji’로 번역되어 보통명사화했고, 한국에서 ‘이모지’가 된 것이다.
한편 온라인 커뮤니티의 전체적인 구도에도 독특한 특징이 있다. 컴퓨터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마니아나 오타쿠들이 시작한 PC 이용자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의 계보와, 모바일 플랫폼(가라케, 스마트폰)에서 주로 인터넷에 접속하는 보통 이용자들의 커뮤니티의 계보가 별도로 존재한다. 예컨대 1990년대 말에 만들어진 ‘니찬네루(2ch)’는 극우 세력과 혐한의 발상지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온라인 커뮤니티다. 반사회적 범죄 예고 등 부정적인 일로 화제가 될 때가 많지만 일본의 초기 인터넷 문화 형성에 기여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 커뮤니티의 중추는 PC나 프로그램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오타쿠 성향의 남성이다.
반면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서 형성되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중심층은 대중문화와 팬덤에 조예가 깊은 여성들이다.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PC로 인터넷에 접속하는 이용자 집단과 모바일(가라케, 스마트폰)로 인터넷에 접속하는 이용자 집단 사이에 디지털 기술에 대한 이해도와 숙련도 차이가 컸다. 이런 특징이 온라인 커뮤니티의 전체적인 구도에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만 잘나가는 웹 사이트도 있다. 예를 들어, 2000년대 초중반에 전 세계에서 인터넷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글로벌 브랜드 ‘야후’가 유일하게 아직도 건재한 나라가 일본이다. 구글 등 신개념 검색 서비스가 약진하고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가 등장한 이후, 대부분 나라에서 야후가 힘을 잃었지만 유독 ‘야후 재팬’은 일본에서 가장 많은 유저가 방문하는 사이트로서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왜일까? 일본의 최대 IT기업인 소프트뱅크가 초창기부터 최대 주주로 나서서, 부지런히 콘텐츠와 사업을 현지화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소프트뱅크는 최근 한일 양국에서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메신저 ‘라인’의 완전 인수 대상자로 거론되는 회사이기도 하다.
◇‘라인 사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일본에서 라인은 디지털 생태계의 주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핵심적인 존재다. 라인이 없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압도적 위상을 자랑하는 커뮤니케이션 툴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인터넷 기업 네이버가 개발했지만, 일본에서 처음 출시되었고 일본의 유저들의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성장했다.
디지털 생태계라는 관점에서 최근 한일 양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라인야후’ 사태에 관심을 갖고 있다. 라인의 ‘국가 귀속’을 둘러싼 소모적 논란은 관심사가 아니다. 디지털 생태계는 다양한 기술 수준과 문화적 이해, 실천력을 갖춘 다양한 주체가 오랜 시간에 걸쳐 함께 쌓은 결과이다. 단일 기업이 뚝딱 만들어낸 성과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주목하는 맥락은 그런 디지털 생태계에 국가 권력이 강압적으로 개입한 부정적 사례라는 점이다. 기업의 실책도 없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문제가 된 라인야후의 지배구조를 보면 라인 운영과 관련한 네이버 측의 영향력은 이미 상당 부분 축소되어 있다. 일본 정부의 무리한 개입은 예상하기 어려웠다고 해도, 취약한 지배구조에 동의한 결정에 대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어쩌면 표면으로 드러낼 수 없는 경영진의 속내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기업의 의사 결정은 실패할 수도 있고, 한때의 실패가 장기적으로는 또 다른 성장의 기회를 만들 수도 있다. 네이버가 난제에 부딪힌 것은 사실이지만 당장 일희일비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다만 일본 정부가 민간 기업(라인야후)에 한국 측 지분 정리를 무리하게 압박한 것이 모든 사태의 도화선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인터넷 비즈니스는 경영과 기술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갑자기 기술 부문을 맡은 주체의 지분을 정리하라는 요구에서 인터넷 비즈니스에 대한 일본 정부의 이해가 얼마나 일천한지도 드러났다. 일본 정부의 이중적인 태도는 더욱 실망스럽다.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미국을 비롯한 서구 사회를 향해서는 자유주의의 수호자라는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어필해 오지 않았나? 왜 아시아 지역의 근린인 한국에 대해서는 태도가 일변했는지, 왜 한국 기업에 대해 무례하고 배타적인 국가주의가 여지없이 작동하는지, 제대로 된 답변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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