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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시대'를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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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혼돈 시대가 재연되는 불안감
먹고사는 데만 집중하는 정치외면 확산
정치에 깨어있는 시민만이 유일한 해법
1920년대 세계는 '혼돈의 시대'에 돌입한 바 있다. 그 증세는 무엇이었나. 한나 아렌트에 의하면 "그 어느 때보다 정치가 중요함에도, 그 어느 때보다 정치가 상식을 따르지 않고 광기에 출렁대어 미래가 예측 불가능"해진다. 정치가 상식에서 벗어나면서 선거는 최선이 아니라 "최악과 차악 중 차악의 선택이 강요되는 과정"으로 전락한다. 그리하여 오늘 선출된 지도자가 내일이면 공화정의 파괴자로 규탄된다. 국가의 통합된 정체성은 사라지고 분열된 하위 공동체가 대립하고 투쟁하면서 각자만의 정체성을 키워간다. 그 결과 협상과 타협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한다는 민주주의의 기제는 힘을 잃는다. 공화정의 마지막 보루인 법치주의의 권위마저도 위협받고, 정점에 이르면 대다수 시민은 혼돈의 시대를 사는 법으로서 정치에 대한 냉소와 무관심을 선택한다. 더 이상 진실과 거짓의 구분이 중요하지 않고, 시민들은 어떤 일이 일어나도 무감하고 "아무것도 진실이라고 믿지 않는다".
100년을 주기로 세계사에는 '혼돈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인가. 초기 민주주의 일탈, 대중의 일시적 광기로 여겨졌던 1920년대 혼돈의 시대 증세가 2020년대 세계 각국에서 발견된다. 러시아에서는 푸틴이 압도적인 지지로 장기 집권하고 있고, 6월로 예정된 유럽 의회 선거에서는 포퓰리스트 정당의 약진이 예상된다. 11월 미국 대선에서는 트럼프의 복귀가 점쳐진다.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책장에 묻혀 있던 한나 아렌트를 찾아보며 인터넷을 두드려 보았다. 미국에서는 2016년 트럼프의 당선과 함께 아렌트의 저작이 느닷없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내렸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올해 출간된 그녀의 전기가 언론의 호평 속에 회자된다. 세계는 나타난 증세에 '혼돈의 시대' 감염을 이미 두려워하고 있음이다.
20세기 말에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전까지를 경제학자들은 '대평온(Great Moderation)의 시대'로 부른다. 유가와 물가가 안정되고 세계 경제 환경을 교란하는 주요국 사이의 정치 군사적 대립이 없는 가운데, 세계교역이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 경제 성장률이 높았던 시기이다. 이제 와서 보면 우리나라가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환경상의 이유였다. 우리가 만든 환경이 아니었으므로 주어진 행운이었다.
2020년대 '혼돈의 시대'에는 그 행운의 환경이 반전되고 있다.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주요국 간 갈등과 대립이 격화된다. 자국 산업 우선주의는 미국의 양대 정당이 이제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이다. 지정학적 위험과 국제공급망의 분절로 물가는 변동성이 높아지고 세계교역과 경제의 장기성장률은 낮아질 전망이다. 달라진 세계 환경은 불리한 외부조건을 스스로 극복하고, 나아가 커진 국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국제경제질서의 재편에도 참여하여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을 대한민국 공동체에 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막상 지난 한 달 총선 국면을 겪으며 오히려 우리도 결국 세계사의 탁류에 휩쓸려 간다는 불안감이 스며든다. 혼돈의 시대 증세에서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는 것이 없다는 느낌이다. 더불어 이해되지 않고 믿을 수 없는 정치는 잊어버리고 '먹고사는 일'에 집중하겠다는 이들이 주변에 많아진다.
한나 아렌트는 혼돈의 시대에 대한 해법으로 깨어있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치관여를 제시하였다. 당위이되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은 해법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외 다른 방법도 없다. "최악에 대비하되 최선을 희망하라." 그녀가 남긴 경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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