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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로 다리 잃은 15세 미얀마 소녀의 절규… “왜 나에게 이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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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한국일보의 세 번째 베트남 특파원으로 부임한 허경주 특파원이 ‘아세안 속으로’를 통해 혼자 알고 넘어가기 아까운 동남아시아 각국 사회·생활상을 소개합니다. 거리는 가깝지만 의외로 잘 몰랐던 아세안 10개국 이야기, 격주 목요일마다 함께하세요!
지난달 2일 15세 소녀 마야예 마르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이날 그는 미얀마 동부 카야주(州)에 위치한 고향으로 돌아왔다. 올해 초 군부 폭격으로 가족과 함께 마을을 떠난 지 약 두 달 만이었다. 포성이 잦아들고 정부군에 맞서 싸우던 시민군이 마을을 탈환하면서 더 이상 위험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귀향의 기쁨은 곧 악몽으로 변했다. 그가 익숙한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긴 순간, 굉음이 들렸다. 작은 몸이 공중으로 붕 뜨더니 이윽고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정신을 차리자 눈앞을 가득 메운 연기 사이로 피투성이가 된 하반신이 보였다. 소녀의 두 다리를 앗아간 것은 정부군이 퇴각하며 매설한 대인 지뢰였다.
이후 마야예 마르는 고향에서 수십㎞ 떨어진 미얀마·태국 국경 인근 임시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다. 지난 2021년 2월 1일 쿠데타 발발 직후 군부 저항 시위인 ‘시민불복종운동(CDM)’에 참여했던 의사들이 시민을 위해 설립한 병원이다. 지금까지도 이곳에 입원해 치료 중이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지만 10대 소녀는 아직 자신에게 닥친 비극적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 지난달 12일 미얀마를 찾아 마야예 마르를 만난 미얀마 반군·난민 지원 단체 KTJ서포팅그룹 관계자는 한국일보에 “아이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며 한참을 울먹였다”고 전했다. 이어 “그가 ‘다른 사람들이 내가 다리를 잃은 것을 몰랐으면 좋겠다. 다리를 되찾고 싶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지 10일로 꼭 3년 하고도 100일이 흘렀다. 군정의 억압과 학살 속에서도 ‘미얀마의 봄(자유)’을 꿈꾸는 시민들은 끈질긴 저항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군과 반군 사이 일진일퇴 공방이 이어지지만, 승리의 무게추가 반군부 진영으로 조금씩 기울고 있다는 낙관적인 분석도 나온다.
다만 아직 장밋빛 미래를 언급하긴 이르다. 수세에 몰린 군정은 점점 잔혹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뢰 매설이다. 정부군은 최근 철수 과정에서 민가, 주민센터, 사찰, 농경지 가릴 것 없이 지뢰를 숱하게 뿌리고 있다. 대부분 밟으면 발목을 앗아가는 M-14나 무릎까지 날아가는 MM2 대인 지뢰다. 민간인에게 피해를 주고 저항 세력의 사기를 꺾으려는 조치다.
그간 미얀마에서 지뢰 공격이 없던 것은 아니다. 3년 넘는 교전 기간 미얀마 정부군과 반군은 서로의 진격로에 수많은 지뢰를 매설했다. 그러나 시민군과 소수민족 반군이 공세 수위를 높이자 군부가 민간인에게마저 비인도적 범죄를 저지르는 방식으로 맞서고 있다는 얘기다.
이 같은 분위기는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쿠데타 발발 첫해와 2022년 각각 284명, 390명이던 지뢰 사상자 수는 지난해 1,052명으로 급증했다. 대부분 군부와 저항 세력 간 교전이 격화한 하반기에 발생했다. 피해자의 다섯 명 중 한 명(20%)은 어린이다.
심지어 정부군이 시민들을 ‘인간 방패’로 사용하며 지뢰 지역을 돌파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AP통신은 서부 친주(州)에 살던 한 남성을 인용, 군인들이 지뢰가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안전하게 지나가기 위해 주민 10명을 포로로 잡은 뒤 먼저 건너가게 했다고 전했다.
지뢰는 미얀마의 미래까지 저당 잡는다. 행여 쿠데타 군부가 무너지고 미얀마에 평화가 찾아온다고 해도 현재 땅속에 묻힌 살상 무기가 언제, 어디서 목숨을 위협할지 모르는 탓에 불안을 안고 살아야 한다. 총성이 잦아들어도 전쟁의 상흔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지뢰 제거는 미얀마의 장기 과제가 될 전망이다. 미얀마 카야주에서 활동하는 소수민족 무장단체 카렌니민족해방전선(KNPLF)의 사이 칫 흘라잉(40) 지상군 전략사령관은 한국일보에 “주민들이 산책을 하다가, 먹거리를 구하기 위해 채집에 나서다가, 반려동물을 찾으러 나서다가 지뢰를 밟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며 “지금은 가능한 안전을 확보해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고, 우리의 봄 혁명이 성공한 뒤에는 지뢰 제거 작업이 지역 재건 우선순위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얀마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것은 지뢰뿐만이 아니다. 군부의 ‘강제 징집’도 청년들이 직면한 실존 위협이다. 올초부터 전선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정부군 수만 명은 별 저항 없이 반군에 항복하거나 국경을 넘어 인도, 방글라데시 등 이웃 국가로 도망쳤다.
병력이 부족해진 미얀마 군부는 징병 카드를 꺼냈다. 지난 2월 18~35세 남성과 18~27세 여성을 대상으로 2년간 군 복무를 의무화한 병역법을 시행한다고 발표하고 3월 말부터 강제 징집에 돌입했다. 최대 도시 양곤에서는 길을 걷다 갑자기 군대로 끌려가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청년들은 원치 않는 입대를 피해 밀림에 숨어들거나 국경을 넘어 태국 등으로 도망가고 있다. 해외 도피를 위해 부랴부랴 여권 신청에 나선 이들이 몰리면서 제2도시 만달레이에서는 압사 사고까지 발생했다. ‘미얀마 엑소더스(대탈출)’가 수개월째 이어지자 쿠데타 군부는 지난 2일 자국민의 해외 취업 허가 절차까지 중단했다.
현지 매체 미얀마나우는 “태국과 다리로 연결된 미얀마 동부 미야와디의 국경검문소는 군에 끌려가지 않으려는 젊은이들의 탈출 행렬과 교전을 피해 고향을 떠나는 피란민들이 몰리며 연일 북적거린다”며 “평상시 미얀마에서 태국으로 입국하는 인원은 하루 약 1,900여 명 수준이지만, 최근에는 4,000명 규모”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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