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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남중국해 통제 노린 중국, 필리핀 해상 갈등 '뉴 노멀'로 만들려 해”

입력
2024.05.02 04:3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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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싱크탱크 CSIS 동남아 국장 인터뷰
"'시진핑 정치 정당성' 구축 노린 갈등"
중국 군사력 증가로 갈등 빈도·강도 커져

그레고리 폴링 미국 싱크탱크 CSIS 동남아 국장이 지난달 22일 한국일보와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레고리 폴링 미국 싱크탱크 CSIS 동남아 국장이 지난달 22일 한국일보와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남중국해 스카버러(중국명 황옌다오) 암초 인근에서 필리핀과 중국 함정이 충돌했다. 필리핀 해경은 중국 선박 10척이 나타나 순찰 임무 중이던 자국 해안경비대 선박 두 척에 물대포 공격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중국과 필리핀의 해상 갈등은 일상이다. 영유권을 둘러싼 신경전은 매달 수차례씩 벌어지고, 물리적 충돌도 월례 행사가 됐다. 지난해 2월 중국 해경이 필리핀 물자보급선을 향해 레이저를 쏘면서 시작된 양국 마찰은 날이 갈수록 빈번해지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그레고리 폴링 동남아시아프로그램 국장은 지난달 22일 한국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중국은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고 남중국해 통제권을 쥐기 위해 (필리핀과의) 해상 갈등을 ‘새로운 일상(뉴노멀)’으로 만들려 한다”며 “분쟁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필리핀 정부, 중국 도발 공개 증가

지난해 중국 해경선은 필리핀 선박을 향해 다섯 차례 물대포를 발사했다. 올해는 4개월 사이 벌써 세 차례나 같은 공격을 가했다. 필리핀 해안경비대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공개한 내용을 집계한 결과다.

베니그노 아키노 3세 정부(2010~2016년), 로드리고 두테르테(2016~2022년) 정부에서 남중국해 관련 분쟁이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것과 대조적이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 취임(2022년 6월) 이후 잇따르는 중국 공격을 두고 폴링 국장은 ‘현 정부의 상황 공개’와 ‘실제 도발 증가’가 맞물린 결과라고 해석했다.

중국 해경선 두 척이 지난달 30일 남중국해 스카버러 암초 인근에서 필리핀 선박을 향해 물대포를 쏘고 있다. 필리핀 해안경비대 제공

중국 해경선 두 척이 지난달 30일 남중국해 스카버러 암초 인근에서 필리핀 선박을 향해 물대포를 쏘고 있다. 필리핀 해안경비대 제공

그는 “마르코스 정부는 해상 충돌이 있을 때마다 SNS에 사진과 동영상을 공개하고 있다”며 "중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판 비용 부과가 침략을 억제하고 중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친중 성향이 강했던 전임 두테르테 정부가 중국과의 관계 등을 고려해 남중국해 해상 도발에 침묵했다면, 현 정부는 의도적으로 중국의 행동을 알리면서 갈등이 부각되고 있다는 의미다.

과거보다 실제 중국 도발 횟수와 규모가 늘어나기도 했다는 게 폴링 국장의 분석이다. 그는 “중국이 10년 전 경비함 한 척으로 필리핀의 재보급 임무를 막아왔다면 현재는 10척 넘는 경비함에 20~30척의 민병대 선박까지 동원하고 있다”며 “중국 군사력이 향상한 결과”라고 덧붙였다.

중국 회색지대 전략에 갈등 ‘장기전’

중국 위협에 필리핀이 맞불을 놓으면서 남중국해는 동남아시아의 화약고가 됐다. 폴링 국장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공세적인 영토 팽창 정책을 펼치고 있는 만큼 해상 갈등은 쉽게 잦아들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3월 11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 14차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식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베이징=AFP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3월 11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 14차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식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베이징=AFP 연합뉴스

그는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원하는 것은 ‘통제’”라며 “원유, 가스 조업과 항해 등 모든 바다 위 활동을 중국 입맛대로 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중국 공산당이 ‘중국 소유인 남중국해가 동남아시아에 의해 침략당했다’는 신화를 만들고 이를 도발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는 게 폴링 국장의 주장이다.

또 “시 주석의 2012년 취임 이후 첫 일성은 ‘중국몽’으로, 여기에는 남중국해에서 잃어버린 바다를 되찾아오라는 촉구도 담겼다”며 “남중국해와 인근 섬들은 중국에 경제적으로 중요한 것만이 아니라 시진핑 정권이 정치적 정당성을 구축하고 군사력을 증강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회색지대(본격적 전쟁 수준에 못 미치는 저강도 도발)’ 전술로 모호성을 보이고, 물대포 공격을 일상적으로 자행하는 것 역시 갈등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나리오라고 해석했다.

조 바이든(가운데)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1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미국·일본·필리핀 3국 정상회의에 앞서 기시다 후미오(오른쪽) 일본 총리,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조 바이든(가운데)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1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미국·일본·필리핀 3국 정상회의에 앞서 기시다 후미오(오른쪽) 일본 총리,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한국 방위비로 때린 트럼프, 필리핀에는?

중국의 ‘때리기’에 필리핀은 동맹 규합으로 반격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마르코스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미국 워싱턴에서 만나 대중 견제에 힘을 합치기로 했다.

폴링 국장은 “필리핀에 가장 이상적인 방향은 국방력 강화, 동맹과의 안보 협력 심화로 억지력을 높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외교 문을 열어 근본적 해결책을 찾는 것”이라면서도 “불행하게도 중국은 대화를 할 의향이 없고 필리핀도 시 주석이 정권을 잡고 있는 한 외교가 결코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동맹과의 동행 변수는 미국 대선이다. 만일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 남중국해 갈등 구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의미다. 그는 “트럼프는 재임 시절 남중국해 문제에 있어 (현 바이든 정부보다)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면서도 “다만 그가 방위비 분담금을 두고 한국, 일본을 압박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의 안보 무임승차를 비판해 온 전력이 있어 또 다른 동맹 필리핀의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미지수”라고 언급했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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