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배달비, 고스란히 해외로

입력
2024.04.08 16:00
수정
2024.04.08 17:0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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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서울 시내에서 운행 중인 배민라이더스 배달 오토바이 모습. 연합뉴스

서울 시내에서 운행 중인 배민라이더스 배달 오토바이 모습. 연합뉴스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이 최근 공개한 작년 실적이 이래저래 화제다. 우선 놀라운 실적. 2년 연속 흑자에 매출은 전년 대비 15.9%, 영업이익은 65% 증가했다. 그보다 주목받은 건 4,127억 원에 달하는 배당금이다. 벌어들인 돈(당기순이익)에서 배당금이 차지하는 비중, 즉 배당성향이 81.5%다. 형식이 지난해 중간배당금이어서 그렇지 실제는 재작년 실적(당기순이익 2,758억 원)에 대한 배당이니, 실질적인 배당성향은 150%라 할 수 있다. 번 돈의 1.5배를 주주에게 배당했다는 얘기다.

□우아한형제들은 2020년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에 인수됐다. 인수금액은 40억 달러, 당시 우리 돈으로 4조7,500억 원이었다. 이듬해 DH는 김봉진 창업주와 싱가포르에 합작법인 우아DH아시아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우아한형제들 지분 99.07%를 소유한 사실상의 단일주주다. 그러니 배당금의 대부분(4,089억 원)은 우아DH아시아에 지급됐다. DH가 우아한형제들을 인수한 후 첫 배당에서 투자액의 10%가량을 회수해 간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배당성향은 대체로 20% 안팎으로 선진국 기업들에 비해 많이 낮은 편이다. 정부가 상장사 주가를 끌어올리겠다며 공을 들이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핵심이 배당성향 강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해외 단일주주를 둔 우아한형제들이 150% 배당을 하는 것에 대한 시선이 고울 수는 없다. 외국계 은행인 SC제일은행과 한국씨티은행의 고액 배당금 본국 송금도 늘 논란이었다. SC는 올해도 작년 중간배당을 포함해 총 2,500억 원을, 씨티는 1,388억 원을 배당한다.

□이들의 배당 논란엔 공통점이 있다. 국내 소비자들을 상대로 돈벌이를 해서 해외 본사 배만 불린다는 것이다. ‘내가 낸 배달비가 고스란히 외국회사 호주머니로 들어간다’는 불만이 나온다. “배당금은 글로벌 투자 재원으로 활용될 예정”이라는데 국내로 모두 들어오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무료 배달’ 경쟁에 가세했지만 업체에선 꼬박꼬박 6.8%의 중개이용료를 떼간다. 60% 넘는 점유율을 더 굳건히 해 결국엔 소비자와 자영업자 부담이 커지지 않겠느냐는 걱정도 적지 않다. 주주만이 아니라 돈을 벌게 해준 고객을 위한 적절한 보답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이영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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