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로 뽑힌 왕따' 6달 촬영하며 무너져...'F'로 불린 배우 류다인

입력
2024.03.29 19:0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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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빙 '피라미드 게임' 신스틸러, 류다인

드라마 '피라미드 게임'에서 명자은(류다인)이 체육 시간 피구로 같은 반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티빙 제공

드라마 '피라미드 게임'에서 명자은(류다인)이 체육 시간 피구로 같은 반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티빙 제공

왼쪽 눈 주변엔 멍이 들었고, 오른손엔 화상으로 인한 흉터가 채 아물지 않았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의 새 드라마 '피라미드 게임'에서 여고생 명자은(류다인·24)이 학교폭력을 당해 생긴 상처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2022) 속 문동은(송혜교)이 박연진(임지연) 등 '일진' 무리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면, 자은은 같은 반 친구들에게 집단 학대를 당한다. 자은은 이름 대신 'F'라 불린다.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 단체활동 시간에 인기투표로 위장해 벌어지는 '피라미드 게임'에서 같은 반 친구 25명에게 단 한 표도 받지 못해 최하 등급(F)을 받았기 때문이다.

F등급은 반에서 '공동의 왕따'다.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자은을 6개월 동안 연기하며 류다인도 무너졌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더라고요. 촬영 후반에 같은 반 친구 수지(김지연)가 '왕따'인 저한테 '같이 놀자'란 말을 하는데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는 거예요. 촬영이 중단됐죠. 제가 너무 (심리적으로) 고립됐었나 봐요." '피라미드 게임' 10회가 지난주 모두 공개된 뒤 28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류다인의 말이다.

모방범죄 우려한 교육청이 공문까지...'리얼한 학폭'

투표로 서열(A~F 등급)을 가르고 하위 등급은 교실 청소를 하고 심지어 괴롭힘까지 당하는 '피라미드 게임'은 10, 20대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다. 같은 제목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가 화제를 모으자 전북교육청은 도내 학교에 모방범죄를 우려해 학생생활지도 공문까지 보냈다.

류다인의 드라마 '피라미드 게임' 대본. 류다인 사회관계망서비스 캡처

류다인의 드라마 '피라미드 게임' 대본. 류다인 사회관계망서비스 캡처


'피라미드 게임'으로 주목받은 류다인은 28일 "전작인 '일타 스캔들' 단지인 줄 몰랐다는 반응이 제일 고마웠다"고 말했다. 티빙 제공

'피라미드 게임'으로 주목받은 류다인은 28일 "전작인 '일타 스캔들' 단지인 줄 몰랐다는 반응이 제일 고마웠다"고 말했다. 티빙 제공


류다인은 드라마 '일타 스캔들'(2023) 등에서 주로 구김살 없고 명랑한 여고생을 연기했다. 전작에서의 모습과 달리 오디션에서 심하게 낯을 가리고 어눌했던 류다인을 보고 놀란 '피라미드 게임' 박소연 감독이 그를 자은 역에 발탁했다. 류다인은 "오디션에서 연기한 배역은 모두 다른 역이었다"며 "'망쳤나' 생각하면서 오디션장 문을 닫고 나가는데 '됐다!'라는 제작진 말을 들었고 '뭐지?' 하고 2차 오디션에 갔더니 '자은이 하세요'라고 해 깜짝 놀랐다"고 캐스팅 과정을 들려줬다. 그간 조역, 단역만 맡았던 그가 처음으로 주연을 맡아 주목받은 배경이다.

드라마 '일타 스캔들'에서 같은 반 친구를 연기했던 류다인(왼쪽)과 이채민. 드라마 촬영을 계기로 연을 맺은 두 배우는 연인이 됐다. 류다인 사회관계망서비스 캡처

드라마 '일타 스캔들'에서 같은 반 친구를 연기했던 류다인(왼쪽)과 이채민. 드라마 촬영을 계기로 연을 맺은 두 배우는 연인이 됐다. 류다인 사회관계망서비스 캡처


현실선 당찬 캐릭터...오디션 20여 개 낙방 후 데뷔

부당함을 꾹 참고 사는 드라마 속 자은과 달리 류다인은 당차다. 17세 때 부산에서 혼자 서울로 이사해 연기 활동을 준비했다. 떨어진 오디션만 20여 개.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모델로 일하면서 번 돈으로 연기 수업을 받았다. 그렇게 3년여를 준비해 드라마 '18 어게인'(2020)으로 데뷔했다. '일타 스캔들'을 통해선 일과 사랑을 모두 잡았다. 그는 '일타 스캔들'에서 같은 반 친구로 나온 동갑내기 배우 이채민과 교제하고 있다. '피라미드 게임'을 끝낸 뒤 그는 배우의 사회적 영향력을 고민했다. 학폭 피해자의 피폐함을 보여주기 위해 체중 5kg을 뺐지만 실제 몸무게는 공개하지 않았다. "(너무 적은 체중이) 학생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류다인은 어떤 배우로 성장할까. 데뷔 후 세 작품에서 연달아 교복을 입고 고교생을 연기한 그는 "이젠 전문직도 좀 해보고 싶다"고 웃으며 말했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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