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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이후 10년...누군가는 기록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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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명의 사람들이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는다. 바다가 보이는 곳이라면 어디에든 주저앉아 울면서. 항구 주차장에 수십 개의 천막이 들어섰다. 시신을 실은 배가 수시로 들어왔다. 부모들은 바다를 향해 울다가 배가 들어오면 비틀대며 다가갔다. 진도 팽목항 어디에서나 아이 이름을 부르는 소리와 울음소리가 들렸다."
-책 '520번의 금요일' , '인양' 중에서
2014년, 잊힌 장면들이 되살아난다. 그해 4월 16일 경기 안산시 단원고 학생과 선원을 실은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해상에서 침몰했다. 304명(사망 295명·실종 9명)의 생명이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바닷속에 잠긴 대형 참사. 그날 이후 부모들은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국회에서 아이 이름을 부르며 절규했다. '기억하겠다'는 약속을 붙잡은 채로. 애타게 기다리던 선체도 인양됐지만 진실은 도리어 묘연해졌다. 진상 조사가 지지부진하고 부모들이 투사로 변해가는 사이 추모 공간은 사라졌다. 책 '520번째 금요일'은 참사의 목격자였던 우리를 그때로 이끌고 부채감을 흔든다.
새삼스레 10년의 기억을 소환한 이들은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이하 기록단)이다. 그해 여름 기록단에 들어간 강곤(52)·박희정(48)·유해정(49)·이호연(51)·홍세미(44)·홍은전(45) 작가는 지난 10년간 세월호의 목소리를 기록했고, 최근 그 기록을 모아 두 권의 책으로 펴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11일 앞둔 5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 모인 6명의 작가들은 "대단한 사명감보다는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마음에서 시작했다"고 입을 모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지치지 않고 이야기하고 기억하는 것뿐이잖아요. 기록하지 않으면 잊어질 테니까요."(강곤)
'520번의 금요일'은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출간된 공식 기록집이다. 단순한 인터뷰집이 아니라 10년 동안 세월호 참사의 의미 있는 서사를 재구성한 백서다. 단원고 유가족 62명과 시민 55명을 148회 인터뷰한 구술 기록과 관련 자료가 바탕이다. 동시 출간된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는 단원고 생존자 9명, 희생자 형제·자매 6명, 20대 시민 연대자 2명의 구술 기록이다.
6명의 작가는 2014년 여름 작가단 타이틀을 달았다. 당시 작가단이라는 이름으로 느슨하게 연결돼 활동했던 20여 명 작가 중 현재 활동하는 작가는 10명 안팎이다. 그중 6명의 작가는 세월호 참사를 기록하기 이전부터 용산참사, 밀양송전탑, 형제복지원 등 각종 참사 구술 기록에 참여해 온 멤버들. '금요일엔 돌아오렴', '다시 봄이 올 거예요' 등 이미 세월호 참사 관련 단행본을 여럿 펴낸 베테랑 작가들이니 이번 프로젝트에도 자진해 참여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2년 전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로부터 공식 기록집을 내 달라는 제안을 받은 작가들은 수차례 거절 의사를 전달했지만 세 달 동안 실랑이를 벌인 끝에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유해정 작가는 "지난 10년 동안 세월호 참사에 깊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그 안에 잠재돼 있는 복잡한 사실 관계와 갈등을 알고 있었다"며 "잘 정리할 자신도 없었거니와 어느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는 일임을 알았기에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었다"고 했다. 결국 마음을 돌린 이유는 10년 동안 교감한 가족들의 진심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 "세월호 참사와 마찬가지로 가족협의회 활동 자체도 유례가 없는 운동이에요. 그 10년을 우리가 감히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스스로 평가하고 이후를 전망하는 것은 도울 수 있겠다 싶었죠. '받아쓰기는 하지 않겠다'는 전제를 깔고 그림을 함께 만들어가고 싶다고 했는데 흔쾌히 동의해 주셨어요. 그래서 용기를 냈죠."(유해정)
10년은 아득한 세월이다. 어렵게 프로젝트를 시작했지만 그야말로 첫발을 내딛기조차 힘들었다고 작가단은 회상했다. 이호연 작가는 "2년 전 3월 4일 제안을 받고 나서 세 달 뒤 만났는데 정말 막막했다"며 "세월호 참사 수사 기록 등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읽는 동시에 가족협의회와 수시로 소통하며 키워드를 뽑아 나갔다"고 했다. 가족협의회 관련 사건 기록만 해도 1년에 500~600건 수준, 10년간 7,000여 건에 달할 정도로 자료가 방대한 데다 수십 차례의 워크숍을 병행하며 시간이 지체됐다. "같은 사안이라도 임원진과 일반 회원의 입장이 다르고 시민, 전문가들의 인식이 다를 수 있잖아요. 관점을 여러 겹으로 쌓고 조정하면서 키워드를 만들었죠. 그걸 추리는 작업에만 1년이 걸렸네요."(유해정)
그렇게 뽑은 핵심 단어가 그 섬·인양·조직·갈등·국가·기억·각성·차이·가족·몸짓·편견·합창 등 12개다. "솔직한 책이 돼야 한다"는 신념대로 작가들은 각자 한두 개 키워드를 품고 안산시, 국회, 광화문, 팽목항 등지를 찾아가 낱낱의 정보와 날것의 목소리를 수집했다.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팽목항으로 달려간 참사 당일부터 매일 가족의 절규가 가득했던 인양 현장, 참사에 대한 국가의 무신경과 무책임, 배상금을 둘러싼 갈등까지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운동의 거의 모든 것이 12편의 글에 담겼다. 일목요연한 일대기가 강조되는 백서가 아니라 독자를 사건 현장 가운데로 불러들이는 생생한 서사들이다. 100명이 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수집한 뒤 하나의 서사를 만드는 일은 예상보다 훨씬 버거웠다. 홍세미 작가는 "조각을 이어 붙여 겨우 이야기를 만들었는데 극명한 관점 차이를 담아낼 수 없어 통으로 날려 버린 적도 있었다"며 "끊임없이 확인받고 미궁에 빠지면서 작가로서 전에 경험해본 적 없는 두려움과 절망에 사로잡혔던 시간이었다"고 했다.
"추모는 떠난 이와 연결을 유지하려는 힘이다. 그러므로 추모는 고요한 순간에조차 뜨겁다. 애통히 떠난 이를 그리는 사람들이 긴 행렬을 이룰 때, 그 행렬은 새로운 길이 되었다."
작가들은 고통스럽기 그지없는 여정을 자처하며 이런 서문을 썼다. 이들은 왜 끊임없이 참사의 증거를 찾고 흩어지는 기억을 기록하는 것일까. 그에 대한 답으로 이들은 10년 동안 세월호 참사 한가운데서 기록자로서 지켜본 보통 인간들의 성장을 떠올렸다. 박희정 작가는 "세월호 가족들과 멀지 않은 곳에 머물면서 변화를 지켜볼 수 있었던 건 인생의 행운"이라며 "10대에 만났던 피해자들이 묵묵히 자기 길을 따라가며 인간의 존엄을 지켜 내는 모습을 볼 때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고, 기록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홍은전 작가도 "10년 전에 만났던 분들이 주저앉지 않고 어느 중견 활동가와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맹렬하게 나아가고 있는 모습을 볼 때 그저 감사하다"며 "누구 하나 빠짐없이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 냈고, 그걸 지켜보는 것은 큰 영광"이라고 말했다.
작가들에게 세월호 참사는 더 이상 고유 명사가 아니다. 재난 참사에 대한 진상 조사와 특별법 제정, 재난 피해자의 권리 확장과 피해 회복 노력, 다양한 재난 기록, 전방위적인 사회 운동과 문화·예술 운동,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과의 연대까지... 지난 10년 동안 세월호 가족들과 시민들이 타인의 고통에 기꺼이 마음을 내고 참사를 사회적 기억으로 만들기 위해 무수한 일들을 해 왔다고 증언한다. 그들에게 '기록'은 그런 분투의 증거이자 우리에게 전하는 뼈아픈 환기다. 여전히 진행 중인 고통을 치유하고 공동체의 존엄을 지키는 길에 구성원 모두 동참할 의무가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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