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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졸업이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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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연구나 과학계 이슈의 의미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일들을 과학의 눈으로 분석하는 칼럼 ‘사이언스 톡’이 3주에 한 번씩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과학고에는 일반고나 특목고에 없는 조기졸업 제도가 있다. 조기졸업 대상이 되면 2년 만에 고교 교육과정을 마치고 졸업해 대학 입시를 치를 수 있다. 뛰어난 과학 인재를 효율적으로 길러내자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어느새 이 제도는 최상위권 학생들의 의대 진학 경로로 변질됐다. 조기졸업 하고 카이스트(KAIST) 같은 과학기술특성화대학에 진학했다가 다시 수능을 보고 의대에 가면 동년배와 같은 학번이 되니 ‘해볼 만한 도전’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조기졸업을 했는데 대입에서 고배를 마시면 고교에 돌아가지 못해 기왕 재수하는 거 의대도 지원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교육부는 20개 과학고와 함께 조기졸업 규모를 줄이는 방안을 구상해왔다. 1학년 내신 경쟁이 과열되고 3학년에 남는 재학생들의 열패감이 커진다는 지적 때문이다. 그런데 올 들어 과학기술특성화대학과 과학고를 중심으로 이 같은 논의에 속도가 붙고 있다. 의대 정원이 대규모로 확대되면 의대 진학 경로라는 조기졸업의 폐해가 두드러질 거란 우려가 더해져서다.
카이스트는 조기졸업 대신 조기진학을 유도하고, 수능형보다 탐구형 인재를 중점 선발하는 방향으로 입학 전형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 조기진학 대상 학생이 2학년 때 대학에 불합격하면 졸업이 아니라 3학년으로 올라간다. 우수 인재를 1년 더 과학고에 머물게 할 수 있으니 의대행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데는 조기진학이 조기졸업보다 낫다는 게 학교 판단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입학한 뒤 의대로 빠져나가는 걸 막긴 어려운 만큼, 결국 고육지책이다. 카이스트는 해마다 신입생 약 800명을 뽑는다. 이 중 30명 안팎이 학교를 떠난다고 한다. 자퇴 이유의 대략 절반이 의·약학계열 진학인 것으로 학교는 파악하고 있지만, 이유를 밝히지 않고 떠나는 학생도 있다.
사실 자퇴생 수만 보면 적은 인원일 수 있다. 지난해 이공계 대학 입학생 약 5만9,000명 중 의대 증원 인원 2,000명이 학교를 떠나도 비율로 따지면 3% 안팎에 그친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래서인지 이공계 교수들 가운데는 “애들 일부 떠난다고 큰 지장 없다”, “의대 갈 애들 가라 하고 과학에 심취한 애들 잡으면 된다”, “과학 하는 어려움이 과장됐는데 애들이 사실과 거품을 가려내지 못한다”고 여기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 의대에 맞지 않다고 여기는 학생들마저 의대행을 고민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떠나는 학생의 수가 아니라 이유가 중요하다. 과학에 심취하고 싶어도 학창 시절 선택 한번 잘못해서 인생 꼬이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이공계 학생들 사이에 만연해 있음을 기성세대 과학자들은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사회경제적 보상과 처우가 의사와 직접 비교되는 이공계 인재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을 더 크게 느낀다. 묵묵히 공부하면 학교나 기업에 어렵잖게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교수 세대는 경험하지 않았을 두려움일 것이다.
의사 공급이 늘어 경쟁이 치열해지면 학생들이 의사보다 과학자를 선호하는 세상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2~3년이 걸릴지 20~30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성적부터 연구, 생활까지 모두 교수에게 의존해야 하는 구조, 취업과 창업 어느 쪽을 택해도 미래가 불확실한 환경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청년 세대에게 과학자가 더 나은 직업이 될 수 없다. 입시 변화만으론 학생들 마음을 얻기 어렵다. 의료만 ‘개혁’이 필요한 게 아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이공계 활성화 대책 TF’를 꾸려 27일 첫 회의를 열었다. 탁상공론에 그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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