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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죽거나 혹은 휴직하거나"... 공무원 악성민원 피할 길은 그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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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수많은 동료를 잃고 슬퍼하던 우리들, 이제야 한자리에 모여 애도합니다.”
햇살이 따갑게 내리꽂히던 29일 오후 2시, 새까만 옷을 입은 수천 명이 서울지하철 시청역 일대 도로 한복판을 가득 채웠다. 흰색 장갑을 낀 채 연신 땀을 닦아내는 이들의 품에는 먼저 떠난 동료들의 영정사진이 들려 있었다.
대한민국공무원노조총연맹과 전국공무원노조가 주최한 집회에 참가한 공무원들이었다. 지방자치단체, 국회, 법원, 소방서 등 전국 곳곳에서 모인 공무원 1,300명(주최 측 추산)이 ‘악성 민원’에 시달리며 쌓인 울분을 토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지난달 5일 악성 민원인에 의해 신상이 공개돼, 이른바 ‘좌표 찍기’의 표적이 된 김포시 9급 공무원 A(39)씨의 죽음이 도화선이 됐다. 도로 보수 공사 담당 주무관이었던 A씨는 항의성 민원에 괴로워하다 실명, 부서, 유선 번호 등이 온라인에 까발려지면서 더 끔찍한 고초를 겪어야 했다. A씨 뿐이 아니다. 최근 한 달 새 경남 양산시청, 충북 괴산군청, 경기 남양주시청, 양주시청에서 공직에 발을 들인 지 3개월에서 3년밖에 안 된 청년 공무원 4명이 비슷한 이유로 숨졌다고 한다.
이날 집회에 참가한 공무원들에게 이들의 죽음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연단에 선 유해길 공무원노조 거제시지부장은 “저도 김포시 동료처럼 도로과에서 일하고 있다. 지난해 집 앞 배수로가 넘쳤는데 올해도 넘치면 죽이러 찾아오겠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는 “우리에겐 죽거나, 휴직하거나, 면직하거나, 이 방법밖에 없느냐”고 소리쳤다.
경북 의성군청에서 일하는 50대 김민성씨는 “개발 인허가와 관련해 민원인이 매일 같은 시간에 찾아와 난동을 부려 그 시간만 되면 가슴이 벌렁대 정신과 치료를 받은 직원도 있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윗선은 나서 주지 않고, 경찰에 신고해도 폭행이 아니라 공무집행 방해로 보긴 어렵다고 하더라”고 토로했다. 25년 차 소방관 고진영(54)씨도 “한밤중 화재 진압이 방해된다며 소방차, 소방관의 사진을 찍은 주민으로부터 ‘가만 안 두겠다’는 위협을 당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8월 공무원 노조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전체 응답자(7,061명)의 무려 84%(5,933명)가 ‘최근 5년 사이 악성 민원을 받아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서로 고통을 나눈 공무원들은 “악성 민원은 범죄”라고 외치며 용산 대통령실 앞까지 3㎞를 행진했다. 노조는 △반복·중복 민원 처리 간소화 △전화 친절도 조사와 친절평가제도 폐지 △공무원 개인신상 보호 및 악성 민원 피해공무원 심리치료 등을 정부에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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