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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말리의 출애굽기

입력
2024.04.29 04:30
27면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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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면 신발 끈을 묶는 아침. 바쁨과 경쟁으로 다급해지는 마음을 성인들과 선현들의 따뜻하고 심오한 깨달음으로 달래본다.

밥 말리(Bob Marley)

밥 말리(Bob Marley)

No Woman No Cry. 레게음악의 전설 밥 말리(Bob Marley)가 부른 유명한 노래다. 제목을 '여자가 없으면 울 일도 없다'로 잘못 해석하시면 안 된다. 고향인 자메이카에서 겪었던 불안과 시련을 떠올리면서 '여자여 이제 울지 말아요'라고 노래한 것이다.

그가 부른 또 다른 명곡 가운데 '엑소더스'가 있다. 탈출(exodus)이라는 뜻이며, 동시에 성경의 두 번째 책인 '출애굽기' 혹은 '탈출기'를 의미한다. 밥 말리는 성경의 모티프를 자주 가사에 응용했다. 위 노래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우린 바벨론을 떠나 아버지의 땅으로 갈 겁니다. 우리에게 또 다른 모세 형제를 보내주오. 저 홍해 건너로부터. 포로들에게 자유를." 모세가 이집트에 있는 히브리 노예를 홍해를 건너 탈출시킨 출애굽기의 내용을 말하는 가사다.

밥 말리는 성경을 읽지만, 정통 기독교의 시각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라스타파리(Rastafari) 교도다. 자메이카에서 시작하여 주로 흑인들에게 퍼져있는 종교파이며, 성경을 흑인 우월주의식으로 해석하고 에티오피아의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를 재림 예수로 숭상한다. 그리고 마리화나 흡연을 정당하게 여긴다.

세상에서 겪는 차별과 멸시는 라스타파리 교도 흑인들에게 성경이 말하는 엑소더스를 고대하게 했다. 밥 말리는 흑인의 처지를 그의 노래 Buffalo Soldier에서 이렇게 말한다. "레게 머리를 했던 버펄로 병사. 미국의 심장에 있는 버펄로 병사. 아프리카에서 훔쳐 와 미국으로 끌려온. 오자마자 싸웠고, 살기 위해 싸웠네." 흑인의 머리카락이 버펄로 같다고 해서, 자기네와 싸우던 그들을 미국 원주민들이 버펄로 병사라고 불렀다. 잡혀 온 흑인은 싸울 이유도 없었지만, 자기들을 잡아 온 백인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다.

자유를 박탈당하고 억압받던 곳에서 탈출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에게는 '구원'이었다. 밥 말리는 '구원의 노래'(Redemption Song)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내가 가진 거라곤 구원의 노래뿐. 정신적인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길… 언제까지 그들이 예언자들을 죽이려는지. 우리가 옆에 비켜서서 지켜보고 있는 동안 말이야."

출애굽기가 전해주는 탈출과 해방의 사건은 기독교의 핵심 교리인 '구원'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이야기다. 성서 안에서 구원을 말할 때 자주 언급되는 사건이며(이사야 43:14-19), 고전부터 현대의 팝 문화에 이르기까지 출애굽기의 해방 모티프는 다채롭게 수용됐다. 기독교가 입이 닳도록 말하는 핵심 교리인 구원은 바로 탈출을 의미한다. 진정한 자유를 찾기 위한 탈출이다.


기민석 목사·한국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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