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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낸 위험한 개 기질 평가한다더니… 애먼 맹견만 잡는다

입력
2024.05.10 10:0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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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개물림 사고 막기 어려워, 실효성 의문"


정부가 맹견으로 지정한 5종 중 하나인 도사견. 전문가들은 위험한 개를 종이 아니라 개체별 기질 기준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정부가 맹견으로 지정한 5종 중 하나인 도사견. 전문가들은 위험한 개를 종이 아니라 개체별 기질 기준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달 27일부터 시행 중인 맹견사육허가제와 기질평가제를 두고 당초 취지인 개물림 사고 감소와 위험한 개 관리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제도가 공공안전에 위험을 주거나 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개가 아닌 이미 관리 대상인 맹견에만 집중돼 있어서다.

9일 농식품부에 따르면 지난달 27일부터 동물보호법상 맹견으로 지정된 5종(도사견, 아메리칸 핏불테리어, 아메리칸 스태퍼드셔 테리어, 스태퍼드셔 불 테리어, 로트와일러)은 올해 10월 26일까지 기질평가를 통과한 후 시·도지사의 허가를 받아야 기를 수 있다. 지정된 품종이 아닌 개도 개물림 사고를 일으키면 기질평가를 거쳐 맹견으로 분류될 수 있다. 전국에 등록된 맹견은 약 2,900마리로 파악된다.

맹견사육허가제의 핵심은 기질평가다. 맹견 5종에 해당하거나 사고를 내서 맹견으로 지정되면 기질평가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 총 세 번의 기회가 주어지는데 시·도지사가 공공안전에 위험이 된다고 판단하면 안락사를 시킬 수 있도록 했다. 보호자가 내는 테스트 비용은 25만 원이며, 나머지 시행에 필요한 금액은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한다.

맹견 사고 비율 파악조차 안 돼

영국수의사협회는 특정 종을 ‘위험종’으로 지정하는 것은 공격성이 견종에 의한 것이며 비지정종은 공격적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는 잘못된 인식을 조장한다고 밝힌 바 있다. 영국수의사협회 홈페이지 캡처

영국수의사협회는 특정 종을 ‘위험종’으로 지정하는 것은 공격성이 견종에 의한 것이며 비지정종은 공격적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는 잘못된 인식을 조장한다고 밝힌 바 있다. 영국수의사협회 홈페이지 캡처

하지만 이번에 도입된 제도가 연 2,000건에 달하는 개물림 사고를 줄이고, 사고를 낸 개들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대책을 마련하자던 당초 취지와는 벗어났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먼저 정부는 맹견 사육 조건을 강화했지만 정작 맹견이 사고를 낸 비율조차 집계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기질평가 도입의 계기가 됐던 경기 남양주시 사례를 포함해 사고를 낸 개들의 품종은 다양하다.

더구나 특정 종을 맹견이나 위험종으로 지정해 관리하는 영국과 독일 등에서도 이 같은 방식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상황이다. 영국수의사협회는 특정 종을 '위험종'으로 지정하는 것은 공격성이 견종에 의한 것이며 비지정종은 공격적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는 잘못된 인식을 조장한다고 밝힌 바 있다. 공격성을 나타내는 근본 원인보다 특정 품종을 겨냥하는 것은 시민도, 개의 복지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박정윤 수의사는 "정부의 제도는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은 맹견을 모두 잠재적 위험한 개로 인식하게 하는 낙인 효과를 강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질평가와 위험한 개 행동분석 기준 달라야

동물자유연대에서 보호 중인 도사견 초코. 초코는 사람을 좋아하고 순한 성격이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동물자유연대에서 보호 중인 도사견 초코. 초코는 사람을 좋아하고 순한 성격이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정부는 맹견뿐 아니라 사고를 낸 개들도 맹견에 포함시킴으로써 전반적인 위험한 개 관리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는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 더욱이 정부가 내세우는 기질평가 방식으로는 제대로 공격성을 분류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벌써부터 나온다. 기질평가제도를 도입한 독일에서도 맹견 종에 대한 기질평가와 공공안전에 위험을 주거나 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개에 대한 평가는 서로 기준이 다르다는 것이다. 박 수의사는 "사고를 낼 위험이 있거나 이미 낸 개의 경우 일반 기질평가와 달리 길러진 환경이나 사고를 낸 상황 등을 정밀하고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기질평가를 통해 같은 개일지라도 사육 환경에 따라 공격성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고 보호자의 사육관리 의무를 강화해야 하지만 이번 제도에서는 이에 대한 내용은 없다. 고의든 아니든 공격성 있게 기른 사람에 대한 처벌은 없고 이 보호자가 또 다른 개를 기르는 것 역시 막지 못한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개가 아니라 기르는 방식에 대한 문제가 있을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다"며 "종을 불문하고 모든 소유자의 사육 관리 의무를 강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정한 맹견 중 하나인 아메리칸 스태퍼드셔 테리어가 입마개를 하고 있는 모습. 현행법에서도 맹견은 외출 시 입마개를 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정부가 정한 맹견 중 하나인 아메리칸 스태퍼드셔 테리어가 입마개를 하고 있는 모습. 현행법에서도 맹견은 외출 시 입마개를 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한편 방치해서 기르는 개들이 사고를 내는 경우 보호자가 경제적 이유 등으로 기질평가나 교육 권고 자체를 거부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 과태료 300만 원을 부과한다는 조항이 있지만 개를 포기하거나 유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대표는 "이번에 도입한 제도는 특정 품종만 위험한 개로 분류한 현행 제도를 보완하기 위한 애당초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며 "동물이 피해를 볼 수 있는 여러 상황에 대한 고려가 부족해 대대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임영조 농식품부 동물복지정책과 과장은 "맹견의 경우 따로 사고를 집계하지는 않지만 과거부터 사냥이나 투견을 목적으로 특화시킨 종으로 사고를 일으키면 치명적 위험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감안했다"며 "앞으로 관련 자료를 수집해 통계를 확보, 관리하겠다"고 전했다. 이어 "시행초기라 보호자들의 불안감과 거부감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보호자들이 개를 안전하게 기를 수 있도록 추진하는 것으로 첫 시행인 만큼 융통성 있게 운영하겠다"고 덧붙였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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