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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맘'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맥락

입력
2024.04.24 19:00
25면

편집자주

세상 언어들의 이모저모를 맛보는 어도락가(語道樂家)가 말의 골목골목을 다니며 틈새를 이곳저곳 들춘다. 재미있을 법한 말맛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며 숨겨진 의미도 음미한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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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언어는 건축물에 비교되기도 한다. 구조나 체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초에 설계도가 마련된 것이 아니라서 틈새나 구멍이 생기게 마련이다. 물론 언어는 눈에 보이는 건물과는 성질이 다르다. 그런 틈새는 그냥 놔둬도 상관없기도 하고 세월이 지나면서 서서히 혹은 딴 언어를 차용하면서 메워지기도 한다.

상당수 유럽 언어는 '깊다'의 반대말을 '낮다, 판판하다, 안 깊다' 따위로 나타내 '얕다'가 따로 없다. 유럽에서는 deep에 반대되는 shallow가 따로 있는 영어가 다소 예외적인 셈이다. 한편 영어는 '키가 크다'인 tall도 있는데, 딴 언어들은 대개 '크다, 높다, 길다' 중 하나로 나타낸다. 그런데 영어 tall도 반대말은 long에 대비되는 short로 뭉뚱그린다. 한국어는 친족 명칭이 많지만 영어는 별로 없다. 이렇듯 특정한 어휘의 틈새나 구멍은 단점이 아니고 언어 다양성의 단면일 뿐이다.

한 언어 안에서 반대말의 짝도 뜻이 늘 서로 대칭적이지는 않다. '홀아비/홀아버지'는 '아내를 잃고 혼자 지내는 사내'인 반면 '홀어미/홀어머니'는 '남편을 잃고 혼자 자식을 키우며 사는 여자'다. 사전적 정의만 이렇다기보다 실제로도 흔히 이렇게들 쓴다. 다만 자식을 키워도 '홀아비'로 부를 수는 있겠는데, 자식을 안 키우면 '홀어미'가 아무래도 덜 어울리는 느낌도 든다. 이 어휘가 한국어만 유별난지는 모르겠으나 딴 언어에서 비대칭적인 반대말이 없는 듯하다.

그래서 미혼/비혼, 이혼, 사별 모두 포괄하는 영어 single mother의 번역어로 '홀어머니'를 쓰면 그 뜻이 살짝 어긋나기도 하겠지만, 아마도 더 큰 문제는 그 말의 의미를 확장해 쓰기에는 어감이 더욱 예스럽고 애잔하다는 데 있을 것이다. '홀어머니'는 왠지 나이가 지긋해야 어울리는 느낌도 든다. 편모(偏母)와 편부(偏父)는 사별과 이혼을 포함하고 '홀로 있는 어머니/아버지'라서 의미도 대칭적이지만, '편모/편부 가정/슬하'처럼 대개 정체성보다는 자식과의 관계를 일컫는 말이고 역시 어감이 썩 좋지는 않아 이제 '한부모가정' 같은 대체어에 밀려 사회적으로도 많이 안 쓴다.

독신모 같은 말도 있으나 21세기 한국어는 '독신'보다 '싱글'을 더 선호해, 이제 주로 싱글맘(single mom)으로 불린다. '싱글맘'은 게다가 '미혼모'와 '홀어머니'의 의미도 포괄할 뿐만 아니라 두 말의 다소 부정적인 어감도 상쇄하니 더욱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외래어가 덜 감정적이라는 장점 때문에도 선호된다. 일본어 역시 싱글마더(シングルマザー), 싱글마마(シングルママ) 같은 영어 외래어를 많이 쓴다. 2008년에 제시된 '홀보듬엄마'라는 순화어는 아무도 안 쓴다. 음절이 길고 설명이 많은 말이라서 아나운서나 돼야 겨우 제대로 발음할 법하다. 그래서 뭔가 너무 애쓰는 듯한 '보듬'보다는 무미건조한 '싱글'이 차라리 나아 보인다.

대개의 언어는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를 자국어로 일컫는 데 비해 한국어와 일본어는 영어 외래어를 쓴다.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한국과 일본은 비혼 출산율도 가장 낮듯이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비정상적으로 추구하다 보니 역으로 정상가족을 이루기가 힘들어져 버린 특이한 나라들이다. 그래서 '싱글맘'을 보는 시선도 아직은 차가울 수밖에 없어 영어 외래어로 불러서 중화하는 것이다. 한국인에게는 때로 너무 뜨겁거나 너무 차가운 한국어보다 미지근하고 맹숭맹숭한 영어가 어휘의 틈새를 땜질할 때 나을 수도 있다.

신견식 번역가·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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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견식번역가·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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