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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무죄

입력
2024.04.15 04:30
27면

제22대 국회의원선거가 실시된 지난 10일 서울 마포구민체육센터 개표소에서 개표사무원들이 개표를 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제22대 국회의원선거가 실시된 지난 10일 서울 마포구민체육센터 개표소에서 개표사무원들이 개표를 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지난 10일 드디어 총선 레이스가 끝이 났다.

선거 당일 늦은 시간까지 개표 방송을 보다 잠시 졸음을 쫓으려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 속엔 광대까지 내려온 다크서클과 까칠한 피부, 떡진 머리카락 틈을 비집고 더듬이처럼 하늘을 향해 치솟은 새치들이 반기고 있다. "내가 레이스를 뛴 것도 아닌데···." 현실을 부정하며 거울 속 패잔병으로부터 재빨리 등을 돌렸다.

올해 초부터 야당 대표와 여당 의원의 피습, 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등장과 대통령실의 갈등, 여야 공천 논란,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외압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전 주호주대사의 출국 및 귀국, 대통령의 대파발언 등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잇따르며 머릿속은 공허해졌고 외모는 점점 피폐해졌다. 나의 외모는 "올해의 큰 이벤트를 또 하나 해치웠구나" 정도의 안도감 따위와 치환됐다.

선거기간 내내 '민생'은 뒤로하고 여야가 서로를 헐뜯으며 상대를 심판하자는 난리법석에 유권자들도 상당한 혼란과 피로감을 느꼈을 것이다. '정권 심판론'이나 '야당 심판론'뿐 아니라 '공직자 가발 심판론' 같은 말도 안 되는 별의별 심판론까지 판치며 서로를 향한 네거티브만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를 통해 얻은 큰 수확이 있다. 아쉽게 낙선한 유능한 정치인이 있었던 반면 비전 없이 빈말만 잘하면 의원 배지를 달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 선거를 통해 본색을 드러낸 자들, 본인의 안위만 염려해 신념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자들이 쭉정이처럼 일부 걸러졌다. 운 좋게 살아남은 쭉정이들은 튼실한 알갱이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겠지만 모든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미디어를 통해 대중과 스킨십을 많이 하며 평소 입바른 소리를 잘해 관심 있게 봤던 사람들이 국회의원 후보로 나오거나 지지 후보를 지원 유세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일부는 소신 있는 선거운동을 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했다.

"설마 저 사람이 그렇게 유치한 행동을 했겠어?" 공천탈락에 이념까지 환승한 것은 예사였다. 정권의 대변인임을 자처하며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치는 모습, 상대후보 유세현장에 난입해 소란 피우거나 시민들에게 윽박지르는 모습을 보며 두 눈과 귀를 의심했다.

사람들은 가정·직장 등의 사회생활을 하며 본성과 다른, 상황에 맞는 다양한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하지만 간절하거나 극한의 상황이 닥치면 그 본성이 드러나기 십상이다. 직장에서는 순한 양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가정에서는 호랑이 가장이 된다든지, 정의롭게 보이던 사람이 정치에 발을 들이며 권력의 앞잡이가 된다든지 하는 양면성은 '이미지 관리'를 위해 쓰는 가면(페르소나·Persona)이다. '페르소나'는 고대 그리스 가면극에서 배우들이 사용한 가면을 뜻하는데 심리학에서 상황에 따른 인격이나 성격 등을 지칭할 때 주로 사용한다.

심리학에서 인간의 다양한 페르소나는 조직 속에서 부드러운 관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추한 본성을 숨기려 거짓의 가면을 쓰고 다니던 사람이 본모습을 드러낼 때 상대방은 양면성의 괴리감에 상처를 받고 괴로워한다. 일종의 배신감이다. 인간의 본성은 추악함이 아니라, 추악한 인간이 위기와 욕망 앞에 본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본성을 드러낸 일부 쭉정이들 때문에 정치를 욕하지는 말자. "정치를 X같이 하는 게 문제이지 정치 자체에는 죄가 없다."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달 28일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발언이다.

류효진 멀티미디어부장 jskn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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