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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에도 자격이 있나요"... 5·18 정신 잇는 하나의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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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왔으면서 5·18 추모를 왜 해?”
“장애인이 민주화운동을 할 수 있어?”
“젊은이가 5·18 추모라니, 정치적 의도 아냐?”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일은 주로 당사자의 몫이었다. 하지만 올해 44주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추모에는 광주시와 유관단체, 유족뿐 아니라 결혼이주여성, 장애인, 청년들이 함께한다. 이들은 5·18민주묘지를 참배하고 추모곡을 부른다. 5·18 비경험자에 대한 곱지 않은 시각에 이들은 반문한다. "우리도 광주 시민인데 추모에 배제되는 건 5·18 정신에 어긋나지 않나요."
조선족 출신 서영숙(51) 국제이주문화연구소 전 대표는 광주에 산 지 25년 된 결혼이주여성이다. 그는 매년 5·18이 되면 유독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도시의 추모 분위기는 낯설었다. 그만의 일이 아니었다.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학교에서 5·18민주묘지 견학이라도 가지만 이주여성들은 5·18에 대해 알기 어려웠다.
5·18 때마다 겉돌던 서 전 대표는 4년 전부터 직접 나섰다. 그해 5·18단체인 오월민주여성회 윤청자 회장과의 만남을 계기로 이주여성들을 모아 추모를 시작했다. 5·18민주묘지를 참배하고 5·18 사적지 탐방과 공연 등을 해왔다. 그는 "우리도 광주에서 수십 년을 살았는데 역사를 정확하게 아는 게 정착민으로서의 책무란 생각이 들었다”며 “지역사회와 융화될 방법이라고도 생각했다”고 말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추모 행사를 했다. 광주에 거주하는 이주여성 30명은 지난 11일 5·18민주묘지를 참배하고 무명 열사 묘역을 찾아 묘비를 닦았다. 5·18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약한 윤상원 열사 생가 등을 찾아 '임을 위한 행진곡'과 '아리랑'을 부르며 5·18 정신을 되새겼다.
추모는 5·18 당사자와의 연대를 만들었다. 서 전 대표는 "추모 첫해만 해도 5·18 진상규명이 미흡한 사실을 안타까워하며 잘 해결되길 바라는 심정이었다"며 "하지만 당사자와의 만남을 이어오다 보니 다들 당사자의 심정으로 추모에 임하게 됐다"고 말했다.
5·18에 그들의 삶을 투영하게 됐다. 서 전 대표는 "출신 국가는 다르지만 각국에서 경험한 민주주의 투쟁에 비추어 5·18을 이해하게 됐다"며 "오월의 정신을 광주뿐 아니라 다른 지역 이주여성들에게도 알려 민주주의의 필요성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추모에 장애인단체들도 적극 나서고 있다. 16일 오후 광주장애인총연합회, 광주장애인정책연대 등 단체들은 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했다. 지체장애 2급인 정성주 광주나눔장애인자립센터장은 "5·18 당시 장애인들도 군부에 희생되는 등 피해 당사자이지만 추모 행사에서 배제돼 왔다"며 "예산 등 여건 부족을 이유로 특정 시민을 배제하는 건 모든 국민이 평등하다는 5·18 정신에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장애인은 5·18 피해자다. 5·18 최초 희생자 청각장애인 김경철씨 등 수많은 장애인들이 군홧발에 짓밟혔다. 당시 김씨는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소리를 듣지 못해 공수부대원들 곤봉에 속수무책으로 맞았다. 군인들은 수어로 저항하는 김씨를 '벙어리 흉내를 낸다'며 더 심하게 폭행해 숨지게 했다.
이들에게 추모의 벽은 높았다. 정 센터장은 "5·18 행사에 수차례 참여하는 동안 장애인을 고려했단 걸 체감한 적이 극히 적다"며 "야외 행사에선 화장실 같은 기본적인 시설조차 이동식이 많고 장애인용은 잘 마련되지 않아 참여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5·18민주묘지로 가는 시내버스의 저상버스 비중도 적다. 정 센터장은 "누구나 5·18 행사에 갈 수 있도록 장애인을 위한 여건도 개선되면 좋겠다"며 "장애인들도 시민으로서 참여해야 진정한 추모가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광주에서 밴드 '우물안개구리' 보컬로 활동하는 장지혜(38)씨는 17일 열린 5·18 기념행사 전야제에서 오월어머니집 회원들과 함께 추모곡 '오월, 기다림' 합창 무대를 꾸몄다. 장씨는 해당 곡 가이드 녹음에도 참여했다. 무대에는 2014년 세월호 참사와 2022년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기리는 의미도 함께 담았다. 장씨는 "세 역사적 사실은 모두 국가의 잘못으로 인해 피해자와 가족에 큰 응어리가 졌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다만 5·18 때는 소통이 막혀 연대가 불가했지만 오늘날엔 청년 세대도 상황을 알고 아픔을 나눌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말했다.
5·18 비경험자인 장씨가 추모에 적극 나선 이유는 따로 있다. 그는 이달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장에서 즉석 공연 준비 중 5·18 전야제 홍보 배너를 내걸었다가 제지를 당했다. 정치적인 공연은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누구나 자유롭게 5·18을 추모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며 "5·18 희생을 추모하려는 순수한 의도가 발목 잡히지 않기 위해 우리 세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고 했다.
청년의 추모는 반복되는 비극을 막는다. 장씨는 "5·18 피해자들을 만나면 '해줄 수 있는 것도 없는데'라며 미안해하시면서도 먹을 것을 챙겨주며 반겨주신다"며 "아픈 과거를 잊지 않고 젊은 세대들이 기억해 다시는 그런 비극을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느껴진다"고 했다. 이들의 추모가 당사자에겐 위안이다. 장씨는 "어르신들께서 합창 연습을 할 때나 그림을 그릴 때면 5·18 관련 행사에서 보여주는 굳센 모습에 비해 여린 지점이 보일 때가 있다”며 “청년 세대의 참여가 이런 작은 변화라도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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