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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일자리 지켜준다더니 결국 해고"··· 두 번 우는 중증장애인 동료지원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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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장애인이 다른 중증장애인의 취업 활동을 돕는 일자리 사업인 ‘동료지원가 사업(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 지원 사업)’이 폐지 위기를 넘겼다. 올해 관련 예산이 전액 삭감(23억 원→0원)되면서 전국의 동료지원가 187명이 전원 해고될 상황이었으나, 당사자들이 투쟁 끝에 사업을 지켜냈다. 사업은 올해 고용노동부에서 보건복지부로 이관되며 '장애인동료상담 사업'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상담가 대부분이 '비자발적' 휴직이나 사직을 했고, 올해 지자체 공모 과정에서는 기존 사업 수행 기관 상당수가 탈락하면서 희망을 갖고 기다리던 많은 이들이 실직했다. 지난해 10월 사업 폐지 결정이 내려졌을 당시 동료지원가와 참여자 16인을 인터뷰한 바 있다(본보 2023년 10월 21일자 14면). 6개월이란 시간이 지나는 동안 그들의 일자리가 걸린 이 사업은 사라졌다 되살아나고 다시 옮겨지고 고쳐졌다. 그사이 정책 가장자리에 연결된 장애인들의 일상은 쉽게 흔들리고 주저앉았다. 다시 마주한 그들에게 안녕을 물었다. 인터뷰 내용을 편지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마음이_아파
저는 지난 2021년 9월부터 2년 넘게 서울 피플퍼스트 광진센터에서 동료지원가로 일했던 장동일입니다. 돌아보면 그 시간이 정말 좋았어요. 난생처음 월급을 받았을 때가 생각나요. 그 돈으로 물감이랑 스케치북을 사서 좋아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그려서 선물했습니다. '나도 필요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됐지요. 또 좋아하는 사람들과 여행도 가고, 좋아하는 영화도 보고, 가족들과 외식 가서 좋아하는 고구마 피자를 먹기도 했어요. 정말 좋았죠. 다른 사람들처럼 출근하는 뿌듯함을 느꼈고, 가끔 일찍 퇴근하는 날의 기쁨도 알게 됐어요. 이 사업이 폐지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래서 제가 해고된다는 걸 알았을 때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좋아하는 이 일을 계속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자꾸 자꾸 아파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곤 친구(활동가)들이 열심히 싸워서 사업이 폐지되지 않고 다시 살아났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저도 다시 일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으로 오래 기다렸는데 결국 이렇게 됐어요. 처음보다 마음이 더 아팠습니다. 눈물이 났고 화도 많이 났어요. 일은 못하게 됐지만 아침마다 사람들 만나러 똑같이 센터에 나와요. 그런데 길에서 출퇴근하는 사람들을 보면 요즘도 마음이 아파요.
#장애인이라서_잘렸다
저는 2022년 8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성북발달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동료지원가로 근무했던 남태준입니다. 다른 발달장애인의 취업을 돕기 위해 뭐든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다른 장애인들도 저처럼 좋은 일자리를 찾고 일하는 기쁨을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었어요. 이 일을 많이 좋아했습니다. 적어도 10년은 더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싶다고 떠들고 다닐 정도로요. 그런데 잘렸습니다. 처음엔 정부가 사업을 폐지하면서 잘렸고, 열심히 싸워서 다시 살아난 사업이 보건복지부로 옮겨진 뒤 다시 한번 잘렸습니다. 뒤통수 맞은 기분이에요. 제가 뭘 그리 잘못했나요. 도둑질을 했나요? 사람을 해쳤나요? 장애인들이 서로 돕는 이 일을 좋아했을 뿐이에요. 장애인은 일 안 해도 되는 존재이고, 그냥 불쌍한 사람들인가요? 지금 저는 함께 일하는 동료가 대출받은 돈으로 월급 받으면서 겨우 일하고 있어요. 너무 고맙지만 제가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자주 미안하고 자주 힘겹습니다. 요즘은 꽤 자주 ‘비장애인으로 태어났어야 했다’라는 생각을 해요.
#답답해요
저는 작년 12월까지 인천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에서 동료지원가로 일했던 김성현입니다. 성인이 된 이후로 여러 번 취업을 시도했으나 매번 장벽에 부딪혔어요. 좌절감을 느끼던 중 센터(협회)에서 상담을 종종 받았는데, 그때마다 위안을 얻었습니다. 저 또한 다른 이의 고민을 듣고 함께 해결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동료지원가로 일을 시작한 계기입니다. 상담가로서 전문성을 갖고 싶어 사이버대학에서 공부도 시작했어요. 일을 시작한 뒤로 생겨난 변화 중 가장 큰 것은 사람들과 교류가 생겨났다는 거예요. 단순히 돈 때문이 아니라,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어색하지만 관계를 만들어가는 그 과정이 되게 좋았어요. 느리지만 스스로 무언가를 이루고 있는 저를 발견했던 것 같아요. 졸업했던 학교에 종종 찾아가곤 하는데, 동료지원가로 적응한 뒤로 선생님들이 다들 제 표정이 좋아 보인다고 하셨어요. 가까운 친구도 저의 강력한 추천으로 동료지원가로 일하게 됐죠. 그런데 우린 동시에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어떤 기분일 것 같나요? 이제 그들을 볼 면복이 없어졌네요. 장애인은 잘 맞는 일자리를 찾기도 어렵고 기회도 훨씬 더 적어요. 이런 현실에서 동료지원가 제도는 당사자들이 같이 의논하고 연대할 수 있는 중요한 해방 통로나 다름없었어요. ‘언제 다시 일할 수 있을까?’ ‘바뀐 시스템에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매년 재계약한다면 나는 그때마다 생존할 수 있을까?’ ‘해고된다면 다른 일을 찾을 수 있을까?’ 저는 요즘 이런 생각들과 함께 흔들리고 있어요. 답답하고 불안하네요.
#일하고_싶다
저는 2020년 5월부터 작년 12월까지 서울 중랑구자립센터에서 동료지원가로 일했던 김춘희입니다. 장애인 당사자로서 다른 장애인을 지지하고 조력할 수 있는 이 일자리에 감사함을 느꼈어요. 한 사람의 장애인이 일자리를 찾아가는 데는 여러 층위에서 세심한 조력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동료지원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중요합니다. 경험이 쌓일수록 우리가 일자리를 구하는 장애인을 조력하는 전문성과 서비스의 밀도는 올라가게 돼 있어요. 1년씩 돌아가며 체험하듯 그냥 거쳐 가는 자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장애인 일자리의 핵심은 고용안정성이라고 생각해요. 우린 기회도 적고 새 일자리를 구하는 유연성도 떨어지기 때문이죠. 지금 상황이라면 운 좋게 동료지원가(동료상담가)로 일하게 되더라도 불안 불안하게 1년을 보낼 수밖에 없고 그러다 다시 기초수급자로 돌아가기 십상이죠. 이 사업이 보건복지부로 넘어가면서 업무에서 ‘취업 연계’ 부분이 빠지다시피 했는데, 그건 동료지원가 일의 성격이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럼에도 저는 다시 일하고 싶습니다. 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인디언에겐 말을 타고 달리다 '멈칫' 말을 세우고 내려 뒤를 돌아보는 오래된 의식이 있었습니다. 발걸음이 느린 영혼을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하상윤의 멈칫]은 치열한 속보 경쟁 속에서 생략되거나 소외된 것들을 잠시 되돌아보는 멈춤의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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