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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세월호 추모법 두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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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지난주 개봉한 영화 ‘바람의 세월’을 보려고 했다. 세월호 참사로 딸을 잃은 문종택 감독이 10년간 기록한 유가족들 이야기다. 깜깜한 극장에서 다른 관객들과 함께 100분 동안 오롯이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그게 내가 택한 10주기 애도법이었다.
하지만 쉽지가 않았다. 서울에 사는데도 집 근처 극장들은 이 영화를 상영하지 않았다. 대중교통 1시간 거리 극장이 가장 가까웠지만, 하루 두 번만 상영했다. 나는 대표적인 시간빈곤자, 워킹맘이라 상영 시간에 맞춰 4, 5시간을 확보하는 게 여의치 않아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다.
나처럼 저마다의 사정으로 추도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올해는 어느 때보다 추모 행사와 관련 책 출간도 많지만 사는 일에 치여 이런 정보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이들이 함께 세월호 참사를 추모할 수 있는 가장 쉽고 좋은 방법은 TV 프로그램 시청이다.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범람하는, TV의 종말을 얘기하는 시대에 무슨 소리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OTT는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콘텐츠를 마음껏 볼 수 있는 데다 내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까지 콕 집어 추천해주니 TV보다 진화한 미디어인 것은 맞다.
하지만 전원 버튼 하나로 안방으로 찾아오는 건 여전히 TV 프로그램들이다. 공중파 TV는 사는 곳과 나이, 장애 등 차이를 넘어 모두에게 공평하다. 무엇보다 OTT가 내 관심과 취향에 최적화된 미디어라면, TV는 내가 미처 몰랐거나 잊었던 이야기들을 건네며 나보다는 ‘우리’에 관해 이야기하는 미디어다. 방송시간을 기다리는 수고로움만 감수하면 우리는 같은 시간에 비슷한 고민과 감정을 공유하며 느슨하게 연결될 수 있다. 이 보편성과 동시성은 OTT 시대에도 결코 퇴색하지 않는 TV만의 가치이고, 그래서 TV는 끊임없이 공동체에 대해 질문하고 관찰해야 한다.
하지만 4월 16일 전후 대부분의 채널들은 침묵을 택했다. 공영방송인 KBS는 지난해 말부터 제작해온 세월호 다큐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가제)를 지난 2월 갑자기 불방 결정했다.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던,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였다. SBS는 ‘8시 뉴스’ 아이템으로만 다룰 예정이다. 별도의 다큐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건 MBC뿐이다. 지난 2월 민영화된 이후, 최근 김백 사장이 과거 윤석열 대통령, 김건희 여사 등을 비판한 보도를 ‘대국민 사과’한 YTN은 구성원들이 세월호 관련 영상이 송출될 수 있을지 마음 졸이고 있는 상태다.
더 참담한 것은 침묵의 이유다. KBS는 당초 총선 8일 후인 4월 18일 다큐를 방송할 예정이었지만 경영진은 “총선 전후 한 달은 총선 영향권”이라는 궤변으로 방송을 막았다. 지난해 11월 박민 사장이 취임하고, 그가 임명한 제작본부장이 부임한 지 며칠 만에 벌어진 일이다.
얼마 전 “우파 중심으로” KBS를 장악하겠다는 내용의 KBS 내부 문건까지 공개되자 주변엔 “이제 KBS 안 본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지금 해야 할 일은 시청 거부 대신 KBS에서 일어나는 일을 더 똑똑히 지켜보는 일이다. 사회 구석구석의 목소리를 전하는 우리 모두의 자산인 공영방송사를 특정 정치세력의 주장만 대변하는 곳으로 바꾸려는 이들이 누구인지, 애도의 시간을 앗아간 게 누구인지 집요하게 묻고 기억하는 것. 그것이 내가 택한 또 다른 세월호 추모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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