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 빠진 육군대위... 코인 받고 군사기밀 넘겼다가 징역 10년

입력
2024.04.22 17:15
수정
2024.04.22 18:09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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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 김정은 참수부대서 근무
'북한 공작원' 의심 해커와 거래
상대 정체 미궁에 국보법은 무죄

그래픽=신동준 기자

그래픽=신동준 기자


"돈 좀 벌어보지 않을래? 상대가 요구하는 자료만 주면 돈을 받을 수 있다고 하네."

육군 특수임무여단 소속 A 대위에게 들려온 악마의 속삭임. 대학 동기로부터 두 번째 수상한 제안을 받은 건 2021년 9월이었다. 1년 반 전에도 비슷한 제안을 받았다가 거절했지만, 이번엔 물리치기가 어려웠다. 인터넷 도박으로 쌓인 빚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났기 때문이다.

잠시 망설였다. 그의 소속 부대는 육군특수전사령부 제13특수임무여단. 세상에서 '김정은 참수부대'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그렇다면 어떤 자료를 요구할지가 뻔했다. 그러나 A 대위는 결국 돈을 벌고자 했고, '악마와의 거래'를 시작하며 돌아오지 못하는 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제안을 수락하자, 곧 자신을 '러시아 정보국 브로커'라고 밝힌 인물이 텔레그램으로 접근했다. 그의 대화명은 '보리스'였다. 보리스가 노린 건 한국군합동지휘통제체계(KJCCS)였다. 합동참모본부가 각 군과 작전∙지휘사항 등을 주고받기 위해 만든 통신망이었다.

첫 지시는 간단했다. KJCCS 로그인 화면을 넘기라고 했다. 대가로 102만 원어치 비트코인을 받았고, 이후 10차례에 걸쳐 △새해 인사 △명절 축하 △특수전 교육 입교 격려금 등 명목으로 1,380만 원 상당의 코인이 입금됐다. 몰래 자료를 보내기 위한 노트북 구매비용도 받았다.

반복적으로 돈을 받으면서 A 대위의 범행은 점점 대담해졌다. 그는 감시가 소홀한 당직 시간 등을 이용해 작전계획, 전투세부시행규칙, '적 인물·장비 식별 평가' 문건 등을 빼돌렸다. 유출될 경우 국가 안전보장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는 2급 군사기밀이 대부분이었다. 수고비로 보리스는 코인 3,400만 원을 더 보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이 은밀한 거래는 A 대위의 꼬리가 밟히기까지 6개월간 이어졌다. 범행이 드러나자 보리스는 홀연히 사라졌고, A 대위는 체포됐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A 대위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북한 공작원에게 군 기밀을 넘겼다는 혐의였다.

재판 과정에선 이 '보리스'라는 인물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국가보안법으로 의율하려면 보리스가 반국가단체(북한) 소속이어야 하는 것이 증명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 범죄가 전형적으로 북한 정찰총국(대남 공작을 하는 첩보기관)의 행위라고 판단했다. 실제로 보리스는 A 대위에게 "일 없습니다"(괜찮아)라는 북한식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황증거는 거기까지였다. 검찰은 '보리스=북한 공작원'임을 밝히는 물적 증거를 찾지 못했고, 결국 A 대위의 국가보안법 유죄를 받아낼 수 없었다. 대신 A 대위는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를 받아 1·2심에서 징역 10년과 벌금 5,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이 판결은 지난달 28일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A 대위는 불법 도박 부분에서도 형사적 책임을 져야 했다. 그를 군사기밀 유출로 이끌었던 도박 혐의에서, 지난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최다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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