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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우 전쟁, 영토 분쟁 넘어 유럽과 세계 안보 질서와 연결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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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황의 앵글>은 외교 안보 현안에 대한 주요 인물 인터뷰와 소재를 다룹니다. 안보 현안만큼 다양한 논점이 제기되는 분야도 없습니다. 여러 각도에서 보고자 합니다.
2022년 2월 발발 이후 2년을 넘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끝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보다 세밀해진 작전과 군비가 강화한 러시아와 달리 서방의 지원 지연으로 우크라이나는 수세에 몰리는 양상이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부상하고 있는 올 11월 미국의 대통령 선거 결과는 전쟁 양상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편으로 러시아는 서방 측에 속한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분류하고 대북제재 무력화 등 다각적 압박을 가하며 충돌을 빚는 모양새다. 러시아와 군사, 경제적 연관을 갖고 있는 우리의 외교 전략도 정교한 접근이 필요해졌다. 주러시아와 주우크라이나 한국대사를 지낸 박노벽 전 대사를 만나 전쟁 전망 등 전반적 현안에 대한 견해를 들어봤다. 박 전 대사는 “러·우 전쟁은 단순히 영토분쟁을 넘어 유럽과 세계의 안보 질서와 연결된 문제”라면서 “현재로선 해결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전황은 어떻습니까.
“러시아는 사상자 30여 만 명의 병력과 많은 장비 손실에도 우크라이나 영토 18% 이상 통제하에 두게 됐습니다. 미국 측 평가에 따르면 러시아는 전쟁 전보다 15% 강화된 전력으로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에 우크라이나는 탄약 등 군비 부족으로 수세적 국면이지만 608억 달러 지원 법안이 미 의회를 통과해 방어전이 가능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종전 협상을 언급하고 있는데 협상 가능성은 어떻습니까.
“러시아는 종전 조건 수위가 높아진 반면 우크라이나는 크름반도를 포함한 모든 영토의 반환과 러시아 군대 철수가 평화 조건이라 상호 타협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러시아는 워싱턴이 종전 협상 대상이라 생각하지만, 우크라이나 입장이 우선이라는 게 미국의 방침이죠. 스위스 정부가 6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평화 제안을 기초로 수십 개국이 참여하는 평화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초청되지 않았습니다. 전쟁 당사국 간 협상은 요원해 보입니다.”
-전쟁이 장기화하는데 러시아의 전략적 목표는 달라진 게 있습니까.
“우크라이나의 중립화와 정권교체, 동남부 지역 영토화, 나토가 확장되기 전인 1997년 이전의 유럽 안보 질서 회복이라는 개전 목적에서 변한 게 없습니다. 탈냉전 초기 단계로 가겠다는 게 러시아 전략이지만 상황은 180도 다르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서방의 지원 하에 우크라이나 정부와 국민은 항전하며 유럽과 통합되길 원합니다. 나토 회원국은 올 2월 스웨덴, 핀란드 가입으로 32개국으로 확대됐고, 러시아와의 국경선이 1,300km로 늘어났습니다. 러시아로선 아픈 상황이 된 거죠.”
-러시아 위협에 대응한 나토의 역할이 커졌는데 내부적으로는 어떤가요.
“나토 회원국 중 올해 GDP 2% 이상 국방비 책정을 달성한 국가는 20개국 정도 입니다. 독일, 프랑스도 군비 부족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토가 직면한 도전은 외부의 위협에 대응해 충분한 국방력을 투입할 태세가 돼 있느냐, 내부의 정치적 단합과 실행력이 있느냐는 게 문제로 남습니다. 경제력은 물론 국방비 총액도 지난해 러시아의 10배 수준이지만, 러시아 인접국과 그렇지 않은 나라의 이해나 안보의식이 다릅니다. 복지 등에 써온 예산을 국방비로 전환하는 데 따른 정치적 부담이 있는 것이죠. 만약 러시아가 승기를 잡게 된다면 향후 5~10년 내 발트 3국이나 핀란드에 대해 도발적인 테스트를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미래가 유럽의 미래'라는 말로 서방의 지원을 호소합니다.”
-러시아의 핵 사용 위협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엄포용인가요.
“푸틴 대통령은 지난 3월 러시아 국내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핵 사용에 관한 질문을 받고서 핵무기는 사용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라는 식으로 답했죠. 러시아 존립에 대한 위협, 러시아의 주권과 독립을 해치는 경우, 전선에서 러시아 군대가 어려울 경우를 포함해 핵 사용 태세가 돼 있다고 했습니다. 이를 두고 서방에선 푸틴이 선제 사용의 조건 확대 우려가 나왔습니다. 러시아 일부 전문가들은 전술 핵 사용 조건, 즉 문턱을 낮추자는 견해도 내놓고 있습니다. 푸틴의 발언은 미국이나 나토동맹국들의 첨단 무기 지원 등에선 일정한 선을 긋고 자제하는 모습을 보면 엄포용으로도 먹히는 양상입니다.”
-전황에 따라 나토의 참전 가능성은 있습니까.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2월 우크라이나 지원 정상회의 전후에 나토동맹국의 군대 파병을 포함한 서방의 모든 군사적 방안을 사용할 수 있다고 언급했지만 미국, 독일을 포함한 다수의 동맹국 지도자들은 파병 의사가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의 파병 발언 의도는 러시아가 선을 넘지 말라는 취지로 보이는데 동맹국 분열을 노출하는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은 어느 선까지 가능할까요.
“금년까지 제공했거나 약속한 우크라이나 지원 규모로 보면 유럽은 1,530억 달러 수준입니다. 미국은 지난 2년간 750억 달러를 지원했고, 이번에 608억 달러 지원안이 의회를 통과해 1,358억 달러나 됩니다. 유럽보다 적지만 정치적 영향력 면에서 미국의 지원은 결정적 요소로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유럽이 영향을 받습니다. 내부적으로 조율하기가 쉽지 않고 시간도 많이 걸립니다.”
-트럼프 미 공화당 후보는 재임 시절 ‘푸틴의 꼭두각시’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는데 트럼프 당선 시 어떤 영향을 미치겠습니까.
“트럼프 후보가 돈바스와 크름반도 등 영토 일부를 포기하도록 우크라이나 정부를 압박해 전쟁을 끝내는 출구전략을 내부적으로 언급했다는 미 언론 보도가 있었습니다. 전쟁의 조기종식을 통해 중국과 러시아의 연대를 막고 중국의 위협 대처에 주력하는 게 미국의 이익에도 맞다는 것이죠. 그러나 트럼프나 그의 안보팀은 단순히 영토분쟁으로 보는 듯한데 전쟁 성격상 유럽과 세계 질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는 문제가 됩니다. 그런 방안을 실행할 경우 우크라이나는 물론이고 유럽 동맹국들이 크게 저항할 겁니다. 더욱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전 보장을 제공하지 않는 상황에선 러시아의 적대행위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전쟁 장기화에 따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내부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강한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 경제는 문제가 없습니까.
“지난 3월 대선을 통해 푸틴은 5기 집권에 성공했죠. 러시아 국민 다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서방과의 대결이며, 러시아를 고립시키려는 서방의 위협에 대한 정당한 대응이라는 정부 논리를 따랐다고 볼 수 있습니다. 푸틴 직무수행에 대해서도 80% 상당의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는 심정적으로 푸틴이 강대국의 위상을 회복했다고 보기 때문이고, 참전 군인과 그 가족에 대한 파격적인 보상으로 전쟁 장기화의 불만을 무마하는 상황입니다. 러시아는 서방의 경제제재를 우회하고 있지만 인플레와 방산 집중 등으로 정상적인 국내경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30만 사상자와 군 동원으로 인해 노동력 부족이란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셈이죠. 우크라이나의 경우 지난해 대반격 실패 이후에도 영토 양보에 대한 반대 의견은 압도적입니다. 전선에서 병력과 무기 부족에 대비해 징집 연령을 27세에서 25세로 낮추는 법을 채택했습니다.”
-중러관계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소극적 자세였는데요.
“중국은 전쟁 초기 거리를 두기도 했습니다. 미국, 유럽과의 경제, 무역관계가 규모 면에서 러시아보다 크고 중요하기 때문에 직접 무기 지원 등을 자제해 왔습니다. 하지만 ‘자유 진영 대 권위주의 진영 간 대립’이라는 프레임이 강조되고 올 들어 러시아가 전장 주도권을 가지면서 러시아에 대한 지원 범위와 분야를 확대하는 양상입니다. 중국은 지난 2년간 유럽의 에너지 수입처를 대체해 러시아산 가스와 원유를 대량 구입해 주고, 서방이 철수한 상황에 소비재 수출로 러시아 경제를 상당 부분 지탱해주고 있습니다. 최근엔 전쟁에 소요되는 반도체 칩, 탱크용 공작기계, 미사일용 추진제, 위성정보까지 제공하고 있다고 합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이달 초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에게 ”이중 봉쇄에 대한 이중 대응방안“을 제안하기까지 했습니다. 러중 간 거래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제재를 피하고 공급망을 유지하기 위한 협력 제안으로 추정됩니다. 이런 상황이라 미국은 최근 중국의 러시아 지원에 강하게 견제하는 상황입니다. 유럽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경우 금융제재를 부과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미중 갈등이 야기되고 있는 셈이죠.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사이엔 개인적 유대가 있고, 내달엔 중러정상회담이 예정돼 어떤 합의가 있을지 지켜봐야겠죠. 중국은 전쟁의 승패가 자국에 유리한지 여부를 계산했겠죠."
–우크라이나는 우리 정부에 포탄 등 군사 무기 직접 지원을 원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대북제재 무력화 등 우리 안보 위협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요.
“러시아를 좀 아프게 해야 한다는 것인데 한반도 안보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신중히 다뤄 나가야겠습니다. 유럽의 안보 질서에 관한 도전인 동시에 나토의 신뢰도와 직결된 사안입니다. 미국과 유럽이 우선적으로 탄약 등 무기 지원을 적극적으로 해 나갈 일입니다. 이미 유럽연합은 포탄 확보 계획을 수립해 20억 유로 규모를 구입하고 2025년 말까지 연간 200만 발 생산을 위한 투자와 회사를 지정했습니다. 우리로선 재건 지원과 인도적 지원에 우선 순위를 두고 국제적 노력에 동참하는 게 당장은 중요해 보입니다.”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이 어디까지 갈까요.
“북러 관계 확대는 전쟁 수행의 필요성만이 아니라 반미 공동 노선과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에 대응한다는 명분입니다. 현재로선 러시아가 무기거래를 하면서 북한에는 식량과 원유 지원, 노동자 송출을 수용하는 단계로 보입니다. 북러 관계가 더 깊어진다면 한반도와 동북아 안보상황이 더 복잡해지겠죠. 우리로선 미국 등 관련국과 함께 효과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
-한러 관계는 험악해지고 있습니다. 극한 대립은 피하는 모양으로 보입니다만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는 상황에선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사보호 수준은 넘어서야 하고 양국 상황이 악화하지 않도록 우리의 외교 역량을 발휘해야겠죠. 여러 도전 양상에 비추어 고차 방정식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려운 일입니다."
박노벽 전 대사는 오렌지 혁명이 있었던 2008년 주우크라이나 대사, 러시아가 크름반도를 점령한 이듬해인 2015년엔 주러시아 대사를 지냈다. 양국 대사를 모두 지낸 희귀한 이력을 갖고 있다. 외교부 유럽국장을 지낸 유럽통으로 한미원자력 협정 개정 전담대사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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