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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비장애인은 뭐 삶이 쉽니?" 휠체어 타고 활보하는 언니들이 용기를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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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탄 언니를 볼 때면, 가까이 있든 멀리 있든 공명하는 무언가를 느낀다. 각자의 역사가 다름에도 우리를 통과하는 감각은 놀랍게도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어서 마주침은 서로에게 웅웅대는 파장을 만들어 낸다. 그 울림은 내게 정겹고 그리운 것이라, 계속 진동을 좇아 움직이게 된다."
휠체어 바퀴를 굴려 세상을 누비는 유튜버 '구르님', 김지우(23) 작가는 책 '우리의 활보는 사치가 아니야' 서문에 이렇게 썼다. 그는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뇌병변장애인이자 구독자 7만 명을 보유한 7년 차 유튜버. 자전적 에세이 '하고 싶은 말이 많고요, 구릅니다', 그림책 '오늘도 구르는 중'에 이어 휠체어를 정체성으로 삼은 여성 장애인 6명의 인터뷰를 엮어 '우리의 활보는 사치가 아니야'를 펴냈다. 그는 "장애인이 가시화될수록 장애가 사람을 설명하는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며 "장애인뿐 아니라 비장애인들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책을 소개했다.
김 작가에게 휠체어는 개성이자 정체성이다. 그가 여성 장애인 최초로 유튜브를 시작한 것도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단순한 바람 때문이었다. 장애인 딸의 사진과 영상을 블로그에 올리고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아버지를 보며 자란 덕분에 카메라 앞에 서서 말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그는 국내 여행기부터 교환학생 생활기까지 아등바등 사는 소소한 이야기를 유튜브에 올려 주목을 받았다. "나와 닮은 이들과 소통하면서 비로소 제 안의 결핍이 해소되는 느낌이었죠. 저와 비슷한 언니들을 왕창 만나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구체적으로 듣고 싶었어요." 그렇게 출발한 것이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 여성들을 만나 인터뷰한 메일링 서비스 기획이었다. 유료독자 270명으로 시작한 메일링 서비스는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책 출간으로 이어졌다.
김 작가가 만난 '언니들'은 10대 소녀부터 칠순을 바라보는 할머니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장애 여성이면서 비건이자 청소년 활동가로 사는 10대 유지민, 수영·럭비·스키를 즐기는 20대 장애인 스포츠 선수인 주성희, KBS의 첫 여성 장애인 아나운서로 장애 여성 네트워크를 만드는 30대 홍서윤, 패션 브랜드 사업과 육아를 병행하는 40대 박다온, 많은 장애인들을 여행으로 이끌고 있는 50대 여행작가 정윤선, 특수교육을 업으로 삼아 지구촌을 돌아다니는 60대 교수 김효선의 내밀한 이야기가 책에 담겼다. "그분들을 만나면서 제가 걸어가게 될 중·장년, 노년의 삶을 미리 살아 보는 기분이었어요. 책을 읽는 누군가에게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제 감상을 엮어 글을 썼어요."
책은 '장애 극복기'가 아니다. 세상의 온갖 터부와 걸림돌로부터 자신을 지키며 걸어온 인생사 릴레이는 비장애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김 작가가 용기를 얻은 대목이기도 했다. 부족함을 걱정하는 부모의 곁을 과감히 떠나고 이혼과 사별이라는 파고를 넘어 혼자 서기에 성공하며, 점점 약해지는 신체에도 직업인으로서 자긍심을 간직한 채 유쾌하게 살아가는 언니들의 이야기에선 "내가 했으니 너도 할 수 있을거야" "한 번 갔더니 또 갈 수 있더라" "계속해 봐, 안 되면 말고" 같은 말들이 쉴 새 없이 튀어나왔다. "여성 장애인들의 고민이 비장애인 여성이 마주하는 고민보다 복잡한 건 사실이에요. 사회 구조가 여성에게 불리한 데다 장애가 더해지면 훨씬 복잡한 형태의 차별을 겪게 되니까요. 그런데 쉬운 삶이 있긴 한가요. 장애와 더불어 무사히 살아가는 언니들을 보며 깨달았죠. 장애인에게도 비장애인에게도 삶이란 매일 장애물을 만나는 일이라는 걸요."
서울대 사회학과에 재학 중인 그는 '젠더'를 렌즈로 삼아 사회 구조를 깊이 들여다볼 작정이다. 더 선명한 '장애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장애인 이야기를 하는 곳에는 늘 중년 남성들만 있어요. 여성 이야기를 하는 곳에 가도 장애인 이야기는 없고요. 저는 스스로 '필요'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말해요.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장애 여성 이야기를 더 확장하고 싶어요. 오늘 해 봐야 내일 또 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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