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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막으려 인권 내버린 유럽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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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협정은 이주민을 막고 학대를 무시하는 것이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지난달 17일 유럽연합(EU)이 이집트와 체결한 74억 유로(약 10조7,000억 원)의 지원 협정을 이처럼 맹비난했다. 이날 협정식에는 EU의 행정부 역할을 수행하는 집행위원회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위원장뿐만이 아니라 키프로스·그리스·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벨기에 정상도 참여했다. 앞의 삼국은 지중해에 면했기에 이집트 등에서 넘어오는 난민 신청자의 급증으로 어려움을 호소해왔다.
EU는 지원금 가운데 일부를 이주민 관리용으로 책정했다. 즉 2014년 쿠데타로 집권한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에게 EU가 돈을 주고 난민을 보내지 말라고 부탁했다. 이집트 경제는 매우 좋지 않다. 물가는 작년 8월에 39.7%로 최고치를 기록했고 지난 2월에도 29.8%나 올랐다.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2022년 12월, 8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지원받았으나 이집트 경제는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인권을 탄압하는 독재자에게 돈을 주고 난민 단속을 요청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EU는 지난해 7월 튀니지와도 10억 유로, 약 1조4,200억 원을 지원한다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당시에도 인권단체들은 EU를 강력하게 규탄했다. 인권침해를 피해 본국을 떠나려는 사람들의 발을 묶어 인권이 더 유린될 수 있기 때문이다.
EU는 기후위기 등 국제사회가 직면한 이슈에 선도적으로 대응한다며 자신을 규범적 권력으로 규정해왔다. EU 회원국이 되려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소수인 존중 등의 규범을 지켜야 하며 비회원국 지원에도 이런 규범을 적용해왔다. 하지만 지중해를 통해 들어오는 이주민이 급증하자 규범적 권력이라는 정체성을 내팽개치고 독재자들과 야합했다. 지난해의 경우 이탈리아와 그리스 등 지중해 쪽으로 들어온 난민 신청자의 수는 15만8,000명 정도로 전해보다 50%나 늘었다.
오는 6월 6일부터 나흘간 EU 27개국에서 유럽의회 선거가 치러진다. 유럽 각국이 저성장으로 신음 중이고 난민 급증으로 극우 정당의 지지도가 꽤 올라갔다. EU 차원에서 불법 난민 차단 정책은 응당 필요하다. 그러나 이집트와 튀니지의 예에서 보듯이 지원을 인권 존중과 연계하는 조항이 사실상 누락돼 있다. 그렇기에 인권단체는 EU의 이런 협약을 비판한다. 말로만 규범적 권력이라고 외칠 게 아니라 이주민 단속과 독재자 지원을 인권과 연계한 좀 더 세심한 정책이 EU에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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