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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안 읽으니 내가 읽어주마"…잊혀진 책 '역주행' 시키는 서평가 김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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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시대 철학자 키케로는 "책 없는 방은 영혼 없는 몸과 같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책이 뭐길래, 어떤 사람들은 집의 방 한 칸을 통째로 책에 내어주는 걸까요. 서재가 품은 한 사람의 우주에 빠져 들어가 봅니다.
"하하하. 이상한 얘기 많이 들었죠. 한 명이 아니라 네 명이 한 팀으로 분야를 정해 돌아가며 쓴다, 문체를 보면 여자가 아니라 남자다, 서평 한 건당 수십만 원씩 원고료 받아 챙긴다, 사실 오래된 등단 작가가 가명으로 쓰는 거다, 같은 얘기들요. 문단과 인연이 전혀 없는 데다, 얼굴을 내비치지 않으니 온갖 억측이 나돌았던 것 같아요. 서평 쓰고 북토크 해 봐야 저한테 1원 한 푼 떨어지는 것도 없는데."
2019년이었다. 페이스북에다 서평을 열심히 올리기 시작한 게. 어느 날 나타난, 만만치 않은 공력을 내비치는, 에두르지 않고 직진하는 필체로 내갈기듯 써내려가는 서평가 '김미옥'이 등장하자 그 정체를 두고 출판계가 끓어올랐다. 서평 하나에 책 판매가 수백 부씩 꿈틀대자 '저 사람 대체 누구냐'는 말들이 떠돌기 시작했다.
그 서평가 김미옥(66)씨를 지난 5일 경기 성남 분당 자택에서 만났다. 손에 잡히는 대로, 닥치는 대로, 그러다 꽂히는 분야나 작가가 있으면 한 번에 쭉 읽어대는 습성 때문에 한 해에 읽는 책만 해도 800권 남짓이다. 그러니 집에 가면 책이 산을 이루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집 안은 단출했다. 한 달 전쯤 이사하며 책을 싹 한번 정리한 참이라 했다.
원래도 책을 쌓아 두지 않는다. "이삿짐 쌀 때마다 아쉬운 소리 해야 하고 웃돈 얹어줘야 하고, 아이들은 어릴 적에 내내 불편하단 소리를 하고. 잘 아시잖아요, 책 좋아하는 사람의 불편함을. 그래서 아예 사회복지기관과 결연 맺고 두 달에 한 번 정도씩 책을 싹 걷어가게 했어요." 책을 싸안고 끙끙대지 않는 스타일 또한 글만큼이나 시원한 느낌이다.
책도 죽었고, 책을 다루는 매체도 죽었고, 셀럽도 유튜버도 아닌 전문 서평가들 또한 다 사라져간다는 아우성이 요란한 시대에 김씨는 말 그대로 홀연히 나타난, 말하자면 '역주행 서평가'다. 어디 있다가 나타났을까.
서평가로서 활동을 굳이 따지자면 시작은 2000년대 초부터였다. 네이버 블로그가 생기면서 소일거리 삼아 썼다. 써놓고선 1년에 한두 번씩 지웠다. 부끄러워서였다. 그런데 이 글들이, 글쟁이들 사이에 입소문을 탔다.
당시로선 만나 본 적도 없는 문학평론가 염무웅 같은 분들이 글을 써보라 권했다. 그때만 해도 "출신 성분에 따른 자격지심, 자기 검열" 때문에 손사래치고 말았다. 작가도 아니고 대학 문예창작과 출신도 아니고 문학 전공자도 아닌데 무슨, 싶었다.
그러다 만난 사람이 '여자전' '김서령의 家' 등을 쓴 김서령(1956~2018) 작가다. "전혀 모르는 분인데 꼭 만나고 싶다며 저를 굳이 찾아오셨더라고요. 만나서는 제 글을 두고 사람을 확 몰아세우는 재주가 있는 '미옥체'라면서 뭐든 무조건 써라, 정 부담되면 페이스북 같은 데다 일단 무조건 써보라 하셨고요."
그러던 김 작가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의 간곡함에, 그분에 대한 미안함에 페이스북에다 서평을 올리기 시작했다. 출판사 사장이나 작가들과 미팅 약속, 각종 강의와 기고, 북토크 일정으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지금은 거기서 출발했다.
책은 어린 시절 지독한 가난을 잊기 위한 통로였다. "말하자면 '결핍'이죠. 결핍은 사람을 일찍 절망하게, 그리고 조숙하게 만들지요. 몰입할 거리가 필요해서, 그래서 더 그렇게 책을 읽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리 어려운 집은 아니었는데 재주 많던 아버지의 잘못된 빚보증에 초등학교 입학 무렵 집안이 거덜 났다.
가난해서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책만 읽었다. 초등학생 때는 문예반장에다 학교 도서관 관리를 도맡았다. "그 시절 도서관이라 해봐야 집에 남는 책 가져와서 꽂아두는 수준이었죠 뭐." 그래도 소득은 있었다. 아무 책이나 집어오다 보니 어른들이나 보던 수준 높은 문학작품들은 물론, '채털리 부인의 사랑' 같은 야한 19금 작품도 많았다. 알 듯 말 듯 재미있게 읽었다.
7남매의 막내였던 그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자 '미션'이 떨어졌다. 어여 빨리 돈 벌어 오빠들을 학교에 보낼 것. 그를 눈여겨봐왔던 담임 선생님이 집까지 찾아와 엄마와 담판을 벌였다. "얘는 그리하면 안 된다, 내게 양자로 보내면 대학까지 책임지고 보내겠다"고 매달리는 선생님의 목소리를 단칸방 문 앞에서 고스란히 들어야 했다. 집 근처 캐러멜 공장에 취직한 뒤 비 오는 날 처마 끝에 앉아 신세 한탄을 하기도 했다.
6학년 선생님은 검정고시를, 입주 과외교사 자리를 알아봐줬다. 이후 온갖 알바를 다 해가며 대학에서 행정학을 공부했고 공무원이 됐다. 그 과정에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20대 때는 '썸남'과 책방 데이트를 하다 책 뒷부분 이야기가 궁금하단 이유로 썸남을 버려두고 그대로 집에 가버린 적도 있다. 헌책방을 돌다 폐결핵을 앓기도 했다.
엄청난 독서량은 여러 능력을 줬다. 어렸을 적엔 돈 좀 빌려달라는 편지를 쓰는 재주가 탁월했다. 입주 과외교사 시절엔 밥줄을 쥔 목사님에게 잘 보이려고 너무나 숭고하고 문학적인 기도문을 줄줄 써내는 바람에 교회 부흥에 이바지하기도 했다.
가장 결정적인 깨달음도 있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글을 쓰는 작가들이 한결같이 가난한 걸 보니 작가는 안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대신 열심히 일했고, 돈을 모았고, 아이를 키웠고, 그만큼 또 책을 사서 읽었다. 공무원연금도 있고 자식들도 다 큰 지금은 이제부터가 그 좋은 책을 더 읽을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이다.
책을 고르는 김씨의 기준은 간단하다. "네가 안 읽는다고? 그럼 내가 읽어주마"다.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는 책들을 위한 독서, 스스로는 그걸 '을(乙)들의 반란을 위한 독서'라 불렀다. 여기서 을이란 사회적인 갑을 관계를 말하는 게 아니다. 작품으로서의 갑을 관계다. 이름 있는 작가, 작품보다는 알려지지 못한 작품에 집중한다.
"이문열, 김성동과 동시대에 주목받는 작가였으나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 소설가 조성기를, 평론가가 쓴 소설이라는 이유로 외면받은 평론가 하응백의 자전적 소설 '남중'을, 서평을 통해 다시 주목받게 만든 인물이 그다. 내친김에 조성기 작가의 북토크는 자신이 나서서 열어주기도 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흥이 나서 하는 일이다.
최근 발견한 을의 작품으로는 이화경 작가의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모놀로그 발행)를 꼽았다. "8편의 단편소설을 묶은 소설집인데, 작가의 문장에 매료된 게 얼마 만인지 모를 정도로 푹 빠져 읽었다"고 극찬했다. "내가 왜 이 작가를 여태껏 몰랐을까 생각해 보니 이분은 광주에서 활동하셔서 소위 문단 주류랄 수 있는 서울 지역에선 아예 거론되지 않았던 거죠." 그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나 있으나 작품 그 자체가 훌륭한 책이 제일 좋다.
이런 지적은 기성 문단에 대한 비판과도 연결된다. "작가가 괜찮은 작품을 독자에게 선보이는 게 아니라, 그 작가의 좀 더 완성도가 높아진 다음 작품을 독자들이 기다려준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요즘 좀 이름 있다는 작가의 작품을 받아보면 어디 공장에서 찍어낸 듯 문장이 비슷한 경우가 허다하다"고도 했다.
스스로 책 쓸 생각은 안 했을까. 마침 서평 모음집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파람북 발행), 살아온 이야기를 묶은 '미오기傳'(이유출판 발행)을 냈다. 하지만 스스로는 고개를 완강히 저었다. "제가 이제껏 수많은 책을 봤는데, 제 글을 제가 모를까 봐요", "잘 쓴 글이 아니라는 걸 제 스스로 잘 알아요", "원고를 안 주려고 3년 동안 버티다 어쩔 수 없이 낸 책", "출판사가 손해만 안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이대로 그냥 묻히기에는 너무 아까운 작가나 책을 제대로 읽어내는, 저자들이 '나를 제대로 읽어주는 이런 서평 한번 받아보고 싶었다'고 감탄할 수 있는 '독자 중의 독자', '고급 독자', '프로페셔널한 독자'로 남는 것이라 했다.
"아 참, 제가 예전에 어디 가서 재미로 사주를 보니까 제 팔자가 '풀무'래요. 남 불붙여서 활활 타오르게 해주는 데는 아주 일가견이 있다는 거죠.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서평가도 그래서 된 건가 봐요. 남 잘되게 해주는 거는 실속 없는 거 아니냐는 분도 있으시던데, 제 생각엔 그래도 남 끌어내리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일이지 않나 싶네요." 아파트 거실에 비 그친 뒤 부는 맑은 바람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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