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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몸으로 전신주 오른 여성들… '용주골'은 못 없애나 안 없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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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밤 10시 30분 경기 파주시 연풍1리의 성매매 집결지 앞. 속칭 ‘용주골’이라 불리는 이곳에 보라색과 노란색 조끼를 입고 마스크를 쓴 90여 명이 "성매매 집결지 폐쇄" "성구매 부끄럽지 않습니까"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파주시청 공무원과 시민단체, 자율방범연합대 등으로 이뤄진 이들은 지난해 6월부터 한 달에 2회 이상 금요일 밤 10시부터 다음 날 새벽 1시까지 용주골 입구에서 ‘올빼미 활동’이라는 성매매 근절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맞은편에선 용주골 업주와 여성 50여 명이 올빼미 활동에 반대하는 맞불 집회를 열었다. 업주와 여성들이 대규모로 반대 집회를 연 건 처음이었다. 이들은 “우리도 이곳 주민이다” “먹고사는 게 너무 힘든데 그만 가라”고 외쳤다. 새벽 1시까지 약 3시간 동안 대치가 이어졌다.
입구 쪽 실랑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업소 20여 곳에는 불이 켜져 있었고 승용차와 택시 등이 쉴 새 없이 드나들었다. 파주시 관계자는 “업주 차량이 특정 장소에서 성매수 남성을 이곳으로 태워오고 데려다주는 콜 영업을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실제 밤 11시부터 특정 번호를 단 승용차 4, 5대가 20~30분 간격으로 번갈아 드나들었다. 올빼미 활동가들이 철수한 새벽 1시 이후부터는 영업이 본격 활기를 띠었다. 성매매 여성들이 나와 호객행위를 벌였고 새벽 1시 30분부터 30여 분 동안 차량 20여 대가 줄지어 골 안쪽으로 들어갔다.
용주골이란 말은 ‘용지동(龍池洞)’이란 옛 지명에서 파생됐다. 마을에 큰 연못이 있었는데 폭우가 쏟아지던 날 연못 물이 솟구치면서 용이 승천했다고 붙은 이름이다. ‘용지골’이 ‘용짓골’을 거쳐 용주골로 바뀌었다고 한다.
서울 청량리와 천호동, 경기 수원역 등 연이어 문을 닫고 있는 다른 지역 집결지와 달리 용주골이 여전히 성업 중인 이유는 지리적 폐쇄성이다. 철거된 집결지들은 유동인구가 많고 주택가와 밀접해 민원이 끊이지 않았지만 용주골은 연풍1리 마을 끝자락에 위치해 인적이 뜸하다. 용주골과 마을 사이에 갈곡천이 흐르고 마을 바깥쪽으로 왕복 4차로의 우회도로(연풍로)가 개통돼 마치 섬과 같은 공간이 됐다. 흔한 대형 프랜차이즈 편의점도 없다.
반면 외곽 도로 발달로 외지에서의 접근성은 더 좋아졌다. 일산 신도시에서는 30분밖에 안 걸리고, 2020년 서울~문산 고속도로 개통으로 서울 신촌이나 강남에서도 차로 1시간이면 닿는다. 들어가는 입구도 5곳이나 된다. 다른 집결지의 여성들이 용주골로 몰리는 ‘풍선 효과’까지 발생하면서 한때 120개 업소, 250여 명의 여성이 있는 수도권 최대 성매매 집결지로 몸집을 키웠다.
파주시는 2022년 김경일 시장 취임 후 용주골 폐쇄를 위한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시는 2023년 1월 성매매 집결지 정비 합동팀(TF)을 구성해 용주골 내 건축물 일제조사와 소방점검을 실시했다. 불법 건축물에 대해 강제철거에 나서는 한편 6월부터 올빼미 활동을 시작했다. 용주골을 나오겠다는 성매매 피해여성에게는 2년간 생계비 1,800만 원, 동반 자녀 1인당 (18세 미만) 월 10만 원, 주거지원비 1,400만 원, 직업훈련비 720만 원, 자립지원금 500만 원(1회) 등을 지원하는 조례도 제정했다. 파주시의 강한 폐쇄의지에도 불구하고 용주골에는 여전히 40여개 업소에서 90여명이 성매매에 나서고 있다.
성매매 여성들은 재개발로 집결지가 자동 폐쇄될 때까지만 기다려달라고 호소한다. 성매매 여성 모임인 ‘자작나무회’ 회장인 40대 A씨는 20대 후반에 용주골에 들어와 돈을 벌고 나갔다가 아버지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6년 전 다시 들어왔다. 그는 “술을 못 마셔 유흥업소에도 갈 수 없고 배운 기술이 없어 취업도 어려워 결국 되돌아왔다”고 했다. 이어 “이곳 여성들은 홀로 애 키우고, 부모 모시는 3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이 대부분”이라며 “주변이 재개발되면 자연스럽게 떠날 테니 그때까지만 시간을 달라”고 하소연했다. 집결지 폐쇄를 막기 위해 이들은 결사적이다. 사생활 침해 논란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파주시가 용주골 인근에 방범용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는 극단적 대책을 시도하자 일부 여성들이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전신주 꼭대기에 올라가는 농성을 벌였다. 이들의 안전 문제를 이유로 결국 CCTV는 철거됐다. 시는 지난 3월 말 다시 CCTV 설치를 시도했으나 종사자들이 또 전신주 고공 농성을 해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시와 여성단체는 자연 폐쇄까지 기다려달라는 성매매 여성들의 요구는 ‘시간끌기용’이라는 입장이다. 이곳 일대가 대규모 재개발 중인 건 맞지만 율목, 금촌2, 새말지구 등이 이미 착공에 들어간 반면 용주골이 포함된 파주 1-3구역은 시설 부족, 열악한 접근성 등의 이유로 건설사들이 외면하고 있어 재개발이 계속 미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성매매특별법) 성(性)을 사고파는 건 물론 성매매 알선부터 광고, 권유, 유인, 장소 제공 등 용주골에서 성매매를 목적으로 벌어지는 모든 행위는 불법이다. 그러나 경찰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게 시민단체 측 주장이다. 한 탈성매매 여성단체 대표는 “경찰이 성매매 집결지에 대한 단속에 나서지 않는 건 성매매를 범죄로 보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며 “순찰만 강화해도 이렇게까지 영업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 관계자 역시 “CCTV 설치에 반대하는 집결지 여성이 전신주에 올라 업무를 방해했는데 경찰이 체포는커녕 바라만 보고 있더라”라며 “이미 설치한 CCTV도 그들이 철거를 요구하자 경찰이 ‘추락이 우려되니 일단 빼자’고 해 철거했다”고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실제로 경찰의 단속과 적발 건수는 미미하다. 경기북부경찰청과 파주경찰서가 함께 용주골 성매매 단속에 나서 적발한 건수는 2019년 7건, 2020년 5건, 2021년 9건, 2022년 4건, 지난해 15건 등 최근 5년간 40건에 불과하다. 경기북부청 관계자는 “용주골에 대한 단속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으며 파주경찰서와 파출소에서 순찰도 계속 돌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확한 순찰 횟수는 공개하지 않았다.
물론 경찰 단속이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파주경찰서 관계자는 “성매매 여성이 업소 앞에 나와있어도 단속할 법적 근거가 없다. 경찰은 범죄예방 차원에서 순찰을 도는 것일 뿐”이라며 “불법 행위가 발견돼 단속을 해도 곧바로 또 다른 여성과 업주가 들어온다”고 말했다. 단속이 능사가 아니며 집결지 자체를 없애야 하는데 이는 경찰이 아닌 정부와 지자체가 할 일이란 논리다.
그러나 경찰력이 집결지 폐쇄에 결정적 역할을 한 지자체 사례도 있다. 60년 동안 운영되던 경기 수원역 성매매 집결지는 2021년 5월 문을 닫았다. 2010년대 초부터 강제철거, 건물 매입, 소방도로 개설 등 수원시가 모든 행정력을 동원했을 뿐 아니라 경찰 역시 강력한 단속을 펼쳐 힘을 보탰다. 김원준 당시 경기남부경찰청장은 생활안전과(현재 범죄예방대응과)를 통해 수원역 집결지에 밤낮 가리지 않고 수시 순찰을 지시했다. 단순 단속에 그치지 않고 대형업소나 대를 이은 업주 등의 첩보를 바탕으로 업주의 집, 사무실, 가족 등에 대해 대대적 압수수색을 벌여 세금 추징과 수익금 몰수 보전을 요청한 뒤 업주를 구속했다. ‘융단폭격’ 경찰 단속에 당황한 업주들이 6개월의 유예 기간을 요청했지만 아랑곳 않고 2차 단속을 예고했다. 그러자 업주들은 자발적으로 폐쇄 결정을 내렸다. 김 전 청장은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시와 시민단체, 경찰의 단속이 맞물려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찰 의지”라며 “산발적 단속으로는 불가능하고 단속되면 패가망신한다는 사실을 주입시킬 정도로 대대적인 단속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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