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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는 떠났지만…MS-오픈AI ‘막후 실세’로 건재함 과시한 게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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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 혁명 시대다. 시공간의 한계를 초월한 초연결 지능형 사회 구현도 초읽기다. 이곳에서 공생할 인공지능(AI), 로봇(Robot), 메타버스(Metaverse), 자율주행(Auto vehicle/드론·무인차), 반도체(Semiconductor), 보안(Security) 등에 대한 주간 동향을 살펴봤다.
“중대한 변화를 만들 때마다 그의 의견이 필요하다.”
주요 의사결정권은 아직도 그에게 있는 듯했다. 4년 전, 이미 회사를 떠났고 칠순에 가까웠지만 그의 존재감은 여전했단 얘기였다. “현직 고위 경영진 전체가 그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며 전한 전직 임원의 이 귀띔은 글로벌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 창업자의 뒷얘기였기에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미 경제매체인 비즈니스 인사이더(BI)에 소개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시킨 빌 게이츠(69)의 깜짝 근황이다. 컴퓨터와 정보기술(IT) 전자 업계의 거물인 그는 회사를 떠난 지난 2000년 이후, 지금까지도 MS의 ‘막후 실세’로 자리했던 셈이다. BI는 특히 “게이츠는 (지난 2022년 11월 말 출시된 ‘챗GPT’와 더불어 생성형 인공지능(AI) 시대를 개막한) 오픈AI와 MS의 파트너십 체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고 보도했다.
게이츠의 영향력이 재조명받고 있다. 은퇴 이후에도 친정인 MS의 굵직한 현안들에 대해선 방향키를 제시해왔던 데다, 최근 지구촌을 강타한 생성형 AI 혁명 대중화에도 그의 역할이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동갑내기 라이벌이었던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는 앞서 세상을 떠났지만 현재까지도 굳건한 게이츠의 건재함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게이츠는 2선으로 물러난 상황에서도 MS에 대한 그립감을 놓지 않았다. BI는 전·현직 MS 고위 임원들의 전언을 인용한 이날 보도에서 “게이츠는 결코 MS를 떠나지 않았고 사실상 배후조종까지 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BI 또 “게이츠는 회사 전략에 대한 조언에서부터 제품 검토와 고위 임원 영입까지 포함된 회사 운영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실상 MS의 핵심 경영진처럼 회사 주요 업무 결정에 동참하고 있는 형태다. 전직 MS 임원들은 “게이츠는 제품 검토 등을 위해 임원과 일대일로 만나고 있다”며 “사티아 나델라 최고경영자(CEO) 또한 게이츠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의 견해를 듣고 있다”면서 구체적인 사례까지 소개했다. 이에 BI는 “게이츠가 여직원과의 불륜 등으로 이사직을 그만둔 이후 MS가 게이츠와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짚었다.
이런 정황은 게이츠도 어느 정도 인정한 바 있다. 그는 지난해 미 경제전문지인 포브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 시간의 약 10%를 MS 본사가 위치한 워싱턴 레드먼드에서 보내면서 제품 로드맵에 대해 조언한다”고 언급했다.
지난 1975년 동료였던 폴 앨런(2018년 사망)과 함께 MS를 창업한 게이츠는 2000년까지 CEO를 지냈다. 이후 맡았던 이사회 의장 자리는 2014년에 내려왔고 2020년 3월엔 평이사직도 사임했다. 외형상 게이츠가 MS의 주요 경영 현안마다 입장을 내비칠 처지는 아니란 얘기다.
게이츠는 오픈AI와도 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BI는 “게이츠가 2016년부터 오픈AI 측과 정기적으로 만나왔다”며 “오픈AI 경영진은 오픈AI와 MS의 파트너십을 맺은 이후에도 게이츠 저택에서 정기적인 프레젠테이션을 해왔다”고 말했다. MS와 전략적 제휴 관계 이전에서부터 이후까지도 게이츠는 양사의 경영 전략 등에 깊숙하게 개입해 온 셈이다.
게이츠의 입김은 생성형 AI인 ‘챗GPT’의 업그레이드 과정에도 작용했다. 게이츠는 지난 2022년 당시 샘 올트먼 CEO와 오픈AI에 대학 과정인 AP 생물학 시험 통과가 가능한 생성형 AI 모델 제작을 주문했고 그해 8월, 게이츠 자택에서 이 시험을 보고 합격하는 ‘챗GPT-4’ 모델까지 직관했다. 게이츠는 이 자리에서 “내 인생에서 가장 놀라운 광경이다”라며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자리엔 나델라 MS CEO도 동석했다.
BI는 이어 “지난해 11월 벌어졌던 올트먼 CEO에 대한 이사회의 축출 쿠데타 사태 때에도 올트먼에게 오픈AI 복귀 지지를 보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물밑에서도 글로벌 기업인 MS와 대세인 오픈AI까지 움직여온 게이츠는 어떤 인물일까. 그의 인지도와 위상은 별도 수식어조차 필요 없을 정도로 화려하다.
당장 그의 자산 가치는 1,480억 달러(약 201조6,000억 원, 3일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 기준)로, 전 세계 6위에 마크됐다. 전 세계에서 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엑스(X, 옛 트위터)와 연결된 팔로어만 6,458만 명에 달한다.
미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태어난 그의 부와 명예는 1980~90년대 컴퓨터(PC) 시대를 지배하면서부터 축적됐다. 설립 5년 만인 1980년 당시 세계 최대 PC 업체였던 IBM의 개인용 PC 운영체제(OS)에 기본 탑재될 OS로 선정되면서 MS의 사세도 급팽창한 것. 시애틀 북부의 한 사립학교에서 만났던 게이츠(하버드대)와 앨런(워싱턴대)이 PC 사업에 올인하기 위해 대학까지 중퇴, 설립한 MS에 꽃길이 열린 순간이었다. 이후 세계 PC 시장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확보한 MS는 승승장구했다.
그렇게 MS를 안정궤도에 진입시킨 게이츠는 지난 2000년 자신의 대학 친구였던 스티브 발머에게 CEO 자리를 물려주고 그 해, 전 아내였던 멀린다 게이츠와 함께 자선 단체인 ‘빌앤드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했다. 이 곳에서 그는 국제적 보건 의료 확대, 빈곤 퇴치, 사회공헌 등에 집중하면서 고위층의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아이콘으로도 각인됐다. 당시 부부였던 게이츠 커플은 이 재단에 2019년까지 550억 달러(약 62조 원)를 기부하면서 주목됐다.
하지만 이들은 지난 2021년 5월, 트위터에 구체적인 이유는 생략한 채 “27년간의 결혼 생활을 끝내기로 했다”고 갑작스럽게 밝히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로부터 3개월 뒤인 그해 8월 당시 게이츠의 약 175조 원 규모의 재산 분할에 양측이 동의하면서 이들의 공식적인 이혼 절차까지 마무리됐다.
이혼 이후에도, 게이츠는 재단 활동엔 각별한 관심을 쏟고 있다. 게이츠는 올해 1월 16일 열렸던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 참석, 각국이 세계 보건을 위해 국내총생산(GDP)의 0.7%를 원조에 기부할 것을 촉구했다. 이어 “보건 지출은 인도주의적 혜택뿐 아니라 경제·환경적 이득으로 이어진다"며 "향후 10년 동안 예산이 매우 제한적인 상황에서 기후 영향에 관심을 갖고 싶다면 보건 지출을 늘려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편, 게이츠는 지난 2010년 당시 알려졌던 그의 재산(560억 달러) 중 99%를 기부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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