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치·소통은 시작 아닌 변화의 결과물
채 상병·김 여사 건 두고 민심회복 불가
취임 2주년 회견에선 희망 볼 수 있길
덜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만남을 청한 것부터 의외였다. 짐작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가치관으로 보아 이 대표는 만날 수 없는 인물이다. 공정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공정하다는 건 물론 아니다. 그의 공정은 기회와 보상, 규율의 공평성이라는 통상의 의미와 다르다. 검사 출신답게 법적 가벌성 여부를 가리는 아주 좁은 개념이다. 그것도 피아에 따라 잣대가 다른. 이태원참사 때 이상민 장관이나 채 상병 사건의 해병대 지휘부 처리방식에서 본 대로다. 적이자 형사피의자인 이 대표는 그래서 두말할 것 없는 불가촉 인사다.
그럼에도 만날 작정을 했으면 두 가지가 전제돼야 했다. 제 몸을 일부라도 도려낼 각오를 하든지, 아니면 협조를 설득할 자신이 있든지. 이도 저도 아니었다. 전략적 판단도, 현실인식도 보이지 않았다. ‘하도 소통하라고 하니' 식의 어깃장 같았다. 결국 신년대담처럼 영수회담은 그의 무감(無感)만 노출한 자해적 이벤트가 됐다. 결론은 총선에 이은 이재명의 완승이었다.
윤 대통령은 총선민심을 여전히 오독(誤讀)하고 있다. 무엇보다 큰 그의 과오는 국민에게 직접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기본의무를 방기한 것이었다. 측근들의 윤색과 해석에 넘기는 전언(傳言)정치는 시대착오적 오만이다. 숱한 인사폭주, 전횡적 당대표 지명, 독선적 국정운영 등이 걸러지거나 교정되지 않은 근원이다. 총선결과는 국민의 이런 소외감과 모멸감의 반영이다. 이 대표와의 소통이 당장 급한 게 아니었다.
미안하지만 선거 향배를 가른 중도, 합리보수층이 이 대표를 대안으로 보는 얘기는 거의 듣지 못했다. 사법리스크를 피하려는 여러 편법들에다 공천과정 등에서 잔인한 일인체제 구축과정을 지켜본 바로는 그의 불통과 독선도 동급이다. 소통은 설득과 양보의 다른 표현이다. 강성지지층에 기대고 불통 독선에서 난형난제인 둘의 만남은 애당초 소통이 될 수 없었다(어쨌든 이 대표는 지지층에서 배짱 있다는 칭송을 챙겼다).
등 돌린 민심을 되잡는 일은 간단하다. 중도층의 생각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면 된다. 말 나온 김에 민심수렴 목적이라면 민정수석을 부활할 필요도 없다. 그게 만들어진 68년은 정권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던 소수 언론만 있던 시절이다. 저마다 논조가 다르고 온갖 독설까지 난무하는 미디어 백가쟁명의 시대가 된 지 오래다. 듣지 않으려 해서 그렇지, 민심파악 창구가 없는 게 문제일 리는 없다. 법무비서관이나 특별감찰관이면 족하다. 이 역시 본질이 아니다.
채 상병 특검법에서 보듯 이태원참사특별법 합의가 협치의 단초라는 견해도 틀렸다. 협치는 시작점이 아니라 변화의 결과물이다. 재난시스템 구축과 보상이 핵심인 이 사안은 원래 정권에 부담되는 법안이 아니었다. 예나 지금이나 지표는 김건희 여사와 채 상병 건의 처리방향이다. 총선민심도 바로 이 부분에 집약돼 있었다.
역린을 건드리는 사안들이라고 하나 민주정에서 민심을 거스르는 이상의 역린이 어디 있나. 초기에 신속히 처리했거나 늦어도 연초 특검법을 수용했거나, 더 늦었어도 신년대담 때라도 진심 어린 사과에다 개선을 약속했더라면 이렇게까지 커질 일이 아니었다. 거꾸로 이종섭 건으로 부아를 돋우기나 했으니. 아니, 총선 직후에라도 인정했으면 민심도 멈칫했을 것이다.
이제 와 다 쓸데없는 넋두리다. 곧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이다. 여기서도 환부를 도려내는 대오각성의 진정성을 보이지 못하면 이후는 어떤 소통 노력도 의미 없는 형극의 길일 것이다. 이번만큼은 흘려보내지 않길 바란다. 그래도 윤 정부에 끝내 미련을 거두지 못해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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