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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화폐·금융전쟁으로 번지는 러·우 전쟁

입력
2024.05.07 19:00
25면

편집자주

세계의 지정학적 리스크와 경제적 불확실성이 매우 커졌다. 우리의 미래 또한 국제적 흐름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이 흐름의 실상과 방향을 읽어 내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4월 11일 벨기에에 본부를 둔 유로클리어 건물 앞에서 러시아 연방은행 몰수자산에서 발생한 수익을 우크라이나로 보내줄 것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게티이미지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4월 11일 벨기에에 본부를 둔 유로클리어 건물 앞에서 러시아 연방은행 몰수자산에서 발생한 수익을 우크라이나로 보내줄 것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게티이미지


미국, 러시아 재산 몰수법 통과
유로클리어를 통한 몰수도 가능
러시아 보복 땐 국제분쟁 우려

지난달 마침내 우크라이나 지원 법안이 미 의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보다 신경 쓰는 건 '21세기 힘을 통한 평화법'이 제정돼 미국 행정부가 러시아 동결 자산을 몰수하고 우크라이나에 이전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러시아는 이를 맹렬히 비난하고, 중국의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도 국제금융질서를 해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 서방 측은 러시아 중앙은행의 자산 2,820억 달러를 동결했다. 이 중 상당 부분인 2,070억 달러를 벨기에 소재 유로클리어가 관리하는데, 이 회사는 약 37조 달러의 글로벌 자산을 관리하는 세계 최대 예탁결제기구이다. 미국에 동결된 러시아 중앙은행 자산은 약 50억 달러에 불과하다. 서방 측에서는 동결된 러시아 중앙은행의 자산을 활용하려는 아이디어가 검토됐다. 첫 번째 방안은 몰수이다. 찬성론자들은 러시아의 침략행위에 대한 대응조치로 몰수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반대론자들은 중앙은행의 자산은 국제법상 보호된다고 맞선다. 미국은 이번에 입법으로 그 근거를 마련했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공식적으로 교전 상대국이 아닌 러시아의 자산 몰수에 대해 신중하다. 유럽중앙은행은 유로의 안정성을 해칠까 우려한다. 만약 러시아 자산을 몰수하면 중국,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등 비서방 측 국가들이 유럽에 투자하는 걸 주저할 것이다. 이들이 유럽 금융계에서 대거 자산을 회수할 경우 유럽 금융시장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러시아도 비우호적 국가들의 기업들이 러시아에 보유한 자산을 몰수하는 등 강력한 보복에 나설 것이다.

두 번째가 러시아의 자산을 담보로 활용해 대출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담보로 제공된 자산의 소유권에 변동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몰수와 마찬가지 결과가 된다. 다른 방안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전쟁 피해에 대한 배상금을 수령할 경우에만 지불을 하는 채권을 동결된 자산 금액만큼 발행하는 것이다. 다만 우호국가들이 이 채권을 매수해줘야 한다. 또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대한 배상금 청구권을 우호국가들에 담보로 제공하고 신디케이트론을 받는 것도 검토됐다. 그러나 이런 아이디어들은 법률적 리스크가 여전히 크다.

보다 현실적인 방안이 러시아 자산으로부터 발생한 이자수익을 활용하는 방안이다. 유로클리어는 러시아가 소유하는 채권 등 자산의 만기가 도래하면 상환된 현금을 계좌에 보존한다. 이 돈이 현재 약 1,320억 유로에 달하는데 제재 때문에 러시아에 지급할 수 없다. 작년에만 이 돈에 대한 이자가 44억 유로에 달했다. 러시아가 강력하게 반발하지만, 유로클리어는 계약에 따라 이 이자가 자신에 귀속된다고 주장한다. 횡재를 한 것이다.

지난 2월 EU 지도자들은 이 이자수익을 우크라이나 지원에 쓰기로 거의 의견을 모았다. 2027년까지 150억 내지 200억 유로를 제공할 수 있다. 유로클리어가 소재한 벨기에는 이 이자수익에 대한 세금 중 일부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겠다고 했다. 다음 달 이탈리아 G7 정상회의에서 논의해 결정이 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는 몰수는 물론이고 이자수익을 함부로 이용하는 경우 법적으로 대항하겠다는 입장이다. 유로클리어는 동결 자산 관련, 이미 50~100개의 소송을 러시아에서 당하고 있고 이는 향후 더 증가할 것이다. 러시아 법원은 서방 측 제재를 인정하지 않고 유로클리어가 보유한 러시아 자산을 압류할 수 있다. 나아가 러시아가 홍콩, 두바이 등에 소재한 유로클리어의 자산을 압류해 유로클리어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면 구제해야 할지도 모른다.

바야흐로 우크라이나 전쟁은 국제적인 화폐금융전쟁으로 비화되고 있다. 이 전쟁의 결과는 향후 국제화폐금융질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김동기 작가·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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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기작가·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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