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여친 목 수십 차례 찔러 살해한 의대생… "유급이 도화선 됐을 것"

입력
2024.05.09 13:00
수정
2024.05.09 14:02
구독

의대생 살인, 범죄전문가들 분석
흉기 준비, 고의성... 살인 계획 有
다만 이후 완전범죄 꾀하진 않아
도심서 감정 드러낸 표현형 범죄
"수능 만점보단 통제욕구에 주목"

서울 강남역 인근 건물 옥상에서 자신의 여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20대 남성 A씨가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서울 강남역 인근 건물 옥상에서 자신의 여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20대 남성 A씨가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여자친구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의대생의 범행 동기를 두고 전문가들이 완전범죄를 노린 전형적인 계획살인은 아니라고 분석했다. 여자친구에 대한 집착과 의과대 재학 중 유급 경험 등이 정신적 문제를 촉발해 범행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계획살인? 교제살인으로 봐야

서울 서초구 강남역 인근 건물 옥상에서 여자친구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8일 구속된 의대생 A(25)씨의 국선변호인은 서울중앙지법 영장실질심사에서 A씨가 범행을 계획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A씨는 △범행 약 2시간 전 경기 화성의 한 대형마트에서 흉기를 미리 구매한 뒤 피해자 B(25)씨를 불러내 △흉기로 B씨의 경동맥이 지나는 목 부위만 20여 차례를 찔러 숨지게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전형적인 계획살인과는 다르다고 봤다. 완전범죄를 노리는 계획살인과 달리 A씨가 범행 이후 치밀하게 움직이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교제 살인은 피해 여성을 응징하는 게 제1의 목적이라 일반 살인범죄와 달리 이후 증거인멸 등에는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쓴다"며 "과거 스토킹 살인 사건에서도 범인이 경찰이 출동하는데도 사건 현장을 이탈하지 않았듯, 이번에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A씨는 범행 후 투신을 시도하려다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A씨가 "약이 든 가방 등을 두고 왔다"는 진술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를 발견했다. 9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계획살인을 하려면 남들 눈에 띄지 않는 곳을 선택하는데 강남에서 오후 5시에 일어난 사건이다 보니 전형적인 계획살인과는 거리가 있다"며 "본인은 수사 과정 중 계획했다는 이야기를 시인한 것으로 보이는데 애당초 살해를 계획했는가 하는 부분은 앞으로 계속 따져봐야 할 문제"라고 했다.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전형적인 교제살인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교제살인에서 계획·우발 여부를 나누는 건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그는 "평소에도 A씨는 감정 격화를 반복하면서 '이번에는 안 죽이고 넘어간다' '이번에 말 안 들으면 너 죽고 나 죽는다'의 경계를 넘나들었을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발생한 살인은 완전한 우발로 보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왜 강남 한복판서... "표현형 범죄 전형"

8일 오전 서울 강남역 인근 20대 남성이 여자친구를 살해한 건물 옥상 입구. 김태연 기자

8일 오전 서울 강남역 인근 20대 남성이 여자친구를 살해한 건물 옥상 입구. 김태연 기자

A씨는 왜 강남 한복판에서 살인을 저질렀을까. 배 프로파일러는 A씨가 자기 감정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싶어하는 '표현형 범죄' 전형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피해자가 자신을 배신했다는 분노에 휩싸여 그 앙갚음을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심리가 작용했을 수 있다"며 "이런 표현형 범죄자에게 도심, 번화가는 뭔가를 알리려는 의도에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범행 장소를 평소 피해자와 자주 갔다는 A씨의 주장도 의심스럽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배 프로파일러는 "피해자 입장에선 옥상으로 끌려갔거나 억지로 만난 장소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가해자 주장을 바로 믿기보다 범행 현장에 자기 감정과 망상을 납득시키기 위한 서사를 부여한 건 아닌지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정 교수도 "옥상에서 투신을 하려다 발견된 지점이 주목을 끈다"며 "본인이 구조가 되는 와중에 옥상에서 가방을 가져와야 한다고 말한 사실이 이 사람의 성격적인 문제를 추정하게 만드는 대목으로 보인다"고 했다.

"의대 유급 경험 영향 미쳤을 것"

전문가들은 수능 만점을 받은 명문대 의대생이라는 배경보다는 A씨의 성향과 범죄 연관성을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A씨가 피해 여성이 자기결정권을 가진 인격체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물건처럼 대하는 경향이 강했을 것"이라며 "이번 사건은 '수능만점자라서', '의대생이라서' 일어났다기보단 오히려 '제아무리 수능만점 모범생이었더라도 집착적 성향으로 인해 끔찍한 살인을 저지를 수 있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수정 교수는 의대 유급 등의 경험이 범행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대학 진학해서 1년 유급을 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며 "아마도 굉장히 조용하지만 안에는 불만이 굉장히 쌓여 있을 시한폭탄 같은 사람일 개연성이 굉장히 높다"고 분석했다. 이어 "상대적으로 본인이 친구들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이 사람에게는 어떤 성격적인 문제를 촉발하는 도화선이 됐을 것"이라며 "사회적인 부적응에서 발생하는 욕구 불만을 아마 여자친구를 통제함으로써 충족시키려고 했던 것 같다. 아주 비뚤어진 욕망”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 "여자친구와의 이별을 피하고 상대를 통제하기 위해 자살극을 벌인 것 같다"며 "그런 통제 욕구는 일반 남성들에게서 쉽게 발견되는 건 아니다"라고 사이코패스적 성향 여부를 따져야 한다고 했다.

다만 곽 교수는 "상대방이 싫다고 함에도 계속 교제를 강요하는 측면이 사이코패스 기질 때문인지 자기중심적 경향이 강하기 때문인지는 진단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최은서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