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탓하던 80억 전세사기 '빌라왕 배후', 징역 8년 확정

입력
2024.04.24 11:15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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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본 갭투기' 수법 보증금 가로채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주택 밀집지역. 뉴시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주택 밀집지역. 뉴시스

수도권 일대 대규모 전세사기의 배후로 지목된 부동산 컨설팅업체 대표에게 징역형이 확정됐다.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신모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한 원심을 지난달 28일 확정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사기죄에서 고지의무나 공소장변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신씨는 부동산 컨설팅업체 대표로 2019년 7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속칭 여러 '빌라왕'을 내세워 빌라 수백 채를 사들인 뒤 보증금을 가로챈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임대차 계약과 매매 계약을 동시에 진행해 자기자본 없이 매매대금을 충당하는 '무자본 갭투기' 수법을 썼다. 임차인 보증금으로 빌라를 산 셈이다. 임차인 37명의 피해 금액만 80억300만 원에 달했다.

신씨는 재판 과정에서 정부의 잘못된 부동산 정책이 사태의 원인이라고 강변했다. 본인은 주범이 아니고, 일부 계약의 경우 매매가격과 전세보증금이 같다는 점을 임차인들에게 안내한 만큼 사기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서류상 집주인이 이른바 '바지사장'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임차인에 대한 고지의무 대상도 아니라고 강조했다.

1심은 신씨의 주장을 모두 물리쳤다. 피해자들이 전후 사정을 알았다면 계약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취지다. 재판부는 "시가만으로 보증금 반환을 담보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임대인의 자력은 계약 체결에 있어 중요한 고려사항"이라며 "피고인은 '보증금 당연히 돌려받는 것'이라는 신뢰를 이용해 피해자들에게 막대한 손해를 입혔다"고 질타했다.

신씨는 "나는 임차인들과 계약한 당사자가 아니다"라며 항소했으나, 2심도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들이 잔금을 전부 지급하기 전에 바지사장 명의로 분양계약을 체결했다"면서 "공범들의 역할을 인식한 상태에서 실행에 옮긴 이상 고지의무 불이행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공모관계를 인정하는 데 무리가 없다"고 설명했다.





최다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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