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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약속들, 그 청구서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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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또 한 번 '선물'을 안겼다. 이번엔 부산이다. 정성운 부산대병원장이 5일 지역의 거점 병원 역할을 할 수 있게 새 병동을 짓는 데 필요한 7,000억 원을 도와달라 하자 윤 대통령은 지역필수의료 특별회계로 비용 전부를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역이 균형 발전을 하려면 부산의 의료 인프라가 튼튼해야 한다는 말도 남겼다.
구구절절 맞는 말인데 시점이나 장소가 묘하다. 이날은 22대 총선 사전투표 첫날이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부산항 신항 7부두 개장식과 식목일 기념 행사 때문에 부산을 찾았다. 그리고 같은 날 오전 부산 강서구 사전투표소에서 투표도 했다. 사전투표 제도가 생긴 2013년 이후 현직 대통령이 지방에서 사전투표를 한 건 윤 대통령이 처음이다. 그리고 이날 수천억 원 투입을 약속했는데 하필 그게 이번 총선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부산이다. 그러니 선거에서 여당 후보에 도움을 주려는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1월부터 3개월 동안 24회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도 그랬다. 그 기간 내놓은 300개 넘는 정책은 대부분 해당 지역의 개발제한구역이나 군사시설보호구역을 해제하고 도로나 철도를 놓는 개발 이슈인데 그 사업성이나 재원 마련 해법 등을 두고 물음표가 달리고 있다. 야당을 중심으로 "대통령이 전국을 다니며 투입한다는 돈이 1,000조 원을 넘겼다"며 관권 선거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예산을 짜야 하는 정부 관계자들은 애를 태우고 있다. 토론회에서 나온 많은 정책은 아직 설익었다. 그러니 기획재정부에 보낼 2025년 예산 요구서에 넣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자칫 부실 검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으니 무작정 담을 수도 없다. 더 큰 걱정은 나라 곳간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는 것이다. 세수 불안은 커지는데 윤석열 정부의 제1원칙은 '건전 재정'이다. 그러니 국채를 발행해 돈을 끌어올 수도 없다.
기업들도 속앓이 중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경기 용인시에서 "약 622조 원 규모로 예상되는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투자가 시작됐고 이 가운데 500조 원가량이 용인에 투자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돈은 정부 예산이 아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계획표에 있다. 그걸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못 박아 버렸다. 재계 관계자는 "도로나 용수 등 정부가 할 수 있는 것만 언급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기업 투자 계획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데 대통령이 특정 지역을 언급한 것 자체가 큰 부담"이라고 했다.
그런 정부는 정작 반도체 업계가 간절히 바라는 투자에 따른 인센티브 보조금 지급은 안 하고 있다. 중국(약 194조 원)·미국(약 71조 원)·일본(약 20조 원)·대만(약 4조 원) 등이 반도체 패권을 쥐려고 경쟁적으로 투자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데 우리 정부는 '0원'이다. 원가 경쟁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데 투자 세액 공제 중심의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더 많은 기업들이 보조금을 따라 해외에 공장을 지으려 하고 있다. 정부가 돈 쓸 곳을 제대로 판단하는지 아쉬울 따름이다.
이틀 뒤 선거가 끝나면 전국 방방곡곡에서 청구서가 날아들 것이다. 부디 거기 담긴 그 숫자대로 잘 집행되길 바란다. 그래야 대통령의 약속이 총선 표 구하기용이라는 비판을 받지 않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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