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무임승차의 역설

입력
2024.04.03 16:4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김호일 대한노인회장과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올해 초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폐지와 관련해 토론을 벌이고 있다. '김현정의 뉴스쇼' 유튜브 캡처

김호일 대한노인회장과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올해 초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폐지와 관련해 토론을 벌이고 있다. '김현정의 뉴스쇼' 유튜브 캡처

‘무임승차’(Free Riding). 당초 경제학 용어였으나, 사회학이나 정치분야에서도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누군가의 부담으로 만든 재화나 용역을 대가를 지급하지 않고 쓰는 경우를 말한다. 대개 부정적 상황을 묘사할 때 사용된다. 지금은 기세 꺾인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올해 초 노인들에게 연간 12만 원 선불형 교통카드를 제공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던 게 대표적이다. 지하철ㆍ전철에서의 ‘노인 무임승차’를 겨냥, 젊은 계층의 표를 얻으려는 포석으로 해석됐다.

□ 무임승차는 비배제성과 비경합성이 겹칠 때 발생한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서도 사용이 가능하며(비배제성), 나의 소비가 다른 사람의 소비에 영향을 주지 않는(비경합성) 두 가지 특성을 동시에 지닌 재화ㆍ용역에서 발생한다. 국방이나 치안, 소방 서비스 등 공공재 대부분이 그렇다. 당장은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도 사용하는 것 같고, 나의 이용이 타인의 사용을 제약하지 않는 경우다.

□ 정치도 무임승차가 많은 영역이다. 리더가 정치적 명운을 걸고 이뤄낸 개혁의 성과는 극렬하게 반대한 사람에게도 돌아간다. 관점에 따라 이견은 있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 노무현 대통령의 한미 FTA, 박근혜 대통령의 공무원 연금개혁 등이 그렇다. 북한과 부동산, 소득주도 성장에 매몰됐던 경우 등 일부를 뺀다면,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들은 주요한 시대적 이슈에 대해 정치적 이해 득실을 따지지 않고 궂은일을 피하지 않았다.

□ 총선 국면에서 의대정원 증원이 야당과 그 지지자들에게 무임승차 이슈가 됐다. 제1야당부터 대통령과 의사직역 사이의 갈등에 모르쇠로 일관한다. 당대표가 ‘수술실 폐쇄회로(CC) TV 설치’ 법안을 주도했고, 연간 의대 4,500명 증원을 주장했던 인물이 후보인데도 언급이 없다. 총선 압승과 대통령 탄핵을 외치는 사람들도, 사석에서는 “이건 해내야 한다”고 말한다. 개인적 수준에선 무임승차는 합리적 선택이다. 그러나 무임승차가 계속되면 해당 재화의 공급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 정치적 무임승차도 마찬가지다. 유권자들이 제값을 치르지 않는다면, 위기와 개혁 앞에서 머뭇거리지 않을 정치인의 용기는 앞으로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다.

조철환 오피니언 에디터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