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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치고 심심한 우리의 출퇴근길에 퇴마사의 사연이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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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경쟁을 버텨내는 청년들에게 문학도 하나의 쉼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작품 중 빛나는 하나를 골라내기란 어렵지요. 소설집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으로 제55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송지현 작가가 청년들의 '자연스러운 독서 자세 추구'를 지지하는 마음을 담아 <한국일보>를 통해 책을 추천합니다.
‘퇴마록’을 처음 읽은 건 초등학생 때였다. 당시 친했던 친구의 다섯 살 많은 언니는 홍콩 영화와 만화책에 빠져 있었다. 친구의 집에는 비디오와 만화책이 쌓여 있어서 학교가 끝나면 친구네로 향해 언니가 빌려놓은 비디오와 만화책을 봤다. 그곳에서 나는 홍콩 배우 금성무를 사랑했고, 이세계(異世界)로 빨려 들어간 주인공들이 과연 어떤 세계에 남기를 선택할지 궁금해했으며, 요괴와 초식과 마법이 등장하는 꿈을 꾸며 졸았다.
어느 날, 만화책과 비디오 사이에 끼워져 있던 퇴마록을 만났다. 우리가 사는 바로 이곳을 배경으로 한 덕인지 그날은 퇴마록 비슷한 꿈까지 꾸었다. 친구의 언니가 흥미가 없었는지 더 이상 ‘퇴마록’을 빌려오지 않은 탓에, 용돈을 모아 만화대여점으로 갔다. 만화대여점의 문을 열고 들어선 뒤로는 더 이상 언니의 취향에 기대지 않아도 됐다. ‘드래곤라자’, ‘룬의 아이들’, ‘탐그루’, ‘묵향’···. 만화와 줄글은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들을 몰래 그려보기도,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소설을 써보기도 했다. 최초의 창작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우혁 작가의 ‘퇴마록’은 2001년에 완결됐다. 이상하게도 그 시절의 기억은 희미해서 언제쯤 완결된 작품을 봤는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이후 나는 록밴드의 공연을 보러 갈 때도 구두를 신고, 웬만한 일에는 심드렁한 척하는 성인이 되었다. 처음부터 어른이었던 사람처럼 그 후로도 오랜 시간을 유년 시절과 현재의 나를 분리해 생각했다.
‘퇴마록’을 다시 읽게 된 것은 장재현 감독의 ‘파묘’를 본 뒤였다. 같이 본 친구와 영화관을 나와서 왜인지 ‘파묘’가 아니라 ‘퇴마록’ 얘기를 한참 나눴다. 세계의 이면을 볼 수 있는 매력적인 인물들이 마를 물리친다는 설정 때문이었을까. 집에 오자마자 ‘퇴마록’을 구매했다. 그리고 장장 2주 동안 ‘퇴마록’과 함께하는 나날이 시작됐다.
‘퇴마록’엔 기본적으로 네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각각의 사연을 지니고 퇴마에 뛰어든 그들은 처음엔 국내의 사건을, 그리고 해외의 사건을 처리하고 마지막엔 멸망으로부터 이 세계를 지켜낸다. 그 과정에 함께 하는 기분으로, 출근을 할 때도, 퇴근하고 집에 와서도 내내 손에서 놓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이야기가 종결되었을 때, 울었다.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이었다. 등장인물들과 헤어지게 되어서, 이야기가 끝나버려서 아쉬운 기분은.
‘퇴마록’은 오컬트어반판타지라는 장르로 설명돼 있는데, 이 어반판타지라는 장르가 굉장히 흥미롭다.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순간, 이 공간에 어떠한 비밀이 감춰져 있다는 설정에서부터 이미 활력을 얻을 수밖에 없는 장르다. 늘 지쳐 오가던 출퇴근길이었지만 퇴마사들의 사연이 얽혀 있다고 상상하니 도시는 더 이상 심심하지 않았다. 상상엔 한계가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오래 잊고 있던 기분이다. 퇴마록을 읽고 난 뒤로는 아주 재미있는 꿈들을 꾼다. 그리고 뭐든 쓴다. 최초의 창작을 닮은 것 같아서,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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