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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고질라

입력
2024.03.3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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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할리우드 영화 '고질라 X 콩: 뉴 엠파이어'.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할리우드 영화 '고질라 X 콩: 뉴 엠파이어'.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지난주 북미 극장가 최대 화제는 단연 할리우드 영화 ‘고질라 X 콩: 뉴 엠파이어’이다.

‘고질라 VS. 콩’(2021)의 후속 편이다. 북미에서 개봉한 지난 29일에만 3,7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상영 첫 주 제작비(1,350만 달러 추정)에 근접한 수익을 낼 것으로 전망된다. ‘고질라 X 콩’은 파충류 괴수 고질라와 거대 야수 콩(킹콩)이 협력해 지구의 위협에 맞서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고질라는 일본에서 태어난 캐릭터다. 할리우드가 창조한 콩과 일본 괴수의 컬래버가 흥미롭다.

□ 고질라는 1954년 일본 영화 ‘고질라’를 통해 처음 등장했다. 올해 70번째 생일을 맞는다. 일본 도호영화사는 이를 기념해 ‘고질라 마이너스 원’을 지난해 선보였다. 북미에서 일본(3,680만 달러)보다 많은 흥행 수입(5,641만 달러)을 기록했다. 지난 11일에는 제96회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시각효과상을 비영어권 영화 최초로 수상하기도 했다. 동영상온라인서비스(OTT) 애플TV플러스는 지난해 11월 고질라를 소재로 한 드라마 ‘모나크: 레거시 오브 몬스터즈’를 공개했다. ‘진격의 고질라’인 셈이다.

□ 고질라는 핵폭탄 피폭으로 오랜 잠에서 깨어난 괴수다. 입으로 방사능 열선을 내뿜는다. 생성 과정과 주요 무기만 봐도 원폭에 대한 일본인의 두려움과 피해의식이 읽힌다. 전후 일본 사회 아이콘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일본 영화 전성기였던 1950년대 첫선을 보인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등장 초기에는 일본 도쿄를 때려 부수는 가공할 괴수로 표현됐으나 ‘고질라 X 콩’에서처럼 인류를 돕는 모습으로 조금씩 변모했다.

□ 고질라의 최근 부각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와 함께 일본 영화의 부활을 의미한다.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작이라 할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지난해 북미에서 개봉해 흥행 수입 4,661만 달러를 기록했다. 아카데미상 장편애니메이션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세계적인 화제작이라고 하나 ‘고질라 마이너스 원’이 한국 극장에서 개봉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태평양전쟁 직후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의 주인공은 가미가제 조종사다. 고질라는 의도치 않게 한일 관계의 어둠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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