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개혁’이라더니… 공론화까지 해놓고 17년 만의 연금개혁 또 좌초

입력
2024.05.08 04:30
수정
2024.05.08 06:44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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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국회 연금특위 활동 종료 선언
소득대체율 43% vs 45% 타협 실패
정부, 모수개혁 목표·방향 제시 안해
국회, 시민 숙의 결과에 논쟁 되풀이

주호영 국회 연금개혁 특별위원장과 여야 간사들이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유럽출장 취소 및 연금개혁특위 활동 종료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간사, 주호영 특위위원장, 유경준 국민의힘 간사. 김성주 의원실 제공

주호영 국회 연금개혁 특별위원장과 여야 간사들이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유럽출장 취소 및 연금개혁특위 활동 종료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간사, 주호영 특위위원장, 유경준 국민의힘 간사. 김성주 의원실 제공

국회로 넘어간 연금개혁이 공회전만 하다 결국 좌초했다. 여야가 연금 재정 지속성을 위해 ‘더 내기’ 필요성에는 공감했으나 ‘얼마나 더 받을지’를 두고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탓이다. 정부는 ‘3대 개혁’ 중 하나로 연금개혁을 강조하면서도 그간 분명한 목표를 제시하지 않았고, 국회는 2022년 7월 연금개혁특별위원회를 설치한 후 2년 가까이 되도록 결론을 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양측 모두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연금특위 주호영 위원장은 7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연금특위 활동 종료를 알렸다. 여야는 이날 막판 타결을 시도해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올리는 데는 합의했다. 하지만 소득대체율(가입기간 평균소득 대비 연금액, 2028년 40%)을 얼마나 올릴지를 놓고 국민의힘은 재정 안정을 위해 43%를 제시한 반면 민주당은 노후 소득 보장을 위해 45%는 돼야 한다고 주장해 끝내 협상이 결렬됐다. 1998년 1차 개혁, 2007년 2차 개혁 이후 17년 만에 어렵사리 입법 문턱까지 다다른 연금개혁 논의가 2%포인트 차이에 발목이 잡혀 무위로 돌아간 것이다. 국민연금은 현행 제도대로 운영될 경우 2041년 적자 전환 후 2055년 기금이 소진될 것으로 예측된다.

사실 연금개혁 실패는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기도 하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국민연금 장기 재정 전망과 제도 개선안을 포함한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발표하면서 기금 고갈 시기 및 노후소득과 맞물린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연금 수급 연령 등 이른바 ‘모수(母數)개혁’이라 불리는 중요한 목표치는 모두 비워 놨다. 정부가 개혁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지 않고 책임을 국회로 떠넘겼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지난달 연금특위 산하 공론화위원회 숙의토론에 참여한 시민대표단은 △보험료율을 13%로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을 50%로 높이는 1안과 △보험료율을 12%로 올리되 소득대체율은 현행 40%를 유지하는 2안 중에 1안(56%)을 선호했다. 그러나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재정을 더 어렵게 하고 미래세대 부담을 키울 수 있다”며 사실상 반대 의사를 표했다. 정부가 연금개혁 목표를 재정 안정에 뒀다면 처음부터 구체적인 수치를 제안하고 국회를 설득했어야 한다. 시민 숙의를 거치고도 국회에서 논의가 꼬인 건 애초 정부가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은 탓이 크다.

4월 13일 KBS에서 열린 '선거제도 공론화 500인 회의'에 참석한 시민들이 선거제 개편에 관한 숙의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KBS 화면 캡처

4월 13일 KBS에서 열린 '선거제도 공론화 500인 회의'에 참석한 시민들이 선거제 개편에 관한 숙의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KBS 화면 캡처

국회도 시간만 축내면서 책임을 방기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연금특위가 공론화 자리를 마련하는 데 2년 가까이 걸렸다. 21대 국회 종료를 불과 두 달 남겨둔 시점이었다. 공론을 토대로 개혁안을 도출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국회는 시민 숙의 결과를 둘러싼 논쟁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했다. 설사 시민이 선호한 ‘더 내고 더 받기’가 재정 건전성 문제가 있다 해도, 미흡하나마 최소 합의가 가능한 지점을 찾아 개혁의 시동을 걸어 놓고 다음 국회에 개선 과제를 맡겼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여야 협상이 빈손으로 끝나면서 공론화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에 이른 보험료율 인상, 연금 수급 연령 상향 등 여러 성과들까지 퇴색되고 말았다.

국회가 연금개혁에 실패한 데는 윤석열 대통령 책임도 없지 않다. 윤 대통령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영수회담에서 “연금개혁을 22대 국회로 넘기자”고 말했다. 국정 최고책임자가 개혁 완수 의지를 접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상황에선 정부 여당이 운신할 폭이 좁아지고 타협안을 도출할 의지도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21대 국회는 29일 문을 닫는다. 연금개혁 논의는 22대 국회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국회가 원 구성 등에 바빠 연금특위 구성 등은 후순위로 미뤄질 가능성이 크다. 2026년에는 지방선거가, 2027년에는 대통령선거가 있어 사실상 2025년부터는 선거 정국으로 들어서게 된다. 언제 연금개혁이 이뤄질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워졌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연금개혁이 1년 지체될 때마다 필요한 국가 재정이 5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21대 국회에서 남은 기간만이라도 개혁안 논의가 이어지도록 정부는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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