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병원 9곳 이송 거부"… 웅덩이 빠진 3세 아이 숨져

입력
2024.03.31 09:13
수정
2024.03.31 21:14
2면
구독

"소아중환자 병상 없어" 이송 못해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물웅덩이에 빠져 심정지 상태로 구조된 만 2세 여자 아이가 대형 종합병원으로 이송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아이의 첫 응급처치를 담당한 지역병원과 소방당국이 충남과 충북, 대전, 경기지역 병원 10곳에 환자를 받아줄 것을 요청했으나 9곳에서 거부된 끝에 3시간 만에 숨졌다.

31일 충북소방본부와 경찰 등에 따르면, 전날(30일) 오후 4시 30분쯤 보은군 보은읍 농가의 비닐하우스 옆 물웅덩이에 생후 33개월 된 A양이 빠져 있는 것을 가족이 발견해 119에 신고했다. 물웅덩이 깊이는 1.5m가량으로 알려졌다.

신고를 받고 오후 4시 39분쯤 119 구급대가 도착할 당시 A양은 맥박과 호흡이 없는 상태였다. 구급대는 심폐소생술(CPR)을 하며 A양을 10분 만에 보은읍의 한 병원 응급실로 옮겼다. 이곳에서 약물 등 응급처치를 받은 A양은 오후 5시 33분쯤 심전도 검사(EKG)에서 맥박이 돌아왔다. 그러나 A양의 의식과 호흡은 정상적으로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다.

대형병원에서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의료진과 소방당국은 오후 5시 35분부터 A양을 이송할 병원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병상 부족으로 환자를 받을 수 없다”는 충북의 한 병원의 답변을 시작으로 대전, 천안, 경기 화성, 수원에 자리한 대학병원 등 8곳이 잇따라 “소아중환자실 운영이 안 된다” 등을 이유로 이송요청을 거부했다. 소방당국은 이송을 위한 준비를 마치고 기다렸으나 환자를 받겠다는 병원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사이 A양은 오후 7시 1분쯤 다시 심정지 상태에 빠졌고, 39분 뒤 숨졌다. 이날 오후 7시 27분쯤 대전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를 받을 수 있다는 응답이 왔지만, 이송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A양 아버지(49)는 이날 취재진에 “딸 아이가 숨이 돌아왔을 때 큰 병원으로만 옮겼어도 희망이 있었을 텐데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 게 억울하다”고 말했다.

소방당국이 이송을 타진했던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흉부 압박을 하지 않으면 맥박이 유지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송은 환자를 더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며 “병상 등 당시 여러 여건상 수용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충북도 관계자는 “당시 병원들이 전공의 파업으로 환자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보건복지부는 “인근 병원 도착 이후 환자 상태와 전원이 가능할 만큼 생체 징후가 안정적이었는지, 전원을 요청받았던 의료기관의 여건 등 자세한 내용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대한응급의학회는 이날 “의학적으로 당시 A양의 상태는 대형병원으로 이송할 상황이 아니었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경원 대한응급의학회 공보이사는 “환아의 자발순환회복이 1시간을 유지하지 못했고 다시 심정지가 발생해 39분을 심폐소생술을 추가로 시행하고도 심전도상 무수축이 지속돼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며 “심혈관계가 불안정한 상태에서 이송은 오히려 환자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 원거리 이송이 필요한 상급종합병원으로 전원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보은= 박은성 기자
최두선 기자
김표향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