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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노 매직' 속 숨겨진 뒷이야기… 밤잠 설치고, 악역 자처하며 선수들 이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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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후 첫 KOVO컵 우승에 이어 8년 만의 챔피언결정전(챔프전) 진출 후 준우승까지. 오기노 마사지 OK금융그룹 감독의 2023~24시즌은 한 편의 동화였다. '일본식 수비 배구'에 대한 숱한 의구심과 팀의 부진 등으로 인한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끝내 해내고야 마는 해피엔딩 서사가 고스란히 담겼다. 팬들이 '오기노 매직'을 연호하는 이유다.
마법 같은 서사의 주인공 오기노 감독을 8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 서울에서 만났다. 오기노 감독은 현란했던 올 시즌을 돌아보며 가장 먼저 선수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그는 "선수들이 항상 최선을 다해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늘 고맙다"며 "승패에 관계없이 모든 시합이 다 좋았고, 목표로 했던 플레이오프(PO) 진출 그 이상의 성적을 낸 것도 좋았다"고 말했다.
밤잠 설치며 고민 거듭했던 10개월
오기노 감독은 작년 5월 OK금융그룹호의 선장이 됐다. 취임 첫해 정규리그 3위에 이어 챔프전 준우승이라는 빛나는 성과를 만들어냈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공격 위주의 한국식 배구에 수비 위주의 일본식 배구를 접목시키려다 보니 선수들과 합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고, 하필 3라운드 전패의 시련이 들이닥치면서 그렇잖아도 양쪽 어깨에 한가득 쌓여 있던 고민과 부담이 그를 더 강하게 짓눌렀다.
목표했던 봄 배구 진출을 목전에 뒀을 때도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순위 경쟁을 해야 했던 탓에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매 순간 선수들에겐 "즐기는 배구를 하자"고 다독였지만, 정작 본인은 고민을 거듭하느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았다.
오기노 감독은 "한국에 온 뒤로 하루 2시간 반, 많으면 4시간밖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어떻게 하면 선수들을 성장시키고, 이기는 경기를 할 수 있을지에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우리 선수가 22명인데, 22명 모두를 골고루 보면서 일일이 지적하고, 칭찬하고, 기술적인 조언까지 해야 했다"며 "그런 점이 참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원팀' 위해 악역도 자처
때론 악역을 자처하기도 했다. "어떤 선수가 나와도 같은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시스템 배구"를 강조하는 오기노 감독은 팀 플레이에서 벗어나는 선수가 포착되면 그게 누구든 여지 없이 호통을 쳤다. 주포 레오도 예외가 아니다. 레오는 괴물 같은 화력으로 매 경기 득점포를 가동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지만, 시즌 초 오기노 감독과 갈등하며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오기노 감독은 "레오가 초반에는 본인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며 "그런 것들이 지금까지는 괜찮았을지 몰라도 앞으로는 아니다. 내 팀에서 뛰려면 팀플레이를 해야 한다고 강하게 얘기했다"고 말했다. 다행히 레오는 4라운드부터 오기노 감독의 배구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그 결과 OK금융그룹은 4라운드 전승을 따내는 쾌거를 이뤘다. V리그 역사상 직전 라운드 전패 후 다음 라운드에서 전승을 거둔 건 OK금융그룹이 처음이다.
그는 "배구는 원팀으로 돌아가야 해서 특정 선수 때문에 다른 선수들이 참아야 하는 상황은 용납할 수 없다"며 "내가 악역을 자처해서라도 팀을 하나로 만들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선수들 향한 굳은 믿음이 오기노의 동력
반복되는 어려움 속에서도 오기노 감독이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고 지난 10개월을 잘 달려올 수 있었던 건 선수들을 향한 믿음과 그에 화답하려는 선수들의 노력 덕분이다. 오기노 감독은 "부임 후 시스템을 정비하는 데 정말 신경을 많이 썼다"며 "처음 겪는 시스템이라 혼란스러웠을 텐데도 선수들이 향상심을 가지고 해줘서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나의 지도와 선수들이 성장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잘 맞아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재차 고마움을 표했다.
나름의 스트레스 해소법도 찾았다. 오기노 감독은 경기 용인에 있는 OK금융그룹 훈련장 근처 숙소에 머무는데, 고민이 깊어질 때마다 산책을 하거나 웨이트트레이닝을 한 뒤 사우나를 간다. 맛집 투어도 소소한 재미 중 하나다. 숙소 주변 순댓국집과 오리집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시즌 중 가장 많이 먹은 건 맥도널드 햄버거다. 오기노 감독은 "경기 전날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으면 항상 이겼다"며 "우리카드 PO 때와 4라운드 전승을 달릴 때 맥도널드를 많이 먹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에서 53년간 먹은 맥도널드보다 한국 와서 10개월간 먹은 맥도널드가 더 많다"며 웃은 뒤 "일본에 돌아가면 질려서 못 먹을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다음 시즌엔 우승 향해 달린다
플레이오프를 목표로 내달렸던 올 시즌과 달리 다음 시즌에는 목표를 한 단계 높여 우승을 정조준할 방침이다. 오기노 감독은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지만 내 두 번째 시즌에는 선수 개인의 공격 스킬을 2, 3단계 더 올려 새로운 배구를 할 계획"이라며 "이번 시즌 준우승을 했으니 다음엔 우승에 가까워질 수 있게 노력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마지막으로 그가 항상 강조하는 'OK만의 배구'가 무엇인지 묻자 "볼을 떨어트리지 않는 끈질긴 배구"라고 답했다. 최근 막이 오른 FA시장에서도 이런 배구관에 부합하는 선수를 영입할 계획이다. 오기노 감독은 "아무 생각 없이 실수를 범하는 선수는 내 배구와 맞지 않는다"며 "선수가 실수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거나 안일한 실수를 반복한다면 나와 함께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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