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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쓱 올리자, 1초 만에 '결제 완료'... "홍채인식보다 100배 정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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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새너제이의 한 홀푸즈(Whole Foods) 매장. 필요한 물품들을 골라 셀프 계산대로 가져가자 익숙한 카드 결제용 기기 옆에 익숙지 않은 결제 기기 하나가 눈에 띄었다. '당신의 손바닥으로 결제하라'는 문구가 이 기기 화면에 표시돼 있었다. 홀푸즈가 지난해 도입한 아마존의 손바닥 인식(Palm scan) 기반 결제기였다.
집어온 물건들의 바코드를 계산대에 인식시킨 뒤 결제 단계로 넘어가니 신용카드, 현금 등을 선택하라고 안내됐다. 이 중 '손바닥 결제' 메뉴가 없어 고민하다 점원에게 문의하자 "그냥 갖다대라"는 짧은 답변이 돌아왔다. 의아했지만 시키는 대로 손바닥 결제기 위에 손바닥을 가져가니 '조금 더 위로'라는 문구가 떴다. 이에 손바닥을 약간 더 위로 옮기자 눈 깜짝할 새에 결제가 완료됐다고 표시됐다. 체감상 손바닥 인식부터 결제까지 1초도 걸리지 않은 듯했다.
홀푸즈는 미국과 영국 등에 약 480개 매장을 두고 있는 대형 슈퍼마켓 체인으로, 2017년 137억 달러(약 18조5,360억 원)에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아마존에 인수됐다. 아마존은 홀푸즈 인수 후 자사가 개발한 다양한 기술을 홀푸즈 오프라인 매장에 접목하고 있는데, 지난해 말 미국 전체 매장에 설치 완료된 손바닥 인식 결제 시스템 '아마존 원'도 그중 하나다.
아마존 원은 처음 한 번만 손바닥과 신용카드 정보를 등록해두면 아마존 원을 지원하는 모든 매장에서 이용 가능하다. 원래는 아마존 원 결제 기기를 통해서만 손바닥 정보 등록이 가능했으나, 아마존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이제 아마존 원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해서도 서비스에 가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아마존 원 기기가 있는 오프라인 매장을 찾지 않아도 누구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든지 등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마존이 손바닥 인식 기술을 처음 공개한 건 2020년이다. 미국 시애틀에 있는 완전 무인 편의점 아마존 고 매장 두 곳에 처음 도입했다. 아마존 원 출시는 애플이나 구글의 모바일 결제 시스템에 대항하는 성격이 강했다. 아마존은 2007년부터 온라인 간편 결제 서비스인 아마존페이를 운영했는데, 온·오프라인에서 모두 사용 가능한 애플페이(2014년 출시)·삼성페이(2015년) 등의 이용률이 갈수록 높아지자 아마존 원을 내놓고 뒤늦게 오프라인 간편 결제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아마존 원은 카드나 현금이 필요 없는 간편 결제를 지원한다는 점에서 애플페이 등 다른 모바일 결제 서비스와 성격이 같다. 그러나 스마트폰조차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게 이들 서비스와 근본적으로 다른 지점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애플이나 구글과 달리 아마존은 모바일 기기와 운영체제(OS)를 만드는 데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들을 아예 불필요하게 만드는 방식을 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손바닥 인식은 지문 인식이나 홍채 인식, 얼굴 인식 같은 생체 인식의 일종이다. 손바닥의 주름 모양이나 정맥 형태 등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점을 이용한 기술로, 다른 생체 인식보다 정확도가 높다고 알려져 있다. 아마존에 따르면 아마존 원은 두 개의 홍채를 인식하는 것보다 100배 더 정확하고, 손바닥을 등록한 수십만 명이 총 800만 번 인식시키는 동안 단 한 건의 오류도 없었다고 한다. 얼굴 인식은 쌍둥이를 구별하기 어렵고 지문 인식의 경우 지문이 닳은 사람은 이용이 사실상 불가능한 반면, 손바닥의 경우 식별할 요소가 많아 "상처가 생겼거나 반창고를 붙이고 있어도 인식이 가능하다"고 아마존은 설명한다.
아마존은 여기에 △지문 인식처럼 신체를 기기에 직접 갖다 댈 필요가 없는 점 △이용자가 인식 여부를 스스로 제어할 수 있다는 점 역시 손바닥 인식의 장점으로 꼽는다. '비접촉식' 기술이라 위생적이고, 이용자가 손을 펴서 기기에 갖다 대야만 인식이 되기 때문에 이용자 동의가 없어도 인식이 가능한 얼굴 인식보다 훨씬 안전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장점에도 손바닥 인식 기반 결제는 아직 많은 이에게 생소한 편이다. 최근 찾은 홀푸즈 매장에서도 약 30분간 손바닥 인식 결제기기를 이용해 결제하는 사람을 한 명도 볼 수 없었다. 저조한 이용률을 증명하듯 매장 내 설치된 8개 기기 중 7개는 방치된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뽀얗게 먼지가 쌓여 있었다. 한 점원은 "이 매장에는 지난해 가을쯤 손바닥 결제기가 도입됐는데 아직 대부분은 카드나 애플페이(아이폰 간편결제)를 쓴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용이 적은 데는 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가 주된 이유로 꼽힌다. 대체로 소비자들은 카드 정보를 넘겨주는 것보다 생체 정보 등록하기를 꺼린다. 폐기 후 재발급할 수 있는 카드와 달리 생체 정보는 대체가 불가능해 유출 시 피해가 클 수밖에 없는 탓이다. 실제로 미국 콜로라도주 모리슨의 야외 원형극장 레드록 앰피시어터는 2021년 극장 입장에 아마존 원을 도입했다가 취소했는데, 데이터 유출을 우려한 인권 보호 단체 등의 반대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존은 그러나 "아마존 원은 매우 안전하게 설계돼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회사 서버에 저장되는 것은 손바닥 이미지 자체가 아니라 이미지를 암호화한 일종의 전자 서명이기 때문이라는 게 아마존의 설명이다. 따라서 설사 해커가 서버에 보관된 정보를 탈취하더라도 원본 격인 손바닥 모양은 유추할 수 없고, 카드를 재발급하듯 유출된 서명을 없애고 새 서명으로 교체할 수도 있다고 한다.
혹시 모를 복제 가능성까지 차단하기 위해 아마존은 실제 손이 아니면 인식 자체가 안 되도록 기기를 설계한 것으로 알려진다. 손바닥 인식 기기에 '활성 감지' 센서를 포함해 실제 손바닥과 복제품을 구분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아마존은 "1,000개가 넘는 3D 프린팅된 실리콘 손바닥으로 아마존 원 기기를 시험해 봤으나 시스템은 이런 시도를 모두 거부했다"고 밝혔다.
정보 유출에 대한 걱정이 해소된다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기기 비용 부담이 그중 하나다. 기존 카드 결제기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는 모바일 결제와는 달리, 손바닥 인식 결제는 매장이 전용 기기를 따로 구비해야 한다. 아마존 원 기기 가격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관련 업계에서는 10만 원대에서 구할 수 있는 카드 결제기보다는 비쌀 수밖에 없다고 본다.
손바닥 인식 확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용자의 '습관'을 바꾸는 게 관건이다. WSJ는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을 갖고 있고 모바일 결제만으로도 충분히 편한데 손바닥 인식을 굳이 왜 써야 하는지에 대해 이용자들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장조사업체 파이먼츠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애플 아이폰 이용자 가운데 75%가 애플페이를 활성화했지만 실제 오프라인에서 애플페이를 사용하는 이용자의 비율은 전체의 2%에 그쳤다고 한다. 출시 10년이 넘은 애플페이의 이용률이 이렇게 빈약하다는 것은 이용자의 결제 습관을 변화시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방증한다.
그럼에도 장기적으로는 모바일 결제보다 간편하고 빠른 생체 인식 기반 결제가 보편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테크업계의 전망이다. 신뢰할 만한 생체 인식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빅테크들의 투자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손바닥 인식의 경우 아마존과 더불어 중국 텐센트가 보편화에 공을 들이고 있고, 한국에서는 최근 네이버가 얼굴 인식 기반 결제 서비스를 시작했다. 실리콘밸리의 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신용카드가 현금을 대체하는 데 긴 시간이 걸렸던 것처럼 생체 인식 기술도 대중화까지 적잖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다만 일단 생체 인식 기반 결제에 익숙해지면 신원 확인이 필요한 모든 분야에 생체 인식이 빠르게 스며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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