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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남산타워 필화사건(1974)

입력
2024.04.15 04:30
25면

편집자주

매일매일, 시시각각 한국일보 플랫폼은 경쟁매체 보다 빠르고 깊은 뉴스와 정보를 생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1954년 창간 이래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거나 국민적 감동을 이끌어낸 수많은 특종이 발굴됐다. 지난 70년 다수의 특종과 사건 중 파장이 컸던 내용들을 연도별로 안배해 ‘70대 특종’을 골라내 뉴스 이용자들에게 소개한다.

필화사건으로 번진 남산타워 소개 기사

필화사건으로 번진 남산타워 소개 기사

권위주의 정부에서는 예상치도 못했던 기사가 권력자의 심기를 건드려 필화사건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다. 사실에 입각해 불편부당의 자세로 쓰인 1970~1980년대 한국일보 기사의 상당수가 당시 최고 권력자의 편파적 해석으로 결과적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대표 사례가 1974년에 발생했다.

한국일보는 그해 5월 12일 일요일 자 사회면 톱기사에서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남산타워전망대를 독점 소개했다. 문창재(1946.1.17~2023.4.8) 기자의 이 르포기사는 ‘북의 땅 송악이 보인다. 북악도 성큼 수채화처럼’이란 제목으로 이 건물이 서울의 새로운 명소가 될 것임을 예고했다. 하지만 이 기사는 오히려 남산타워를 한동안 서울시민과 격리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신문이 배달된 일요일 아침 박정희 대통령이 노발대발해서 긴급 수석비서관회의를 소집했다. 박 대통령은 두 가지를 질타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남산타워에서 개성의 송악산이 보인다면 개성에서도 당연히 남산타워가 잡힐 것이므로 북한 장거리포의 목표물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또 하나는 남산타워에서 북악산이 발아래 훤히 보인다면 불순분자가 전망대에서 고성능 무기로 청와대를 공격할 수도 있다는 우려였다.

박 대통령의 예상치 못한 분노는 취재기자는 물론 사회부장과 편집국장까지 정보기관에 연행돼 호된 조사를 받는 상황을 초래했다. 이적성을 띤 기사를 게재한 저의와 배후를 대라는 것이었다.

독재시절 웃지 못할 필화사건은 엉뚱한 결과를 가져왔다. 이듬해 8월 중순 전망대 등 남산타워 시설이 완공됐으나 신문 방송 등 모든 매스컴에는 그 사실조차 보도하지 못했다. 입구에는 '전망대 사용금지'와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대통령 특별지시 팻말이 내걸렸다.

전망대가 일반에 공개된 것은 박 대통령이 사망한 지 1년이 지난 1980년 10월 15일부터였다. 한국일보는 1980년 8월 30일 자 사회면에 전망대가 서울시민에게 돌아가게 됐다는 사실을 또다시 특종 보도했다. 서울의 자랑인 남산타워 전망대는 이렇게 해서 한국일보가 그 문을 닫게 했고, 또 열게도 한 셈이 돼 버렸다.

남산타워의 일반 공개 방침을 특종 보도하는 1980년 8월 30일 자 한국일보 지면

남산타워의 일반 공개 방침을 특종 보도하는 1980년 8월 30일 자 한국일보 지면


한국일보 70년·70대 특종 (연도순)

8
기적의 소녀 조수아(사진·1972)
9
경주 155호 고분(천마총) 금관발굴(1973)
10 남산타워 필화사건(1974)
11 사이공 최후의 새벽(1975)
12 한국일보 후원 등반대, 에베레스트 등정 성공(1977)



창간70주년 준비기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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