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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임기 내내 '여소야대' 헌정사상 최초...남은 3년도 거대 야당 압박 받아야

입력
2024.04.11 04:3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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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내내 여소야대 지형 떠안은 첫 대통령
총선 전 각종 세금 감면책... 입법 현실화 불투명
야당 '입법 강행' 후 대통령 '거부권' 악순환

윤석열 대통령이 5일 부산 명지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를 하며 투표함에 용지를 투입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5일 부산 명지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를 하며 투표함에 용지를 투입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의 완패가 기정사실화되면서 윤석열 대통령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다. 임기 내내 여소야대 정국을 벗어나지 못한 헌정사 최초 대통령이라는 오명은 물론 남은 임기 3년간 거대 야당의 압박을 견뎌야 할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에게는 입법 권력을 손에 쥔 더불어민주당과의 협치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는 평가다.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5년 임기 내내 여소야대 지형에 놓였던 대통령은 단 한 명도 없었다. '87년 체제' 이후 윤 대통령을 포함한 8명 중 5명이 여소야대로 임기를 시작했지만, 이들 대부분이 임기 중 총선에서 '역전'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유일하게 임기 중 총선(2000년)에서도 야당에 패배를 맛봐야 했다. 하지만 총선 이후 '야당 의원 빼오기' 등으로 여대야소로 개편, 임기 내내 여소야대를 겪지는 않았다. 사실상 윤 대통령이 첫 사례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여소야대가 현실화되면서 윤 대통령에게 남은 임기 3년은 지난 2년간 겪은 고난의 '데자뷔'가 될 전망이다. 대통령 중심제이지만, 국회가 가진 권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각종 정책을 뒷받침할 법안 재·개정은 물론, 정상적인 공약 이행과 국정과제 추진 자체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무엇보다 총선 직전 윤 대통령과 여당이 내걸었던 각종 공약이 말 그대로 '공약(空約)'이 될 수밖에 없다. '선거 개입'이라는 비판을 무릅쓰면서까지 진행했던 민생토론회에서 윤 대통령은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상속세 부담 완화, 공시가격 현실화 폐지 등을 내걸며 민심에 소구했다. 안 그래도 "비현실적 재정 투입" 등 비판의 목소리를 냈던 민주당이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한 마당에 이를 그냥 두고 볼 리는 없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부 정책을 위해 추진하려는 입법이 하나도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윤 대통령 역시 이 같은 우려를 일찌감치 참모들에게 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총선에서도 여당이 다수당이 되지 못하면 식물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취지의 걱정이었다. 실제 지난 2년간 윤 대통령이 추진하려던 주요 정책이 거대 야당에 발목이 잡히는 경우가 허다했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이 대표적이다. 현재 여가부는 김현숙 전 장관 사임 후 차관 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전력 인프라 관련,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 재건축 안전진단 개선 관련 개정법 등 윤 대통령이 이미 입법과 개정 필요성을 강조한 법안만 해도 여럿이다.

결국은 윤 대통령이 선택의 기로에 섰다는 평가다. 남은 임기를 '무한 갈등'으로 점철됐던 지난 2년과 같은 방식으로 보낼 것인지, 협치를 통해 국회 권력과 균형점을 찾을 것인지를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선 여전히 윤 대통령의 향후 국정운영의 기조와 방향성이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다. 여야의 협치와 대화가 단절된 상황에서 거대 야당이 입법을 밀어붙이고, 윤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으로 답하는 모습이 반복될 공산도 크다. 윤 대통령은 지금까지 양곡법, 간호법, 노란봉투법, 방송 3법, 이태원 참사법 등에 아홉 번이나 거부권을 행사했는데, 남은 3년은 이런 반복만 무수히 되풀이될 것이란 관측이다.

이 경우 윤 대통령이 '대통령령(시행령)' 정치에 의존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는 2022년 9월 검찰 수사권을 회복하는 내용의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고, 지난해엔 TV방송(KBS·EBS) 수신료를 전기요금에서 따로 떼어 분리징수하는 내용의 ‘방송법 시행령 일부 개정령안’을 의결하는 등 시행령 정치를 보였다. 지난 2년의 반복인 셈이다.

10일 오후 6시 방송 3사(KBS·MBC·SBS)의 출구조사 발표와 이후 개표 상황을 지켜본 대통령실은 침통한 분위기였다. 윤 대통령은 용산 집무실에 출근하지 않고 한남동 관저에서 개표 상황을 지켜본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이르면 11일 이번 총선 결과와 민심의 요구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김현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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