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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정부 '국가 비상금'...1순위는 용산 이전과 해외 순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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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일종의 '국가 비상금'인 일반예비비를 대통령실 이전과 해외 순방 등 정상외교에 가장 많이 쓴 것으로 확인됐다. 물가 관리는 그다음이었다.
예비비는 예측 불가능하거나, 다음 연도 예산 편성을 기다릴 수 없을 만큼 시급하거나, 이미 확보된 예산을 먼저 활용한 후 부족분에 대해 사용해야 하는 3대 원칙을 지켜야 한다. 이 때문에 예비비는 코로나19 긴급고용안정지원금, 의료급여 경상보조 부족분 지원 등 불요불급한 곳에 일단 사용한 후 이듬해 국회의 '사후 승인'을 받아왔다. 하지만 윤 정부는 예비비를 용산 이전과 해외 순방 등 대통령이 추진하는 정책의 '재정 보완재'처럼 사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한국일보가 단독 입수한 윤 정부의 예비비 편성 내역과 사용조서 등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2022년 5월 10일 취임 전후 1년 차에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하는 데 예비비를 가장 자주, 가장 많이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용산 이전 경비 명목으로만 총 세 차례의 예비비가 편성됐다. 4월 6일에는 행정안전부, 대통령 경호처, 국방부에서 총 360억4,500만 원의 예비비를 요청했고, 4월 26일엔 행안부, 대통령 경호처 요청으로 135억6,300만 원이 국무회의에서 승인됐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7월 12일에는 대통령실을 경호하는 경찰 경호부대 이전을 위한 예비비 56억8,472만 원이 편성됐다. 대통령실 이전 여파로 청와대 개방을 위한 운영경비 96억7,000만 원도 추가 편성된 점을 고려하면, 약 650억 원의 예비비를 쓴 것이다. 윤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496억 원이면 청와대와 국방부를 충분히 이전할 수 있다고 했지만, '예비비'로만 650억 원이 소요됐고, 각 부처의 예산을 끌어다 쓰는 ‘전용’까지 포함하면 비용은 더 불어난다.
이외에는 기획재정부 등 정부세종청사 중앙동 이전에 745억 원(9월 27일)의 예비비를 편성한 것을 제외하곤 이전 정부의 사용내역과 비슷했다. 구체적으로 사실상 국가정보원의 예산인 국가안전보장활동비로 6,300억 원, 치솟은 물가를 잡기 위한 '농축수산물 할인 지원'에 500억 원(8월 16일), 국제유가 상승을 고려해 해양경찰 경비함정의 유류비 지원에 303억4,300만 원(11월 14일), 겨울철 난방용 면세유 가격 상승으로 고통받는 시설농가에 유가연동보조금 151억1,800만 원(12월 27일), 9월 태풍 힌남노 피해 복구 지원에 활용된 재해복구 국고채무부담행위 조기 상환을 위해 5,696억 원 등을 썼다.
집권 2년 차인 2023년은 본예산을 정부 스스로 짠 첫 해다. ‘건전 재정’을 강조하며 지출을 늘리지 않은 윤 정부는 2022년 대비 소폭(5.1%) 늘어난 639조 원의 예산을 편성했고, 그중 4조6,000억 원을 예비비로 책정했다. 전년엔 재난 재해가 덜 발생하면서 정부는 그중 3조3,000억 원을 쓰지 않고 남기며 역대 최저 예비비 지출액(세출 결산액 대비 0.3%)을 강조했다.
실상은 달랐다. 내역을 뜯어보면 사실상 대통령을 위한 사업 곳곳에 예비비가 사용됐다. 정상외교와 순방비용이 대표적 예다. 정부는 2023년에 외교활동 지원을 위한 예비비만 6차례 편성했다. 정상 및 총리 외교활동 경비 지원으로 328억5,900만 원이 편성됐는데, 운영비와 경호비 등 여러 제반비용도 뒤따랐다. △해외 순방 프레스센터 설치 운영 경비 지원 76억2,700만 원 △한–태평양 도서국 정상회의 경호에 50억500만 원이 소요됐다.
정상회의 행사에도 더 썼다.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준비기획단에 48억9,600만 원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 준비기획단 운영비에 28억2,000만 원 등 총 532억700만 원을 썼다. 규모로만 보면, 애초에 편성된 정상외교 예산(249억 원)을 모두 쓰고 그 보다 두 배 많은 비용이 예비비로 사용된 것이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정상외교를 추진하기 위해선 예비비 편성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우리나라가 주최하는 국제회의는 '정상 및 총리 외교 예산'과 별개"라고 설명했다.
물가 관리에 사용한 내역도 눈에 띈다. 집권 1년 차에 이어 고물가가 이어지자 과일 등 농산물 할인 지원에 225억 원을 썼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오염수 방류에 대응하기 위한 방사능 조사에 151억9,900만 원을 사용했다. 오염수 영향으로 수산업계가 타격을 입자, 수산물 소비 활성화에 800억 원을 썼고, 할인행사를 연장하면서 143억 원을 더 투입했다. 당초 정부는 후쿠시마 오염수 대응 예산으로 5,281억 원을 준비했는데, 약 1,095억 원이 예비비로 더 쓰인 셈이다.
주먹구구로 이뤄져 도마에 올랐던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에도 총 168억 원의 예비비가 쓰였다. 폭염 대비 물품, 의료 물자 지원 69억53만 원, 콘서트 16억6,000만 원, 학생들의 지자체 체류비용 82억7,652만 원 등이다.
윤 정부의 예비비 편성 내역을 두고 여러 뒷말이 나온다. 1년 차 때는 이전 정부가 짠 예산이기 때문에 새 정부가 추진하는 중점 정책에 대해 예비비를 편성하는 일이 있지만, 국민 전체를 위한 정책이 아닌 '대통령실 이전'이나 '정상 외교' 등 대통령실 중심의 정책에 예비비를 편성하는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박근혜 정부 1년 차인 2013 회계연도의 경우 취득세 감면에 따른 지자체 재원 보전에 가장 많은 예비비가 쓰였고, 문재인 정부 1년 차 인 2017 회계연도엔 국가안전보장활동경비 등에 가장 많은 돈이 사용됐다.
이에 대해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전문위원은 "예비비는 본예산을 짤 때 예견하지 못했던 일이 발생했을 경우를 한정해 국회 심의를 나중에 받게 되는 것인 만큼 이를 이용해 자신의 정책 사업을 펼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통령 결정이 예측 불가능했다는 점에서 예비비 편성 요건에 맞는다고 하더라도, 정말 필요한 사용이었는지 내역을 꼼꼼히 점검할 길이 요원하다는 점도 문제다. 현재 예비비는 각 부처가 명세서를 작성해 기재부에 요청하면, 심의 후 국무회의에 올리는 구조다. 정부 관계자는 "예비비는 신청한 용도에만 사용할 수 있어 부처에서 타이트하게(바듯하게) 요청하는 편이고, 기재부에선 명세서 내역을 확인 후 국무회의에 올린다"며 "국무회의에서는 거의 그대로 통과된다"고 말했다. 꼼꼼한 검증이 어렵다는 얘기다.
실제로 윤 정부는 예비비를 너무 급하게 편성하다 보니 편성한 예비비를 다 사용하지 못하거나, 예비비 승인이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사용한 경우도 있었다. 국회 전문위원은 "1년 차 때 대통령 순방으로 63억800만 원이 편성됐는데, 9억700만 원이 불용됐다"며 "이는 해외 순방을 1회 이상 수행하기에 충분한 금액인데 쓰지 못했고, 예비비가 배정되기 전에 집행한 것은 예산집행지침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예산은 국회 심사 등 통제를 받는 게 기본인데, 대통령실이 통제받지 않는 창구로 예비비를 활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결산에 대해 감사원과 국회의 꼼꼼한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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