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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처소에서 인증사진? 진짜보다 실감나는 드라마 세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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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섣달을 납월이라 한다. 기원전에도 축제를 열었던 듯하다. 축제에 미친 이들을 바라보는 제자 자공은 도무지 모르겠다는 눈치다. 공자 왈, ‘일장일이(一張一弛)'라 했다. 활시위를 죄었다 늦췄다 하는 비유로 백성의 마음을 쉬게 하는 일이다. 주나라 문왕도 무왕도 하지 못한 문무지도(文武之道)라 했다. ‘예기’에 나오는 말이다. 놀이와 행진이 얽힌 축제다. 사오싱에 매년 납월 축제가 열리는 고진이 있다. 축제의 계절은 남방의 건조한 겨울로, 고기를 말린다. 라러우(腊肉)라 한다.
북송시대에 조성된 안창고진(安昌古鎮)으로 간다. 축제가 열리는 겨울에 찾아가지 못했다. 그저 갈 때마다 온몸을 드러내고 줄줄이 매달린 고기만 실컷 본다. 항저우를 통과해 바다로 흘러가는 전당강의 영향으로 바둑판처럼 도랑이 흐른다. 실핏줄처럼 마을을 적시는 수향이다. 상하이, 장쑤, 저장 일대 수많은 수향 중 열손가락에 꼽힌다.
수향의 상징인 석공교가 아담하다. 양쪽을 오가는데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꽃과 넝쿨이 감싼 운치가 새롭다. 1,747m에 이르는 고진이다. 푸른 물이 연잇는 길에 수많은 집(碧水貫街千萬居)이 있고, 무지개가 도랑을 건너는 다리가 17개(彩虹跨河十七橋)라 한다. 돌다리 아래로 오봉선이 지난다. 대오리에 옻칠을 한 덮개다. 바닥까지 닿도록 길게 노를 만든다. 교통 및 물류 수단인데 관광객이 많으니 돈벌이가 된다.
도랑 양쪽의 복도로 왕복하며 구경한다. 기둥을 놓고 차양을 쳐서 비와 햇볕을 막아주는 회랑이다. 민가는 빈틈없이 식당으로 변했다. 도랑 쪽으로도 좌판이 끝없이 붙었다. 라러우도 무진장 걸려 있다. 돼지만이 아니라 오리와 닭도 있다. 납작하게 눌린 생선인 편어간(扁魚干)이 햇볕을 받아 속살까지 투명하다. 배를 갈라 펼치니 두 눈으로 똑바로 쳐다보는 듯하다. 얼핏 박쥐 같은 날짐승처럼 보인다. 물속으로 스며든 장면도 보인다. 오봉선이 지나면 사라졌다 다시 형체를 드러낸다. 한겨울에 홀딱 벗은 몸으로 별미를 제공하는 수향이다. 축제가 열리는 날 다시 가고 싶다.
저장에 영화와 드라마 촬영 세트장이 두 군데 있다. 동남부 해안의 샹산(象山)으로 간다. 세트장이라고 공짜가 아니다. 150위안(약 2만8,000원)이니 생각보다 비싸다. 2005년에 문을 열어 1,500편이 넘는 영화와 드라마를 촬영했다. 78만㎡ 크기다. 지도를 보니 낯설지 않은 이름이 많다. 당나라 당성, 서유기의 수렴동, 삼국지의 양양성·대리황궁·춘추전국성, 민국(民國) 구역도 있다.
무협이나 시대물인 고장극(古裝劇)이 많다. ‘중드(중국드라마)’ 팬이라면 알만한 포스터가 잔뜩 있다. 김용 원작인 ‘신조협려’가 먼저 반겨준다. 남송 말기 무협과 애정을 다룬다. 드라마로 자주 제작되는 편인데 2006년 중국CCTV 방영물이다. 2011년에 방영된 ‘서유기’도 보인다. 대형신화극(大型神話劇)이란 설명이 조금 낯설다. 승려가 주인공이어도 종교 드라마는 아니다. 도술을 부려 마귀를 물리치는 판타지로 범벅이니 신화라 할만하다. 손오공이 태어난 화과산 폭포 안에 있다는 수렴동이 보인다. 드라마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다.
후거가 킹(황제)메이커 매장소로 주연한 ‘랑야방’도 있다. 지략과 암투가 흥미진진하다. 2015년 국내에 방영돼 장안의 화제였다. 2편도 기대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여류 작가 하이옌의 웹소설이 원작이다. 3편도 탈고돼 올해 방영될 예정인데, 다시 선풍을 끌지 궁금하다.
‘삼생삼세십리도화’도 탕치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세 번 태어나 다시 만난 신과 인간이 난관을 극복하고 사랑을 한다는 내용이다. 사뭇 황당한 줄거리인데 볼수록 빠져든다. 도화가 만발한 윈난성 푸저헤이(普者黑)에서도 촬영했다. 산에서 바라본 촬영지가 드라마처럼 신비로운 광경을 연출한다.
화제의 드라마 ‘미월전’도 촬영했다. 사실 촬영지가 여러 군데다. 2015년 베이징TV와 둥팡TV가 동시에 방영했다. 전국 50개 도시 시청률이 평균 7%가 넘는 대박이었다. 초나라 공주 미월이 진나라로 건너가 태후가 된다. 통일의 기반을 닦는 과정에서 사랑과 권모술수를 다룬다. 병마용의 실제 주인공인 듯한 암시가 마지막 81회에 나온다. 20년 전 중국 기행을 시작한 동기가 병마용이라 감회가 남다르다. 2023년 가을에 다시 방문했는데 ‘진시황과 병마용은 무관하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병마용 1호갱도 여전하다.
당나라 시대를 구현한 거리에 엑스트라 배우들이 어슬렁거린다. 성벽에 깃발이 나부끼고 갑옷 입은 사병도 보인다. 성문으로 말도 지난다. 객잔과 가게는 배우들의 몸짓으로 성황인 듯하다. 관람객이 드나들어도 촬영을 한다. 성문 밖으로 나가니 광장이 나온다. 격렬한 전투나 말 달리는 장면을 촬영하기 좋다. 북방 초가집이 서너 채 나오는데 지붕 위가 하얗다. 눈 내린 장면을 위해 솜을 뒤집어 씌웠다.
민국 시대의 상하이 번화가인 난징루와 중산루가 보인다. 공산당 1차 대회 유적지도 있다. 백화점과 시계탑, 은행과 카페가 입주한 건물도 있다. 1928년 문을 연 상하이 최초의 영화관 대광명영원이 보인다. 차오저우(潮州) 상인인 가오융칭과 미국 워너브라더스가 합자했다.
왼쪽 포스터는 ‘추이디춘샤오’다. 원제는 ‘The Great Waltz’로 미국에서 1938년 개봉됐다. 오른쪽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다. 1937년 영국에서 상영된 ‘Young and Innocent’다. 제목이 어려웠던지 ‘어린 아가씨’라는 의미의 '넨칭구냥(年輕姑娘)'으로 번역했다. ‘The Girl was Young’이라 적혀 있다. 세트 속 영화관에서 영화를 만나는 신기한 경험이다.
1934년 제작된 ‘어광곡’ 화면이 펼쳐져 있다. 샹산의 바닷가에서 촬영했는데 당시 최고의 여배우인 왕런메이가 주인공으로 열연했다. 서울에서 태어난 최고의 미남 배우 김염의 부인이기도 했다. 어민 가족의 비참한 삶을 그린 작품으로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한 최초의 중국 영화다. 거의 100년이 됐는데도 왕런메이가 부른 주제가는 지금도 널리 불린다.
‘아버지가 찢어진 어망을 남기셨네, 겨우내 늘 세워두고 바라본다’는 노랫말이 심금을 울리기 때문이다. ‘중국영화는 샹산에서 세계로 향해 나아간다(中國電影從象山走向世界)’는 글귀가 보인다. 세계 무대로 향하고 싶은 마음이다.
서쪽으로 150㎞ 떨어진 헝뎬(橫店)에도 영화 드라마 세트장이 있다. 중국 최대 규모인 3,300만㎡다. 샹산의 42배가 넘는다. 여러 군데로 나눠 따로따로 입장권을 판매한다. 진왕궁(秦王宮), 청명상하도(清明上河圖), 몽환곡(夢幻谷), 광저우제(廣州街)와 홍콩제(香港街)까지 보려면 하루로 부족하다. 세트장마다 따로따로 입장권을 사야 한다. 묶어서 살 수도 있다. 최소 180위안(약 3만3,000원)에서 295위안까지다. 몽땅 볼 각오면 거의 20만원이다. 베이징 고궁을 카피한 명청궁원(明清宮苑)을 볼 생각이다. 180위안을 지불하고 나니 배보다 큰 배꼽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고궁은 60위안이다.
베이징에 거주할 때 자주 찾던 고궁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촬영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쌍둥이처럼 똑같이 만든 촬영 세트장이 직선거리 1,250㎞ 떨어진 곳에 있다니 와보고 싶었다. 항저우 남쪽 2시간 거리다. 자금성과 비슷한 모양과 규모로 만든 관광지다. 1998년에 1:1로 복제했다. 오문을 지나니 어마어마하다. 크기도 그렇지만 완전 고궁에 온 분위기다. 황제 대관식이 열리는 태화전도 차이를 발견하기 쉽지 않다.
사방에 드라마 ‘연희공략’ 포스터가 휘날린다. 2018년에 중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드라마다. 70부작으로 인터넷 플랫폼 아이치이가 독점 방영했다. 언니의 복수를 위해 궁녀로 잠입한 후 황후에 오르는 과정이 스릴 넘친다. 완성도 높은 고증으로 의상이 아주 볼만하다. 한 달 보름 만에 135억 뷰를 기록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인기다. 황제의 후궁이 거주하는 동육궁(東六宮) 중 하나가 연희궁이다. 드라마 여주인공이 연희궁의 주인이다. 무명에 가까웠던 우진옌이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복제품이라 황제나 황후가 거처하던 실내로 들어가도 된다. 베이징 고궁은 문도 겨우 열어두며 인파도 많아 제대로 보기 힘들다. 고궁에서 본 적 없는 어문청정(御門聽政)도 있다. 황제가 직접 신하의 직언을 듣거나 교지를 내리는 장소다. 명나라 시대는 태화문에 있었고 청나라 시대에는 건청문으로 옮겼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시대극을 연출해야 하니 새로 만들었다.
황제의 숙소인 건청궁도 개방이다. 전통 복장을 입고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다. 정대광명(正大光明)이 증거가 된다. 주희의 문집에 수록된 글로 청나라 순치제의 친필이다. 사사롭거나 그릇되지 않고 정당하고 떳떳하다는 뜻이다. 용케 17년 전에 촬영한 사진이 있다. 지금은 내부를 보려고 해도 겨우 조금 보일 듯 말 듯이다. 특별 대우를 받고 궁전에 들어갔다는 ‘귀여운 거짓말’을 해도 믿을 리 없다.
건청문 앞에 궁녀들이 대기 중이다. 잡담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안으로 들어가니 선비들도 잠을 자거나 핸드폰을 가지고 논다. 엑스트라라도 촬영 스케줄에 따라 시간을 맞춰야 하니 고단하다. 거북만큼 몸집이 큰 배우도 손아귀에 담은 현대의 무기(?)를 주무르고 있다. 모두 드라마의 조미료 같은 역할로 등장하리라. 드라마로 완성돼 방영되면 혹시 궁녀나 선비를 알아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 종일 시간을 비우고 가면 흥미로운 무대도 볼 수 있다. 공주의 혼례, 팔기군의 말싸움, 황비 간택, 미인무, 비밀스러운 황궁 미희 등도 볼 수 있다. 베이징이 역사의 현장이라면 헝뎬은 문화 놀이터다. 붉은 담장에 검은색으로 카메라와 배우, 감독과 스태프가 그려져 있다. 고궁과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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