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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곡물 가격 폭락 중인데, 왜 한국 농산물만 '금값'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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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표 이코노미스트인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가 세계 경제의 흐름과 현안을 진단하는 ‘홍춘욱의 경제 지평선’을 3주에 1회 연재합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9%로 내려앉긴 했지만 앞으로도 물가 안정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다.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는 가운데, 최근 외식을 비롯한 개인서비스 물가가 다시 꿈틀대고 있기 때문이다. 왜 한국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는지 그 원인을 파헤쳐 보자.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이 수십 년째 40% 전후에 그치기에 해외에서 부족한 농산물을 수입한다. 따라서 한국의 농산물 물가는 해외 곡물시장의 흐름에 영향을 받을 개연성이 높지만 최근 세계 곡물 가격은 연일 폭락 중이다. 곡물가격의 하락이 나타난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이 늘어난 데다, 원유 가격이 2021년 고점에 비해 크게 내려온 데 있다.
국제 원유 가격의 변동과 곡물 가격 상승에 무슨 상관이 있는지 궁금해하는 독자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원인은 바로 바이오연료에 대한 보조금 지급이다. 바이오연료란 콩이나 옥수수 등 녹말(전분) 작물에서 포도당을 얻은 뒤 이를 발효시켜 만든 에너지원을 뜻한다. 바이오에탄올은 휘발유를 대신해 사용되며, 주로 옥수수로 만든다. 반면 바이오디젤은 콩기름이나 유채기름 등 식물성 기름이 원료다. 경유 대신 쓰이거나 경유와 섞어 사용한다.
그러나 바이오연료의 연비가 좋지 않기 때문에 국제유가가 쌀 때에는 바이오연료를 최저 수준으로 섞는 게 일반적이다. 반면 원유 가격이 상승하는 순간 바이오연료 사용량이 급격히 늘어난다. 경제성 확보를 위해 경유 등에 섞는 바이오연료 비율을 상한선(미국‧유럽연합 10%, 인도 7.5%)까지 높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바이오디젤이나 바이오에탄올에 사용되는 곡물이 날로 많아지는 데 있다. 세계 최대 곡물 생산국인 미국의 옥수수 생산 중 약 35% 이상, 콩 생산량의 40% 이상이 바이오연료로 사용된다. 그러나 이는 에너지 효율 측면에서 비효율적이다. 왜냐하면 콩이나 옥수수로 얻어진 바이오연료의 효율이 높지 않고, 또 이 작물의 생산에 투입되는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학계에서는 에너지 수지비(Energy Profit Ratio·EPR)가 낮다고 한다. 옥수수를 예로 들자면 옥수수 생산에 투입된 에너지에 비해 바이오에탄올의 에너지 비율이 0.8에 그친다. 제조에 투입된 에너지가 얻어지는 에너지보다 크다는 뜻이니, 바이오연료 의무 혼입제도는 에너지 낭비일 뿐이다. 그러나 각국의 정치적인 사정이 겹쳐 있는 탓에 이 제도가 폐지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결국 2022년부터 시작된 강력한 곡물 가격의 상승과 하락 현상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곡물 수확량 감소 우려뿐 아니라 원유 가격 급등이 불러온 현상임을 알 수 있다. 다행히 최근 중동지역의 갈등이 완화하는 징후를 보이는 만큼 원유 및 곡물 가격의 연쇄적인 상승 위험은 낮아진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곡물 가격의 하락 국면에 한국 식료품 가격이 오르는 현상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최근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이 1,400원에 근접한 것도 한국 농산물 가격의 상승 원인으로 작용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국제 곡물 가격 추이를 보면 국제 곡물 가격의 하락 속도가 환율 상승 속도보다 더 가파른 것은 물론 국제 곡물 가격에 비해 한국의 농산물 가격이 훨씬 비싼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국제 곡물 가격과 환율 등 외부 요인이 아니라면 남은 후보는 내부 요인뿐이다. 지난해 한국의 농가 숫자가 처음으로 100만을 하회한 데 이어,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이 52.6%에 이른 것이 내부 요인을 이해하는 핵심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고령인구 비중이 높아지면 생산성 향상을 기대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소비자 요구에 부합하는 다양한 상품의 재배 가능성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연도별 벼 재배면적과 생산량 동향을 살펴보면, 2017년 10a(아르‧1a는 100㎡)당 527㎏의 쌀을 생산하던 것이 2023년에는 523㎏에 그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재배면적당 쌀 생산량의 감소는 전반적인 생산성의 저하가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한다.
한국의 사과 재배농가가 단일 품종에 집중한 것도 문제다. 최근 사괏값 폭등의 원인은 4월 초 찾아온 꽃샘추위로 사과 꽃이 떨어져 수확량이 30% 이상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만일 한국의 과수 농가가 특정 품종만 재배하지 않고 다양한 종류의 사과 농사를 지었다면 어느 정도 피해를 줄일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특정 품종만 재배한 탓에 발생한 대표적인 비극이 19세기 후반 아일랜드 감자 기근이다. 원래 안데스산맥의 농부들은 매우 다양한 종류의 감자를 키웠고 이런 현상은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안데스산맥의 농부들이 수천 가지에 이르는 다양한 감자를 키운 것은 병충해 및 냉해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즉 일종의 ‘분산투자’를 통해 만일의 사태에 대응할 목적이었던 셈이다.
반면 19세기 아일랜드의 농부들은 가장 수확량이 많은 감자 품종만 재배했는데, 영국계 지주에게 수확한 밀을 다 빼앗긴 후 우유와 감자만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18세기 중엽 기준으로 아일랜드의 1에이커(4,047㎡)당 밀 생산량은 연간 600㎏에 그친 반면, 감자 생산량은 무려 1만 ㎏을 웃돌 정도였다. 이 덕분에 아일랜드 인구는 17세기 말 200만 명에서 19세기 중반에는 800만 명까지 부풀어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1845년 9월 13일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천연비료(구아노)를 들여온 선박을 통해 감자마름병이 상륙하면서 비극이 시작됐다. 특히 불운했던 것은 1846년 여름이 아일랜드 역사상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비가 잦았다는 데 있다. 감자마름병은 10도 이상의 기온과 90% 이상의 습도가 유지될 때 증식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었던 탓에 아일랜드 감자 수확량은 평년의 25%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아일랜드를 지배하던 영국 정부가 신속하게 대응했다면 좋았을 것을 ‘곡물법’이 식량 수송의 걸림돌이 됐다. 영국 지주의 이해를 보호하기 위해 농산물 수입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었기에 아일랜드로 실어 보낼 여분의 식량이 부족했던 것이다. 결국 1846년 겨울에만 약 200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살아남은 사람도 정든 고향을 떠나 미국 등 낯선 땅으로 이주하면서 아일랜드 인구는 다시 200만 명 수준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다시 한국의 사과 이야기로 돌아오면 올해도 안정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다. 경북 북부를 비롯한 사과 생산지역에서 사과 꽃이 피지 않는 이상 현상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과 파동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품종의 사과를 재배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한편, 해외에서 사과를 수입해야 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모두 힘든 상황이다.
농촌의 노령화 속에 새로운 품종의 묘목을 심으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데다, 검역에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크게 낮아지기는 힘들며 급박한 내수경기 위축에도 불구하고 한국은행이 적기에 금리를 인하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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