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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노래를 인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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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부터 비로소 그날부터 잊을 수 없는.
노래 ‘어느 별이 되었을까’ 중에서
아이가 태어나던 날, 세월호 선체가 바다 위로 떠올랐다. 더 많은 화물을, 더 많은 사람을 실어 더 많은 이윤을 내기 위해, 무리하게 증축한 그 배가 떠올랐다. 사람을 태워서는 안 될 정도로 치명적인 복원력을 가지고 있던 배, 언제든 꼬꾸라질 수 있던 6,825톤의 배가 떠올랐다. 침몰한 지 3년 만이었다. 세월호 곳곳은 녹슬어 있고, 구겨져 있고, 찢겨 있었다. 진도 체육관에서 들었던 "바닷물을 다 퍼마셔 버리고 싶어요"라는 고함이 귀에 쟁쟁 울렸다. 그 말에 ‘여전히’ 아픈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생존자 학생이 유서로 써놓은 "친구가 보고 싶다"라는 말도, 48일간 단식투쟁하며 내건 "진실을 밝혀달라"는 말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라는 노랫말도, 심지어 사랑한다는 말도. 무슨 말을 하건 ‘여전히’ 아프지 않을 방도가 없었다. 이제 갓 세상으로 오른 아이를 품속에 품은 채, 이제 막 바다에서 떠오른 세월호를 바라보았다. 아이가 태어난 병원 앞마당에 핀 노란 봄꽃의 자리가 유난히 시큰했다.
어느덧 초등학생이 된 아이를 데리러 마을 방과후 교실로 올라가는 계단 앞,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걸음을 멈춰 세웠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아, 이 노래. "거짓은 참은 이길 수 없다" 수도 없이 불렀던 이 노래.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단단한 울음소리로 만들어진 이 노래.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잊지 않기 위해 주먹을 쥐게 하는 그, 노래를 아이들이 부르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가슴팍으로 바다가 차올랐다. 팽목항에서 바라본 멍든 바다. 빨간 등대 밑으로 노란 리본이 쉴 새 없이 흔들리던 바다. 돌아오지 못한 이름들을 외치던 바다. 방과후 교실 문밖에서 아이들이 불러들인 바다의 노래를 한참 들었다. 느닷없이 차오른 바다가 쏟아지지 않게 작게 따라 불렀다. 창문 너머로 아이들은 종이로 만든 노란 나비를 쥐고 있었다. 세월호를 끌어올리는 시민들의 연대를 상징하는 노란 나비들이 방과후 교실 안에 가득했다. 어쩌자고 나는 자꾸만 출렁출렁했다. 입이 짰다. 노란 나비들 앞에서 노래를 지휘하던 사람은 416합창단 박미리 지휘자였다.
그이는 올해 초부터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4,160명의 노래하는 소리를 조직하고 있었다. 이 소식을 나는 주변 곳곳에서 종종 들어왔다. 4,160인의 시민합창단 '세월의 울림'을 조직하기 위해 방방곡곡을 누비고 있었는데, 아이가 다니고 있던 마을 방과후 교실로도 찾아온 것이었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노들장애인야학에서도 ‘합창과 연대’라는 수업으로 매주 금요일 전교생이 참여하는 4160시민합창단이 결성되기도 했다.
그이는 지난 10년간 빠짐없이 416합창단 연습과 공연을 지휘했다. "노래할 때마다 빛이 나올 듯 눈이 뻘겋게 충혈되던 아버지, 턱 밑이 부르르 떨리며 가사를 뱉지 못해도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으시던 어머니, 주먹 불끈 쥐고 단호하게 먼 곳을 바라보던 어머니, 어깨가 흔들릴 정도로 힘들어하는 어머니의 손을 가만히 붙들어주시던 그 옆의 어머니, 그때 그 눈빛들"을 마주한 자리에서 10년 동안 노래를 지켜온 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지휘자가 공연할 때마다 울어서 합창단원들은 노래할 때 지휘자 눈을 보지 않고 손만 보며 노래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냉철하고, 엄격해야 할 지휘자의 자리는, "뻘겋게"와 "부르르"와 "불끈"을 받아내며 가장 먼저 우는 자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 사회가 있어야 하는 자리가 어디여야 하는지 맨 앞에서 온몸으로 보여주던 그이었다.
416합창단은 이런 노래들을 불렀다. 축구하고 돌아온 아이의 머리통에서 풍기던 땀 냄새를 그리워하는 노래, 노래 속에 아이의 소리도 함께할 거라 믿으며 부르는 노래, 자식 잃고 노래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 심장이 다 녹아나는 것 같은 노래, 자식 잃은 부모가 거리의 투사가 되어 부르는 노래. “늘 울대가 막혀서 무대에 서는 세계 유일의 합창단” 416합창단은 ‘살기 위해’ 노래를 불렀다.
그이는 합창단 노래는 '품'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온몸이 젖은 채로 품에서 아이를 놓지 않던 그 마음과 힘으로 하는 노래를 담는 일이다. 그래서 엄마의 노래는 결코 물러섬이 없다. 지치지 않는 노래인 것이다"라고 말한다. 품의 발성법을 가진 416합창단의 노래는 차별과 불평등한 세계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과 ‘함께 살기 위해’ 품에서 노래를 꺼내들어 거리로 나섰다.
2016년 2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찾아가 처음 거리에서 노래를 불렀다. 이후로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진 청년 노동자의 부모를 껴안았고, 공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75미터 굴뚝에서 408일 동안 농성 투쟁 중인 해고노동자의 이름을 껴안았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쫓겨 나간 세입자들, 스텔라데이지호 실종 가족, 일하다 죽은 하청노동자들의 곁에서 노래를 불렀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펑펑 부르는 노래, 참혹한 기억을 견디지 못해 터질 것만 같은 사람을 위해 부르는 노래, 위험하게 일하던 자식 잃은 부모 가슴에 노래를 쏟아부었다. 점점 부풀어 자라는 품의 노래는 우리 사회 구석구석 무너진 곳을 돌며 사회적 품을 부풀렸다. 말하고 있지만 듣지 않는 사회를 향해, 보이고자 하지만 보지 않으려는 사회를 향해 416합창단은 노래했다.
세월호 10주기 맞아 펴낸 책 '520번의 금요일'(온다프레스, 2024)을 읽으며 나는 뒤늦게 416합창단 이야기를 접했다. 뒤쫓듯 416합창단 이야기와 음원을 담아낸 책 '노래를 불러서 네가 온다면'(문학동네, 2020)을 읽고 들으며 속눈썹이 자주 떨렸다. “감히,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인가 싶다. 416합창단의 노래는 내게 그렇다.”(박미리 지휘자) 내게도 그랬다.
수학여행 놀러 가다 죽었는데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 ‘이제는’ 그만하라고, 지겹지도 않냐고. ‘이제는’ 잊어버려야 할 때라고. 보상은 이미 충분히 이루어졌고, 3차례나 조사가 이루어졌으니, ‘이제는’ 괜찮은 것 아니냐고. 죽은 애가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이제는’ 시체팔이 그만하라고.
혐오와 폭력에 습격당하는 그 자리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무관심과 배제에 젖어드는 그 자리에서도 낙담하지 않고, 그 지옥에서도 노래의 공동체를 꾸려나가는 이야기와 노래를 들으며, ‘우리’를 품어내는 자들의 감히,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인가 싶었다. 지구가 ‘아직’ 푸른빛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분명 416합창단 노래에 있을 것이다. 당신께 이 노래를 마음을 다해 권한다.
합창 연습을 마치고 나온 아이의 어깨를 감싸며, 우리가 같이 부를 수 있는 노래가 하나 더 생겼네. 같이 불러보자! 아이의 노래가 앞장서는 동안 내 목소리는 느닷없이 흔들렸다. 나는 왜 아직도 이렇게 흔들릴까, 곤혹스러웠다. ‘아직’ 나는 다 울지 않은 것 같다. ‘아직’ 우리는 더 울어야 할 것 같다. ‘아직’ 풀어내야 할 울음과 물음들이 남았기 때문이다.
새로 배운 노래 부르기에 신이 난 아이는 노래를 부르다 말고 "침몰한다는 게 뭐야?" 물었다. 물 아래로 가라앉는다는 뜻이야. "왜 포기하지 않는다는 거야?" 흔들릴지라도 가라앉지 않기로 다짐했기 때문이지. "진실은 무슨 뜻이야?" 진실... 진실... 나도 잘 몰라. 그걸 알아내기 위해서 이 노래를 계속해서 부르는 건 아닐까?
함께 이어 불러야 할 노래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416합창단의 두 번째 앨범 '너의 별에 닿을 때까지 노래할게' 제작을 위한 펀딩 소식이 있다. 아래 큐알코드로 접속하거나 텀블벅(tumblbug.com) 사이트에서 ‘416합창단’을 검색하면 된다. 4월 23일까지가 마감이니 서둘러 주시길. 잊지 않겠다는 말은 당신과 나를 잇겠다는 말이다. 기억(remember)하겠다는 말은 다시-멤버(re-member)가 되겠다는 말이다.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아직’ 남아있다.
어둔 바다 깊은 하늘에 잊을 수 없는
노래 ‘어느 별이 되었을까’ 중에서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김신현경 서울여대 교양대학 교수와 서한영교 작가가 번갈아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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