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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에 생각해 본 '가족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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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가족 관계는 독특하다. 어떤 정치인은 대학생 자녀의 시험을 함께 봐주고, 어떤 정치인은 서른 넘은 아들을 수십억 원 퇴직금을 받는 회사에 꽂아 넣는다. 주객전도도 많다. 부부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부모의 지인을 하객으로 맞이하고 부모 체면을 기준으로 예단을 고르기도 한다. 젊은 부모는 유치원생 자녀의 기를 살리기 위해 등하원 때 입을 옷을 별도로 사기도 한다.
숫자가 이해를 돕는다. 통계적으로 부모는 자녀가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약 10년치 연봉을 쏟아 붓는다. 자녀 결혼에는 노후 자금의 절반이 투입된다. 월급의 10분의 1만 가져가더라도 한이 생기는데 저만큼이나 투자하면 성인군자도 감정이 뒤틀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자녀의 대학과 부모의 회사는 서로의 자존심이 된다.
몇 년 전 친구의 결혼식 축사를 준비하면서, 여러 축사를 찾아봤다. 아직까지 기억나는 건 연예인 김구라의 연예인 박슬기를 위한 축사였다. 그는 서로를 남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무리한 요구와 몰이해 등이 벌어진다며 오히려 남처럼 생각해야 서로를 존중하고 예의를 지킬 수 있다고 조언했다.
사회는 청년에게 결혼을 하고 가족을 꾸리라고 말한다. 하지만 좋은 가족 구성원이 되기 위해선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지 말하지 않는다. 부모가 되기 전에 부부가 되고, 부부이기 전에 누군가의 자녀이자 가족이다.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으면 금쪽이 시청자에서 결혼지옥의 주인공이 되어버리는 웃지 못할 비극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주체성을 인정하고 남이라고 생각하자. 나는 당신에게 무엇이 먹고 싶은지 물을 수는 있으나 짜장면을 먹으라고 강요할 수 없다. 자녀는 일방적으로 키워내는 포켓몬이 아니고 부모 역시 우리만을 위한 트레이너가 아니다. 어찌 됐든 너는 너고 나는 나일 수밖에 없다.
의지하되 의존하지 말자.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세상 모든 자녀가 부모에게 재산을 상속받지 않고, 세상 모든 부모가 자녀 덕분에 호강하는 것도 아니다. 힘든 세상 속에서 서로 의지하며 사는 따뜻한 동화는 의존으로 이어지는 순간 비극이 된다. 무작정 바라서도 안 된다. 자녀는 세월과 싸우며 조금씩 휜 부모의 등골을 부수면 안 되고 부모 역시 자녀가 가진 가능성을 본인의 욕심으로 통제해선 안 된다.
마지막으로 서로의 가련함을 인정하자. 부모도 이번 생애가 처음이다. 자녀는 이제야 두 발로 세상에 나섰다. 부모는 노년의 고독과 싸우며, 자녀는 사회생활을 하며 수많은 생채기가 나고 있다. 답답하고 고집불통인 부모와 대체 말귀를 듣지 않는 자녀지만 결국 모두 위로받길 바라는 인간들이다. 같은 존재로서 서로를 가련하게 바라보자.
가족과 관련된 콘텐츠를 보면 많은 주인공들이 서로에게 좋은 부모가 되어달라고 소리치거나 좋은 자녀가 되어달라고 부탁한다. 이번 가정의 달에는 말의 방향을 바꿔보자. 나는 좋은 가족 구성원이자 부모와 자녀 그리고 부부가 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반문해보자. 팔레트 위에서 빨간색과 파란색을 섞으면 보라색이 된다. 하지만 우리네 삶은 그렇게 되기 어렵다. 오히려 서로 섞이지 않더라도 조화롭게 있는 태극이 좋을 수 있다.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서로로서 존재하며 조화롭게 살고자 하는 마음, 지금 가장 필요한 가족의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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